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에 오래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이면, 이런 저런 연유로 헐리웃 보울 야외 연주행사에 한두번쯤은 가보게 된다. 많은 관중들이 모이다 보니 여기저기에서 왁자지껄 들뜬 분위기로 시작하지만 낮 동안 땡볕아래 끓어오르던 더위가 오후 늦게부터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밀려나고 어두움이 내리고 연주회가 시작될 때쯤이면 쾌적하고 서늘한 남가주 특유의 저녁 날씨가 야외 연주장을 감싸게 된다.
6월 말경에 시작해서 9월까지 다양한 공연들이 열리게 되는데, 그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공연들은 미국 독립기념일 즈음과 매주 주말에 있는 불꽃놀이를 겸한 공연들일 것이다.
독립기념일 불꽃놀이에는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1812 서곡’이 자주 연주되다 보니 이제는 불꽃놀이 주제곡처럼 자리잡은 느낌이다. 기록을 찾아보면, 1974년 아서 피들러가 지휘한 보스톤 팝스 오케스트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클래식 음악에 소원해지는 관중들의 관심을 끌고 연주회의 입장수입도 올리기 위해 기획한 것인데 오늘날까지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헐리웃 보울도 불꽃놀이 하는 날은 오래전에 입장권을 예약해야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1812 서곡은 차이코프스키가 의뢰를 받아 전쟁희생자를 위해 모스코바에 세워진 교회 준공식(1882년)에 연주키 위해서 작곡했으며,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한 1812년 러시아인들의 애국적인 저항으로 침략을 물리치고 해방을 쟁취한 것을 그리고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지휘로 뉴욕의 카네기홀 완공기념(1891년)으로 미국에서 초연된 기록도 있으나, 사실 미국의 독립전쟁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 구태여 연관성을 따지자면, 당시 강대국이었던 프랑스나 영국을 상대로 싸워서 승리하여 독립을 쟁취하였다는 공통점은 있다. 바로 그 점이 미국 독립기념일 행사에 자주 연주되고 공감을 받기는 하나 알고 보면 남의 옷을 빌려 입는 기분도 들 수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세계의 많은 교향악단의 연주영상이 올라와 있는데, 1812 Overture-Guttenberg Orchestra Version이 다른 것과 달리 귀를 기울이게 한다. 포병대의 구식 대포소리와 교회의 종소리가 더하여 연주에 현실감을 주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조금 더 귀를 기울여 보면, 후반 피날레에 울리는 교회 종소리가 모든 것을 함축해 나타내는 것 같이 들린다. 해방의 기쁨, 독립의 기쁨을 이보다 더 절절하게 표현할 수단이 있을까 싶다. 교회 종소리의 새로운 발견이라 할 수 있다. 차이코프스키가 의도했던 바를 잘 구현해 낸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남가주에는 1976년 미국 독립 200주년 기념으로 한국 정부가 기증한 우정의 종이 있다. 7월4일 미국 독립기념일과 8.15 광복절을 위시하여 연간 수차례의 타종행사가 있는데 행사에 초대된 소수의 인사들과 행사 진행요원 그리고 한인을 비롯한 인근 주민들이 참가한 조촐한 의전행사로 유지되어 오고 있다.
1812 서곡에서 들을 수 있는 교회 종소리처럼, 우정의 종소리가 포함된 음악공연 행사가 있다면 남가주의 또 다른 명소로 주목 받지 않을까 상상도 해 본다. 우정의 종각 앞에는 너른 잔디 광장도 있어, 야외 공연도 가능할 것이다. 종소리도 있고 장소도 있는데 부족한 것은 우리의 관심, 의지, 재능이 아직 뒷받침되지 못한 게 아닌가 한다.
미국 자동차 여행자 클럽(AAA)의 잡지에는 최근 새로 단장된 우정의 종각이 남가주의 가볼만한 장소로 소개 되어 있다. 그러나 한가지 아쉬운 것은 그곳을 방문해도 평소에는 종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점이다. 실제 타종 소리가 아니어도, 녹음된 소리라도 종각 주변에 음향 설비를 통하여 하루에 몇 차례 방문객들이 들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종의 존재 의미는 침묵이 아니고 소리를 들려주는데 있다.
이번 여름방학 동안에는 자녀들을 데리고 우정의 종각을 방문하여 수려한 경관도 구경하고 한국 고유의 종소리도 들어 보시길 바란다. 혹시 누가 알랴. 차이코프스키 같은 유능한 작곡가가 한인 중에서 나와서 우정의 종각이 남가주에 있는 세계적인 명소가 되고 또 그곳에서 1년에 단 2번 (미국 독립기념일과 광복절) 열리는 음악공연이 입장권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려운 행사, 그래서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 특별한 행사가 될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