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전 열닷냥’이라는 대중가요가 1950년대에 유행했다. “…내 낭군 알성급제 천번만번 빌고 빌며 청노새 안장 위에 실어주던 아~ 아~ 엽전 열닷 냥…”이라는 가사이다. 과거보러 한양으로 떠나는 남편에게 아내가 노잣돈으로 엽전 열닷 냥을 줬다는 얘기인데, 그 돈이 현재 화폐가치로 얼마나 되는지 초등학생 시절이었던 그때나 지금이나 종잡기가 어렵다.
엽전 꾸러미를 행낭에 넣거나 허리춤에 채워주지 않고 노새 안장에 실었다는 말은 무게가 무겁고 부피도 상당히 컸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공식화폐였던 ‘상평통보’의 한 냥은 100전이다. 미국 돈 1달러가 100센트인 것과 마찬가지다. 열닷 냥은 기초단위 엽전인 ‘당일전’짜리 1,500개를 모은 양이다. 주머니에 넣거나 허리춤에 차기에는 너무 많고 무겁다.
물론 열닷 냥이 15달러와 대등한 가치는 아니다. 조선시대 쌀 한 가마니 값이 대체로 다섯 냥 안팎이었다. 열닷 냥이면 쌀 세 가마니 값이지만 15달러로는 20파운드짜리 살 한 포대를, 그나마 세일할 때 살 수 있고, 삼시 세끼를 맥도널드 햄버거로 때울 만한 돈이다. 요즘 서울 인사동 고화폐 수집상에서 상평통보 당1전이 개당 3,000원 내외에 팔린다고 한다.
‘엽전 열닷 냥’을 닮은 ‘달러 열닷 냥’ 구호가 지금 미국 대도시에 울려 퍼지고 있다. 근로자의 시간당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올리라는 것이다. 그 발원지가 하이텍 도시 시애틀이다. 최저임금 15달러 인상안을 시의회가 지난 주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종업원 500명 이상의 대기업은 2017년까지, 그 이하의 중소기업은 향후 5~7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시행한다.
최저임금 15달러 인상은 시애틀에 앞서 시애틀-타코마 국제공항이 위치한 시택 시에서 작년 주민투표로 확정됐다. 하지만 이 임금은 호텔, 식당. 렌터카 등 여행 관련업계 종사자들에만 적용된다. 정작 시택 공항 근로자들은 비행장이 시택 시 아닌 시애틀 항만청 소관이어서 적용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들도 이젠 시애틀시의 인상조치에 따라 혜택을 받는다.
시애틀에서 쉽게 승리를 쟁취한 노동단체들이 잽싸게 벨뷰, 올림피아, 벨링햄, 스포켄 등 주내 다른 도시로 눈을 돌리고 있다. 15달러까지는 안 돼도 일단 올리자는 얘기다. 그동안 개별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해온 LA,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 전국의 다른 주요도시들도 시애틀의 성공사례에 크게 고무돼 ‘달러 열닷냥’ 캠페인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제이 인슬리 워싱턴 주지사도 힘을 받았을 터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시간당 7.25달러인 현행 연방 최저임금을 10.10달러로, 인슬리 지사는 9.32달러인 현행 주 최저임금을 12달러로 각각 올리는 게 꿈이다. 워싱턴주 최저임금은 현재 주단위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도시별로는 샌프란시스코가 10.74달러로 시애틀에 앞서 전국 최고였다.
꼭 40년 전인 1974년 연방 최저임금은 단돈 2달러, 워싱턴주는 그만도 못한 1.80달러였다. 15달러 최저임금은 엄청 많아 보이지만 그간의 인플레를 감안하면 그렇지도 않다. 시간당 15달러씩 풀타임으로 1년간 일하면 3만1,000달러 정도를 번다. 원 베드룸 아파트에서 빠듯이 먹고 살만 하지만 케이블 TV, 스마트폰, 극장구경, 여행 따위는 그림의 떡이다.
아파트 렌트만 따져도 시애틀이 월평균 1,400달러, 마이애미가 2,329달러, 시카고가 1,550달러, LA가 1,591달러(교외지역 1,140달러), 뉴욕(맨해튼)이 3,420달러이다. 개솔린과 우유 값은 공통적으로 갤런 당 4달러 안팎이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워싱턴DC, 호놀룰루, 보스턴, 시애틀 순으로 생활비가 비싼데 시애틀이 맨 먼저 15달러 최저임금 시대를 맞게 됐다.
이제 ‘달러 열닷냥’ 구호는 요원의 불길처럼 번질 터이다. 고용주들의 한숨도 그만큼 깊어질 터이다. 하지만 코스코는 종업원들에게 법정 최저임금의 두배가 넘는 21달러를 주고도 성 업을 구가한다. 내 친지 한명은 최저임금 이하를 받으며 4반세기를 일하고 마이홈을 장만했다. 나도 근로자로서 최저임금 인상을 환영하지만 인생만사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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