▶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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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스로를 실제보다 좀 더 나은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태도와 자질은 물론, 심지어 도덕적 수준까지도 과대평가를 하는 경우가 많다. 평균 이상은 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미국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결혼생활이 이혼으로 끝날 확률을 추정해 달라고 했더니 평균 20%가 나왔다. 하지만 실제 이혼율은 50%에 달했다.
도덕성에 대한 자기 평가도 다르지 않다. 우리가 남들의 도덕적 일탈에 즉각적으로 분노하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많은 경우 이런 과대평가에 따른 반응이다. 그러니 제 3자가 보기에 완전히 양심을 저버리고 비즈니스를 하는 업주들이 스스로를 깨끗한 사람으로 여긴다 해도 별로 이상할 게 없다.
천국행 티켓에 이르면 과대평가는 정점에 달한다. 미국인 1,000명에게 유명인들의 이름을 제시하며 천국에 갈 것 같은 사람을 꼽아달라고 했더니 테레사 수녀가 79%, 마이클 조던 65%, 다이애나 비는 60%를 얻었다. 가장 많이 나온 사람은 응답자들 자신이었다. 무려 87%가 자신의 천국행을 확신했다.
과대평가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자신감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고 간혹 자존감으로 건강하게 발현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자신이 갖고 있는 지질과 능력을 냉정히 파악하지 못하고 과대평가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면 성장은 기대하기 힘들다. 자칫하면 과대망상으로까지 발전해 다른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의 한 TV에서 전국 모의고사 성적 상위 0.1%에 속한 최우수 학생 수백명과 그렇지 못한 평범한 학생 수백명을 비교해 두 그룹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밝혀내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사전조사를 해 보니 학생들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가정환경도 비슷하고 심지어 아이큐에서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다.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한 학자들은 고민 끝에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학생들에게 서로 연관이 없는 단어 25개를 개당 3초씩 총 75초간 보여줬다. 그리고는 몇 개를 기억할 수 있는지를 물은 후 검사를 했다.
학생들이 기억해 낸 단어 수는 우등생과 평범한 학생이 별로 다르지 않았다. 단 한 가지 차이는 자신들이 기억할 것으로 예상한 단어 수와 실제 기억한 단어 수가 우등생들은 거의 일치한 반면 평범한 학생들은 그 편차가 아주 심했다.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실험에 참가한 학자들은 “우수한 학생들은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확히 파악한다. 그래서 보완을 위한 계획과 전략을 효율적으로 세울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른다면 책상 앞에 아무리 오래 앉아 있어도 헛수고일 뿐이다.
한국 축구가 이번 월드컵에서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축구 중심국으로 진입하기에는 역부족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런데도 한국의 기대는 첫 원정 8강이었다. 국민들뿐 아니라 축구 관계자들과 선수들까지 모두가 그랬다. 스스로의 수준을 전혀 객관적으로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착각 속에서는 실력이 자랄 수 없다.
비단 학업과 축구만 그런 것은 아닐 터. 직장생활과 비즈니스는 물론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영역이 스스로에 대한 앎의 크기에 의해 좌우된다. 그리스 델포이 신전 입구에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새겨져 있었다. 흔히 소크라테스가 처음 말한 것으로 잘못 알려진 이 문구는 철학적 명제이지만 “모든 외부 문제의 해답은 결국 네 안에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실용적인 조언이기도 하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냉정히 바라볼 수 있을 때 개선과 발전을 위한 지혜와 전략을 얻을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낙관이 당사자의 정신건강에는 좋을지 몰라도 성장은 거기에서 멈춘다. 성공적인 계획의 첫걸음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냉철히 평가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개개인은 물론 기업의 경영자, 그리고 국가 지도자도 예외는 아니다. 한 경제전문가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줄 알고,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을 좋은 CEO의 가장 기본적인 자질로 꼽았다. 성공적인 국가 경영에도 같은 덕목이 요구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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