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벼르고 별러왔던 포괄적 이민개혁안을 연방 상원이 초당적 지지로 통과시킨 것은 지난해 초여름, 꼭 1년 전이었다. 당시 환호하며 들떴던 이민사회는 내일로 통과 1주년을 맞는 지금, 기대했던 축배는커녕 절망에 휩싸여있다.
개혁추진 진영은 요즘 같은 양극화 시대에 68대 32 라는 압도적 찬성에 의한 통과여서 공화당 주도 하원도 “절대 무시하지는 못할 것”으로 믿었었다. 그러나 하원은 무시했다. 2012년 대선 참패의 충격에 ‘친이민’으로 선회한 듯하던 공화당은 내부의 극우보수 반발이 거세지면서 이민개혁안 처리 자체를 계속 미루어왔다.
지난해 말에서 금년 예비선거가 끝난 후 여름 휴회 전…이렇게 밀리면서도 희망을 이어가던 개혁안에 번쩍 경고등이 켜진 것은 2주전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 에릭 캔터가 티파티 후보에게 패배하면서였다. 상대가 맹공격한 것이 캔터의 ‘이민개혁 지지’였다.
거기에 더해 이민개혁 관 뚜껑에 못질하듯 지난주부터 ‘나 홀로’ 밀입국하는 아이들이 급증한 ‘국경의 위기’가 부각되었고, 급기야 어제는 이민개혁 지지의 기수로 꼽히는 루이스 구티에레즈 민주당 하원의원이 본회의 연설에서 공화당을 질책하며 “금년의 이민개혁안은 죽었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어른의 동행 없이 미-멕시코 국경을 넘어 밀입국하는 아이들의 수가 지난 9개월간 5만2,000명을 넘어섰다. 금년 말엔 9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대다수가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등 조직범죄가 일상을 위협하는 중미권 3개 국가에서 멕시코를 거쳐 텍사스 남부 리오그란데 계곡을 건너 미국으로 들어오는 미성년자들이다.
철저하게 봉쇄하면 그만인 성인의 밀입국 단속과는 다른 문제여서, 신속하면서도 신중하게 대처해야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고심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살인과 납치, 성폭행의 위협을 피해 생명을 걸고 피난처를 찾아 온 절박한 아이들을 구제해야하는 ‘인도주의적 위기’이면서도 국경안보, 이민법 시행 등이 함께 얽혀있는 복합적 이슈이기 때문이다.
미성년자의 추방은 상당히 까다롭다. 오바마 행정부 이전에 입법화된 관련법에 의해 접경국가인 멕시코와 캐나다 아이들이 아니면 즉각 추방을 금지한다. 밀입국하는 아이들을 붙잡은 후 72시간 이내에 보건복지부 보호를 받는 쉘터로 넘겼다가 미국 내에 거주하는 친척에게 인계하도록 되어있다. 추방재판 출두 날자가 주어지지만 업무적체로 보통 2년 이상 지연되고 있으며, 이민사회 어디론가 스며든 아이들이 법정에 출두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인들과 달리 아이들은 미국 땅에 발 딛는 순간 숨지 않고 국경순찰대에 자수하며, 밀입국 알선책들은 “아이들에겐 영주권을 내준다”는 허위광고로 밀입국 지원자들을 모집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도 중미의 밀입국 알선조직과 홍보전쟁을 치르는 처지에 빠졌다. 제이 존슨 국토안보부 장관은 스패니시 미디어에 중미국가 부모들을 향해 “자녀들의 위험한 밀입국을 자제하라”는 공개호소문을 게재했는가 하면 조 바이든 부통령은 과테말라 등을 직접 방문하여 밀입국 아이들은 어떤 혜택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못 박기도 했다.
이민개혁 반대자들은 아이들의 밀입국 사태를 이민개혁 ‘위험’의 산 증거로 내세우고 있다. 이번 주 들어 하원 국토안보위원회와 법사위 등에서 잇달아 개최하는 밀입국 사태관련 청문회도 이들의 성토장이다.
25일 법사위 청문회 타이틀은 “행정부가 만든 재난” - 오바마의 느슨한 이민법 시행이 초래한 위기라는 비난이 거세고, 서류미비 청소년 추방유예 행정명령을 당장 중단하라는 요구도 나온다. 국경에 국가방위군을 파견하라, 장벽을 높여라, 국경을 군사화 하라…강경파들의 주장에 밀려 “이 아이들은 목숨 걸고 도피처를 찾아온 난민이다. 체류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인권관계자들의 증언은 묻혀버리고 있다.
오바마의 서류미비 청소년 추방유예 행정명령은 2007년 이전 입국자들만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와전되어 최근 국경 사태에 일조했을 수도 있다. 밀입국했던 아이들이 본국으로 송환되지 않는 한, 미국은 아이들의 ‘성역’이라는 루머와 함께 위험을 무릅쓴 아이들의 밀입국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국경지대에서 발견된 아이들의 시신이 수백 구에 이른다.
쉬운 해결책은 없다. 그래도 가장 합리적인 출발점이 이민개혁안이다. 포괄적 개혁안에는 공화당이 반대하는 1,100만명 기존 서류미비자에 대한 신분합법화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 기능마비 상태인 이민제도의 온갖 문제점에 대한 최선의 대책들이 제시되었다. 아이들 밀입국 관련 7개항도 포함되어 있다.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소수의 반이민 강경파의 극단적 정략에 의해 죽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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