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자 뷔 또는 기시감이란 말을 이럴 때 쓰는 모양이다. 두 달 전쯤 있었던 세월호 참사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지금까지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란을 보고 들으면서 “이건 전에도 몇 번씩 경험했던 똑같은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20년 전에도, 10여 년 전에도, 5-6년 전에도 한국에서 이와 비슷한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났었던 것 같다. 그때마다 한국사회에서 실종된 법치(法治), 즉 법치 부재를 지적하곤 했다.
법치에 무딘 한국사회의 모습은 얼마 전 지방선거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무엇보다도 당선자의 36퍼센트가 범죄기록을 가진 전과자라는 사실이 놀랍다. 그들의 범죄기록에는 집회시위법, 선거법 위반은 물론이고 사기, 폭행치사, 과실상해, 특수절도, 탈세, 업무방해 등 다양한 범죄들이 포함되어 있다.
당선자 중에는 무려 9건의 전과를 가진 사람도 있다는데 그러고도 뻔뻔하게 선거에 나오는 사람들도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을 뽑아주는 국민들의 무감각한 법치의식이나 준법정신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툭하면 세계 몇 위의 경제로 성장했다고 자랑하는 한국이지만 법치에 관한 한 한국의 모습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한국의 교통사고 사망률은 OECD 34개 국 중 두 번째로 높고, 부패지수와 법질서 지수는 27위에 쳐져 있다.
한국의 법치부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수십년 동안 거듭돼 온 사회적 적폐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기에 세월호 참사가 오로지 정부의 책임이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타당치 않다, 예의 촛불을 들고 나와 정권퇴진을 선동하는 세력들도 문제지만, 정경유착이나 관피아, 국가개조 같은 말을 들먹이며 누군가에게 책임의 화살을 겨누는 학생들이나 교수들의 시국선언도 문제를 헛짚기는 마찬가지다.
화살을 겨누어야 할 대상은 자기 자신들인데 아직도 한국인들은 법치부재가 정부나 정치인, 공무원 등 일부 지도자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의사당에서 난투극을 벌이는 국회의원들은 비난하면서 빨간불에 그냥 지나가고 도로에서 무단 횡단하는 자기 스스로는 괜찮다고 여긴다. 소방도로에서 장사하는 불법노점상을 탓하면서 인도나 뒷골목에 불법 주차하는 자기 스스로는 책하지 않는다.
학위위조나 논문표절은 정치인, 교수, 연예인들의 잘못이라고 손가락질 하면서 학연, 지연, 혈연을 이용해 이득을 챙기는 자기 스스로의 탈법에는 무감각하다. 지하철에서 난동을 부리는 취객은 나무라면서 거리에 침 뱉고 담배꽁초 버리는 자기 스스로의 질서위반은 모른 체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법과 규정을 곧이곧대로 지키고 따르는 사람은 세상 물정 모르고 앞뒤가 막힌 사람으로 취급되기 십상이다. 법을 지키는 사람만 손해 보고 어쩌다 잡히면 운이 없어서 그렇게 됐다는 풍토가 깔려있다. 절차와 과정은 무시하고 어떻게 해서든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는 생각이 퍼져있어 국민들의 준법의식은 무딜 대로 무뎌져 있다.
한국내의 이러한 현실을 보면서 미주한인사회의 법치는 조금 낫겠지 하는 희망 섞인 생각을 해 본다. 그것은 내 자신이 미국에 와서 살면서 마음속에 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새롭게 싹텄고 모르는 사이에 그것이 내 안에서 자라왔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마도 미국에 와서 얻은 가장 큰 것 중의 하나인 것 같다.
한국인들이 자주 하는 “그런 법이 어디 있어”같은 표현에서도 보듯이 한국인들은 모두가 지키도록 정해 놓은 법은 제쳐두고 자기 마음대로 이런 법, 저런 법을 만들어 적용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국인들이 법치에 익숙하지 않은 이유는 문화적, 역사적 배경 때문이기도 하고 또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인 성향 때문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문화적 배경이건 성향이건 간에 법치에 약하고 무디다면 이는 빨리 고쳐야 한다.
그러니 이제 “빨간 불에 그냥 지나가지 말자.” 이 작은 규칙의 준수가 법치확립의 시작이고 질서구현의 출발이다. 이것은 또 정직을 실행하는 것이고 사회적 양심과 도덕성을 키우는 밑거름이다. 하지만 이는 정치인들이나 부자들이나 박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다 해야 하는 일이다. 법치사회로 가는 길은 교육(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과 자기계발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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