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윤성 논설위원
▶ yoonscho@koreatimes.com
흥망과 성쇠는 그 어떤 존재도 비껴갈 수 없는 필연적인 순환의 법칙이지만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스페인 몰락은 충격적이다. 당초 디펜딩 챔피언 스페인의 고전을 예상한 전문가들은 있었지만 16강 탈락, 그것도 단 두 경기 만에 32개국 가운데 가장 먼저 탈락을 확정지을 것으로 내다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스페인의 몰락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찬찬히 복기해 보면 쇠락의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스페인 축구는 짧고 세밀한 패스로 볼 점유율을 지배하는 것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티키타카’로 불리는 이 전술을 바탕으로 스페인은 유로 2008에서 우승하며 무적함대로 떠올랐다. 2010년 월드컵에 이어 유로 2012 우승까지 거머쥐면서 스페인의 독주는 계속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경쟁은 항상 상대적인 것. 짧은 패스를 압박하는 다양한 프레싱 전술들이 등장하면서 스페인 축구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티키타카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가 올 시즌 무관에 그친 것은 이 전술의 쇠락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스페인은 이번 월드컵에서 고집스럽게 이 전술에만 의존했다. 상대의 압박에 막혀 득점도 올리지 못하고 연이어 역습을 허용하면서 대량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세계 축구가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자신들에게 성공을 가져다주었던 전술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세대교체도 외면했다. 그 결과는 진화하고 발전한 상대팀들에 의한 유린이었다. 스페인 축구의 몰락은 전형적인 ‘성공의 저주’이다.
일단 성공을 거두면 계속 성공을 거둘 것 같은 안일한 낙관에 쉽게 빠진다. “신은 누구를 멸망시키려 할 때 가장 먼저 그의 눈을 멀게 한다”는 서양 속담은 이런 낙관이 지닌 위험성을 잘 경고해 주고 있다. 기업들에도 이것은 변함없는 철칙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성공의 자만에 빠졌다가 사라졌다.
비즈니스 세계에는 “경제지에 커버스토리로 실리면 그것은 위험이 시작됐다는 뜻”이라는 경구가 있다. 실제로 경제 전문지의 커버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머지않아 사라진 기업들이 한둘이 아니다. 심지어 타임지 커버에 성공사례로 소개된 지 불과 수개월 만에 문을 닫은 기업도 있다.
성공을 지속하려면 시대의 흐름을 잘 읽고 스스로를 변화시킬 줄 알아야 한다. 현대 축구의 가장 보편적인 흐름은 압박-가로채기-역습이다. 스페인에게 굴욕을 안겨준 네덜란드와 칠레가 바로 이런 전술을 제대로 보여줬다.
이 전술이 성공을 거두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경기장 내 선수들의 상황 판단력과 임기응변이다. 고정된 전술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상황에 맞춰 대응할 줄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창조적인 사고가 요구되는 것이다. 한국이 알제리에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것은 달라진 알제리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기 때문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새로운 흐름을 가장 확실하게 과시하고 있는 팀은 프랑스이다. 프랑스의 가공할 만한 공격력은 압박-가로채기-역습에서 나오고 있다. 수비에서 볼을 빼앗은 후 두 세 번의 길고 정확한 패스를 거쳐 곧바로 슈팅까지 연결된다. 한 순간의 머뭇거림도 없다.
이런 면모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 세계적 의류 소매체인인 자라(Zara)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예측에 많이 의존하는 것과 달리 자라는 예측을 하지 않는 업체로 유명하다. 우선 샤핑몰과 시내 중심가,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찾아가 관찰을 해 아이디어를 수집한다. 여기에 스타일과 원단, 색상을 접목해 방대한 포트폴리오를 만든다.
그리고 각각의 조합으로 다양한 제품들을 조금씩 만들어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핀 후 잘 팔리지 않는 것들은 과감히 버리고 팔리는 것들은 대량생산해 전 세계 매장으로 내보낸다. 이 모든 절차가 불과 2주 안에 전광석화처럼 이뤄진다. 무수한 변수가 작용하는 시장을 예측하기보다는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는 방식을 쓰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축구에서도 감독은 물론이고 선수들의 창의적인 사고와 유연한 판단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경기를 지배할 수 없다. 이번 월드컵은 현대 축구의 이런 흐름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축구는 발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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