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환>
식민지 미국은 밟힌 지렁이처럼 타의에 의해 꿈틀거리게 되었고 꿈틀거리다보니 밟은 사람을 넘어트리는 상상도 못했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미국은 “이겨서” 독립을 쟁취하게 되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같은 말이기는 하지만 영국이 “졌기” 때문에 미국은 독립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은 말일는지도 모르겠다.
유럽의 패권국이 된 영국을 상대로 식민지 미국이 전쟁을 해본다는 것은 정상적으로는 생각해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영국군은 전투경험이 많은 멋있는 제복 “Red Coat”를 입은 정규군이었고 독일등지에서 데려온 전투전문 용병(mercenary)도 쓰고 있었으며 막강한 해군력이 있는 나라이었다. 미국의 군사력을 한번 살펴보자.
독립전쟁이 시작되었을 때에는 미국은 ‘정규군’은 단 한명도 없었다. 군대만 없었던 것이 아니고 ‘미국’이란 나라도 없었다. 미국의 각 지역에는 ‘민병대’ 라고나 불러줄 수 있는 Militia라는 것이 있었는데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이들이 동원령이 내리면 일분 안에 자진 출동한다는 의미로 이들을 ‘Minutemen’이라고도 불렀었다고 한다. 이들은 제복도 없고 군사훈련이라는 것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자기 총과 총알을 가지고 나왔다가 가정에 무슨 일이 있거나, 아니면 단순히 싫증이라도 나면, 아무 때고 집에 되돌아가 버리는 사람들이었다.
연령은 16세부터 60세에 이르는 남자들로써 독립 전쟁 중에는 대개 절반정도가 한번은 총을 잡았었다고 한다. “독재정권을 통제하는 수단으로써 국민의 총기휴대권한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미국의 National Rifle Association의 역사적인 뿌리가 깊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군대를 가지고 영국 정규군과 전투를 했어야했던 조지 워싱턴 장군은 미국 민병대가 ‘있으나 마나한’ (useful and useless) 라고 자탄하였는데 영국군을 게릴라식 작전으로 공격하는 데는 useful하였으나 이군대로 어디를 공격하여 함락시킬 수는 없다는 의미로 ‘useless’ 라고 말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국군 입장에서 보면 민병대들이 전투를 위해서 행군을 하는 것 같은 일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음으로 ‘nowhere’인 것은 분명한데 영국군이 가는 데마다 민병대들이 나타나 총을 쏘아대는 까닭에 ‘everywhere’ 이라고 겁을 내었다고 한다.
영국군들이 미국과의 전쟁을 “13개의 머리를 가진 공룡”과 싸우는 것 같다고도 말했었다는 데 머리를 한두 개 잘라도 그냥 계속 살아있는 신화속의 괴물과 같다고 했으며 나라의 수도가 없는 ‘나라’와 싸웠던 탓으로 ‘수도점령, 전쟁완료’라는 공식이 통하지 않는 전쟁이었던 까닭이었다. 이 전쟁을 7년여 동안 13개주 중 주로 중북부 이북의 지역에서 해왔었다.
또 한 가지 영국군을 혼돈스럽게 만들었던 점은 영국군은 ‘유럽식 전’투에만 익숙해 있어서 ‘미국식전투’에서는 번번이 패전하게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현대의 전쟁개념으로는 그 우스꽝스러움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미국독립 전쟁 때까지의 유럽식 전쟁이었다. 동서양의 역사기록들을 보면 “전면전쟁”이 관행적인 전투방법이었던 것으로 되어있는 것이 많다. 그러나 유럽식전투는 “신사협정”에 따라 전투를 했던 모양이다.
전쟁은 왕들 간의 이해관계로 하는 적이 많았던 까닭에 막상 전쟁에 참여하는 직업군인들은 왜 전쟁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며 전투는 정규군들끼리만 했던 까닭에 민간인들은 전투를 구경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몹시 추우면 휴전을 했었다고 하며 장교들은 대게 귀족출신이었던 까닭에 전투가 끝난 저녁에는 적국장교들이 같은 주점에서 식사도 하고 파티도 하였었다고 한다.
유럽식 전투의 가장 우스꽝스러운 대목은 ‘전투규정’이었다. 불문율이었음으로 ‘규정’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전투를 하려면 운동장 같은 넓은 장소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양쪽 군인들이 일렬횡대로 줄을 섰다. 한방씩밖에 장진할 수 없었던 납덩어리 총알을 총에 장진한 채 신호 ‘나팔’에 따라 동시에 적군에게 발사한다. 어느 쪽이 먼저 많이 죽느냐에 따라 승부가 결정되는 것이었다. 살인 올림픽을 했다고나 할까? 신호 전에 총을 먼저 발포하지 않아야 했으며 적이 모르는 신무기를 쓰는 것이나 기습 같은 작전은 신사적이지 않아서 서로 자제들을 했었다고 한다.
한편 미국의 개척자들은 미국 원주민들과의 싸움에서 ‘전면전적 전투방법’을 배웠다. 원주민들은 처음에는 활을, 나중에는 총을, 나무 뒤나 바위 뒤에 숨어서 쏘아대고 게릴라식 기습작전을 했었다고 한다. 미국사람들도 자연히 이런 ‘미국식’ 전투방법에 익숙해지게 되었던 것이다. 유럽식 전투를 하는 군인들이 미국식 전투를 하는 민병대를 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미국사람들은 자신의 가족, 재산, 자유를 위해서 생명을 건 사람들이었고 영국군은 어쩌면 왜 싸워야 하는지도 모르는 직업군인이었던 탓에 사기도 엄청나게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가장 직접적인 군사위협을 받은 매사추세츠는 영국과의 불가피한 전쟁에 대비하기 위하여 Boston 에서 20여마일 떨어진 Concord 에 군수물자 저장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정보를 입수한 영국군은 1775년 4월 19일에 Concord를 습격하여 군수물자를 압수하기로 결정하였다.
영국군의 작전계획을 알아낸 보스턴 사람들은 4월 18일 밤에 유명한 은 세공장이 이었던 Paul Revere와 다른 한사람을 Concord로 가는 중간에 있는 Lexington 으로 말에 태워 보내서 동네사람들에게 “Red Coats are coming!” 이라고 외쳐대게 하였다. 이때의 Paul Revere 의 활동을 그린 그림이 미국의 박물관 등에 많이 전시되어 있다.
다음날인 4월19일 아침에 Lexington의 광장에는 70명의 Minutemen들이 영국군 700명의 길을 막아 나서고 있었는데 영국군은 Minutemen 8명을 사살하고 10명을 부상시킨 후 Concord로 진격하였다. 영국군이 Concord에 이르자 수천 명의 민병대원들이 나타나 총을 쏘아대기 시작해서 미국 측도 백여 명이 사상되었으나 영국군은 3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채 Charlestown 으로 후퇴하였다. 말하자면 미국의 첫 전투‘승리’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미국의 독립전쟁은 이처럼 “선전포고”도 없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나라도 없고 중앙정부도 없었던 미국은 1775년 5월에 늦게 참석한 Georgia 주를 제외하고 12개주의 대표들이 Philadelphia 에 제2대륙회의 (Second Continental Congress) 로 모여서 우선 보스턴 인근에서 모집한 대륙군 (Continental Army)의 총사령관으로 버지니아의 조지 워싱턴을 임명하고 영국 상선들을 약탈하기 위해서 개인의 배들을 동원해서 해적 같은 해군을 창설했다.
Lexington과 Concord 의 전투소식을 들은 미국사람들은 뉴햄프셔, 커네티컷, 로드아일랜드, 매사추세츠 등지에서 16,000명이 총을 들고 보스턴 지역으로 모였다. 워싱턴이 아직 총사령관으로 취임하기 전에 모인 이들은 한 민병대 대령의 지휘로 보스턴 강 건너편에 있는 Bunker Hill 이라는 곳에 진지를 치기로 하였는데 지리를 잘 몰랐던 탓에 6월 16일에 Breed’s Hill 이라는 곳에 진을 쳤다.
다음날 아침부터 세 번에 걸쳐서 영국군이 침공해오자 독립 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를 했었다. 총알이 없어서 총검으로까지 전투한 끝에 미국 측이 졌지만 영국군은 천여 명이 사상되었으나 미국 측은 그 절반정도의 사상으로 끝났다. 독립전쟁 동안에 전사한 영국군 장교의 8분의1이 이 Bunker Hill 전투에서 전사하였다고 한다. 이 전투에서 미국 측은 졌지만 사실은 이긴 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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