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 홍명보호의 야심찬 도전이 실망스럽게 막을 내렸다. 첫 원정 월드컵 8강을 목표로 내걸고 나섰던 브라질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실낱희망을 품고 나선 26일 벨기에와의 최종전에서도 0-1로 무릎을 꿇어 결국 1승도 건지지 못한 채 조 꼴찌(1무2패)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고 브라질을 떠나게 됐다.
이번 월드컵은 아직도 2002년 4강 신화의 여운에 취해있는 것 같은 한국 축구에게 현실의 냉혹함을 직시하게 해준 웨이크업 콜이었다. 4년 전 남아공에서 첫 원정월드컵 16강은 달성했으니 이번에 그보다 한 단계 더 전진한 8강에 가야한다는, 단순하다 못해 순진하게 느껴지는 목표를 세웠을 때부터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실력이 그만큼 향상된다는 증거 하나 없이 4년의 시간이 지났으니 전 보다는 분명히 더 나아졌을 것이라는 막연한 가정 하에 목표가 설정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보니 불안은 현실로 나타났다. 세계적 강호들에게 비해 기술과 경험에선 다소 뒤처지더라도 특유의 근면함과 투지로 부족한 면을 메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경기를 해보니 창의적인 플레이 메이킹 능력이 전혀 없었고 기술은 물론 스피드와 투지에서도 상대보다 뒤떨어졌다. 특히 무엇보다 필드에서 흐름을 조율하며 팀을 이끌 리더가 없었다.
2002년 이후 많은 한국 선수들이 유럽무대에 진출하며 한국축구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상당히 업그레이드됐다. 하지만 이번 대표팀을 살펴보면 4년전 남아공 때보다 낫다고 절대 말할 수 없다. 남아공 대표팀과 비교할 때 무엇보다도 허리와 수비에서 팀을 이끌었던 박지성과 이영표를 대체할 선수가 없었다. 구자철이나 기성용 등이 박지성의 빈자리를 메워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한마디로 역부족이었고 이영표 같은 든든한 앵커가 없는 수비라인은 ‘모래성’이었다. 리더십의 공백은 누구의 눈에도 뚜렷했고 박지성과 이영표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 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실제로 벨기에와의 최종전을 앞두고 많은 한인들은 한국을 위기에서 건져 줄 에이스로 손흥민을 꼽았다. 손흥민은 다음 달에 22번째 생일을 맞는다, 이제 겨우 21세인 선수에게 팀을 구해달라는 무거운 짐을 지웠다는 사실로도 홍명보호가 얼마나 다급했는지를 알 수 있다. 베테랑들이 경기를 이끌어줄 때는 펄펄 날았던 손흥민도 이날은 자기 어깨에 지워진 엄청난 중압감에 눌렸는지 전혀 빛을 발하지 못했고 결국 후반에 교체 아웃되고 말았다. 지어서는 안 될 무거운 짐을 지고 필드에 나섰기에 제대로 뛸 수가 없었다.
홍명보 감독의 전술 부재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충격적인 완패를 당한 알제리와의 2차전은 감독의 머리싸움에서 완패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알제리는 한국을 상대로 벨기에와의 1차전과는 전혀 다른 작전을 들고 나섰다. 일찌감치 한국을 1승 제물로 점찍은 알제리는 그룹 최강인 벨기에와의 1차전에서 수비적인 전략으로 무승부를 노리는 작전으로 나선 뒤(경기는 1-2 역전패) 한국을 상대론 주전 11명 중 5명을 바꾸고 훨씬 공격적으로 나서 전반에만 전광석화처럼 연속 3골을 뽑아낸 뒤 후반 한국의 반격을 여유있게 뿌리쳤다. 허를 찔린 데다 필드 리더십 부재로 우왕좌왕한 한국은 뒤늦게 전열을 정비하고 후반엔 훨씬 나아진 경기력을 보였으나 그땐 이미 승부가 끝난 뒤였다.
사실 알제리는 최강 벨기에 이후 한국을 상대하는 경기 순서가 그런 전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반면 한국은 러시아와의 1차전도 알제리와의 경기만큼 중요했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알제리전에서 초반 실점 후 허둥지둥하다가 대량실점을 하는 바람에 반격의 기회조차 잡지 못했던 것과, 첫 두 경기에서 너무나 똑같은 모습으로 나서 상대를 편하게 해준 것에 대해선 코칭 스태프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상대를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동안의 과정을 살펴보면 상대는 물론 우리 자신의 취약점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상대도, 자신의 문제점도 몰랐으니 병법상 백전백패를 자초한 셈이다.
이제 한국의 월드컵은 끝났다, 이젠 4년 후를 생각해야 한다. 박지성과 이영표 같은 리더는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리더 한 명을 키워내는데 4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한국 축구는 “어떻게 되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에서 빨리 깨어나 절실함을 갖고 다시 시작해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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