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오래전이다. 필자가 아버지를 모시고 LA 다운타운을 지나는데 옆 좌석에 앉아계시던 아버지가 문득, “얘야, 너 오른 쪽에 흰색 건물 보이지?”하신다. “저거 일본 사람들의 노인 아파트이다. 일본 경제인 연합회인가 하는 무슨 단체에서 지어 주었단다.” 그리고 무슨 일본 얘기를 잠깐 하시다가 “거, 못된 놈들이지” 하고 말을 끝내셨다.
일제시대에 태어나서 일본 학교 교육을 받은 아버지는 책도 일본어로 된 것을 더 편안하게 읽으시는 분인데 일본이라면 평생을 두고 그렇게 싫어하셨다. 나의 아버지 뿐만 아니다. 당시의 그 연배의 모든 분들이 그랬다.
한일축구경기는 1954년 일본 도쿄에서 처음 열린 이후 1959년까지 8번 경기가 있었는데 그중 6번 일본에서, 그리고 2번 메르데카에서 열렸을 뿐 한국에서 열린적은 없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선수들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연한 국제경기에서 일본이 싫다고 일본 선수들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 약간 ‘코메디’같지만 당시 국민 정서로써는 충분한 이해될 만 했다. 딴 나라에게는 몰라도 일본한테는 절대 져서는 안된다는 각오는 지금도 은연중에 우리에게도 있지 않은가? 기록에 의하면 2013년까지 한일축구경기는 76번 있었는데, 한국 40승 일본 14승 그리고 무승부 22번이다.
10년 전이다. 영국에서 학위과정에 있던 아들이 결혼할 여자를 만났다고 전화를 했다. 이 녀석이 드디어 짝을 만났구나하는 반가운 마음에 “한국 여자냐?” 하고 성급하게 물었더니 “일본에서 유학을 온 아가씨”란다. 한국사람은 일본을 싫어한다는 것을 아는지 아가씨를 소개하는 아들의 말투가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다.
아가씨는 도쿄 대학을 졸업했고, 성격 좋고, 취미도 자기와 비슷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처럼 예쁘단다. 아들이 엄마에게 “예쁘다”고 하는 것이 한국어로 별로 적절한 표현이 아니지만 3살 때 미국에 온 아들의 한국어 실력으로는 엄마에게 바친 최고의 찬사이자 아첨(?)이였다. 엄마는 “엄마처럼 예쁘다”는 아들의 표현이 아주 맘에 들었는지 “네가 좋으면 우린 다 좋아” 하고 찬성을 했다. 아들의 됨됨이를 믿는 아빠 나 역시도 찬성. 일본의 아가씨 집에서도 영국에 공부하려 떠난 딸이 거기서 한국 남자를 만나 결혼한다는데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사람은 일본사람을 싫어한다는데 행여 자기 딸이 한국 시집식구들에게 미움을 받을가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우리도 사실 그랬다. 행여 우리 아들이 일본 처가댁에게 한국사람이라고 얕보이지나 않을지 막연하게 우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집에 데려온 아가씨를 만나보니 국적도 민족도 전혀 상관없이 그져 사랑스러운 며느리감일 뿐 이였다. 싹싹하고, 예의 바르고, 예쁘고, 건강해 보이는 것이 무엇보다 맘에 들었다.
영어도 일본 액센트가 거의 없을 정도로 잘했다. “일본에 계신 부모님과은 자주 통화했냐”고 물었더니 한동안 못했다고. 그래서 미국 우리집에 와 있다고 지금 전화하라고 했더니 그자리에서 수화기를 들고 어머니와 거의 한시간을 통화한다. “어머니와 무슨 얘기를 그리 오래 했느냐”고 물었더니 아가씨가 웃으며 “어머니가 한국의 TV 드라마 <겨울연가>를 너무 좋아해서” 그 얘기를 그렇게 열심히 하시더란다.
세상이 참으로 많이 변했다. 이것이 바로 한류(韓流)라는 것이구나!결혼식에 참석하려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나는 <가와바타 야스니>가 쓴 설국(雪國: 유끼구니)를 내내 읽었다. 소설의 줄거리 보다 작가가 묘사한 일본 북쪽 지방의 눈 쌓인 풍경이 좋았고, 스토리가 전개되는 분위기가 지극히 ‘일본스러워서’ 좋았다. 생각해보니 내가 읽은 외국 문학작품에 일본 작가가 쓴 것이 많다. 젊었을 때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천하통일기를 그린 <야마오카 쇼하치>의 대망(大望)을 밤을 새워 읽기도 했고, 한동안 실의에 빠졌을 때 여류작가 <야마사키 도요코>의 불모지대를 읽으며 새힘을 얻기도 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새삼 생각이 나서 서재 내 책장에 꽃혀있는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세어보니 ‘로마인 이야기’를 비롯하여 서른 하고도 몇권이다. 나는 의식은 못했어도 그만큼 일본과 가깝게 살아온 것이다. 일본의 사돈과 처음 만났을 때에도 자식들이 부디 행복하게 잘 살기를 원하는 부모들 마음을 서로 나누었을 뿐, 민족적 이질감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그집의 사랑스러운 딸이 이제 내 딸이 되었고 자랑스러운 내 아들이 그집 아들이 된 것이다.
결혼과 함께 방문학자로 일본에 간 아들은 거기서 직장을 얻어10년 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손녀의 생일에 외할아버지가 한복을 선물했다고 곱다란 치마저고리를 입혀 찍은 손녀의 사진을 보내왔다. 얼핏 기모노를 입힌 사진을 보냈음직도 한데 사돈은 우리를 기쁘게 하려고 일부러 치마저고리를 선물해서 그렇게 입힌 사진을 보낸 것이다. 참으로 사돈댁의 그 마음 쓰임새가 고맙다.
우리 아버지의 세대, <새나라의 어린이>였던 내 나이의 세대, 그리고 아들의 다음 세대의 한일관계를 생각한다. 지금은 분명히 경제 문화 논리가 정치보다 우선하는 글로발 시대이다. 국경보다 경제영역이, 혈연의 민족의식 보다 이익을 함께하는 공동체의식이 먼저인 시대인 것이다.
과거 일본과의 치욕의 역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포로가 되어서 현재와 미래를 사는 것도 별로 바람직 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어짜피 다음 세대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개념의 한일관계가 아닌가? 우린 지금 일본 며느리를 얻은 덕분에 한일협력 우호친선의 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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