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택 목사<보스톤늘푸른교회>
“보스턴은 기회의 땅 입니다.” ‘이게 뭔 소린가?’ 저 같이 성격이 급한 분은 딱 제목만 보고도 아마 이 칼럼을 읽지 않을 것 같아요. ‘이게 무슨 강아지 뿔 뜯어 먹는 소리인고?’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죠.
지금이, 30년 전 미국처럼 무슨 일을 하던 대박이 나는 시대도 아니고, 보스턴에 하버드니 MIT니 하는 명문대학이 있지만 보스턴에 산다고 이런 학교를 모두 다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보스턴이 무슨 기회의 땅이라는 거야? … … 그러게요.
오히려 보스턴은 아무런 기회도 없는 광야와 같죠. 얼마 전 받은 엽서 끝자락에 이렇게 써 있었어요. “From Sandiego, 미 서부의 천국 / To Boston, 미 동부의 광야” 보스턴에서의 학업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 친구 한 명이 한국을 가기 전 샌디에고를 여행하던 중 보낸 엽서였습니다. 광야라. 이 단어만큼 보스턴을 잘 설명하는 단어는 없는 것 같습니다. 광야! 보스턴! 그래서,
“보스턴은 기회의 땅 입니다.”
광야는 불확실성의 대명사죠. 날씨가 언제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어요. 언제 어디서 동물과 강도들을 만날지 알 수 없습니다. 변변한 집도 없습니다. 천막생활이죠. 불편합니다. 게다가 잔인하게도 놀 곳은 하나도 없고, 외롭기까지 합니다. 불확실한 곳, 불편한 곳, 재미없는 곳, 외로운 곳. 딱 보스턴이네요.
광야에서는 혼자 살 수 없습니다. 항상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요.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해요. 엄청난 일을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도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말이죠. 그래서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사람 인(人 )자의 한문은 사람이 서로 기대어 있는 모습을 상형화 한 글자입니다. 인간은 서로 의지하는 존재라는 의미죠. 이 단순한 한 글자에 사람의 본질에 대한 수만 년의 관찰과 그로부터 나온 지혜가 함축적으로 담겨져 있습니다.
광야 같은 “보스턴은”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의 땅입니다.”
한 번도 가족 이외의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던 사람들이 자존심을 구기면서 도움을 청하고 그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곳이 보스턴이죠. 보스턴에서 누군가를 도와 줄 때, (대부분 자잘한 일들이지요.) 살아생전 도움이란 걸 처음 받아본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누가 한국에서 은행계좌를 열고, 전화기 계정을 열고, 집 계약을 하며, 심지어 마트에 가는데 다른 사람의 도움을 꼭 필요로 하겠나요? 그런데 보스턴에 딱 도착하면서 부터는 계속해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보스턴 땅에 처음 와서는 도움을 받으면서 인간의 의미를 배워갑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는 도움을 주면서 인간의 의미를 배우게 됩니다. 도움을 주고받고, 받고 주고 이게 사람 사는 거죠. 먹고 마시는 것 보다 내 몸을 편하게 즐겁게 하는 것 보다, 함께하는 가운데 참 행복이 있고 만족이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인간은 함께할 때, 서로에게 도움을 줄 때 행복한 거잖아요. 평범한 진리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이 칭송받는 개인주의가 판을 치는 우리 세대가 잃어버린 진리가 아닐까요?
광야 같은 “보스턴은”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의 땅입니다.”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도 배부르고 편안하지만, 그래서 혼자 방구석에 틀어박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하루 종일 놀지만, 참된 행복과 만족을 잃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보스턴이라는 광야에서 부대끼며 깨닫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보스턴이 당신에겐 기회의 땅 인거죠. 진리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다리가 되어준 것입니다. 전 보스턴 너무 좋아요. 보스턴 와서 좀 더 인간다운 인간이 됐습니다. 항상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광야와 같은 보스턴이 여러분에게 인간의 의미를 더 깊이 배우는 기회의 땅이기를 축복합니다.
하지만 기회는, 그 기회를 기회로 잡는 사람에게만 기회가 되겠지요. 샌디에고에서 편지를 보낸 친구도 보스턴에서 인간에 관해, 진리에 관해 배우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한국에서 처음 보스턴에 왔을 때 보다 돌아가는 지금, 더 인간다워졌겠지요. 그리고 이제 그 배운 데로 한국에서 다른 이들과 인간답게 잘 살아갈 기회를 갖게 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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