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굿으로 유명한 무녀 김금화씨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타리식 영화 ‘만신’(2013년)은 천대받던 한국 무속신앙의 문화 및 정신세계를 잘 표현한 작품이다. ‘만신’은 무당이 단지 신과의 영매자로서가 아니라 우리 고유의 춤과 색깔, 가락까지 두루 섭렵하고 간직해온 민중 기예가임을 보여준 작품이란 극찬을 받았다. “룸살롱도 없었고 나이트클럽도 없었던 옛 서민들에게 굿판은 놀잇거리였다”는 김씨의 말대로 굿은 가난한 서민들이 시름을 달랬던 잔치판이고 춤판, 소리판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만신’중에 김씨가 송영길 당시 인천시장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김씨가 배를 타고 백령도 앞바다서 풍어와 뱃길의 안전을 기리는 굿을 하려는데 때마침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출항이 금지돼 이를 풀어달라는 부탁이다. 김씨의 설명을 들은 송 시장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김씨의 풍어제 뱃길을 열어주게 했다.
제작팀도 송시장의 당연하고 감사한 배려로 생각해 영화의 한 장면으로 편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송시장의 행동은 세월호 사태를 맞은 한국사회의 부조리한 단면을 그대로 노출한 반성해봐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출항 금지는 정부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배와 수백여 탑승객의 안전을 위해 취한 한시적 타당한 조치일 것이 분명한데 시장의 전화 한통화로 불허 됐던 허가가 나왔다면 이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세월호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눈감아 주고 풀어주는’ 봐주기 문화가 한국 곳곳에 아무렇지 않게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10년 전 가족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을 때 고교 동창의 제안으로 비원을 찾았었다. 일반인의 출입이 차단됐다가 처음 공개되는 비원 깊숙한 아방궁 같은 정원을 구경 간다기에 들떠 있었는데 문화재 훼손 우려로 1일 관람객 수를 철저히 제한해 입장권이 매진됐다는 것이다. 동창이 어디론가 전화를 건지 5분후쯤 관리 사무소에서 뛰어나온 고위 직원이 매표소 직원이 없다던 출입증을 5장이나 내어 주며 입장을 시켜줬다. ‘빽’으로 들어가 구중궁궐 임금의 놀이터였던 정원과 연못을 둘러보며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내심 아직도 이런 일이 있나 싶어 씁쓸한 입맛을 다셔야 했다. 현장의 실무 직원이 아무리 원칙을 지키려고 해도 위에서 내리 꽂는 한마디면 모든 것이 끝난다. 원칙이고 뭐고 없다.
수년전 한국 정치권 실세 인사의 부인이 LA 총영사를 ‘남편의 똘마니’로 불러 주변 한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일은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실세 인사는 그 총영사를 ‘00’야로 불렀다. 당사자는 친근감으로, ‘똘마니’ 총영사는 후광을 과시했을지 모르지만 공사를 가리지 못하고 끼리끼리 해먹는다는 인상을 줄뿐더러 총영사의 체면을 형편없이 구겨놓았다.
오래전 연세대학교를 설립한 언더우드 선교사의 손자가 한 영문 잡지에 ‘In and Out’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끼리끼리 문화를 꼬집은 기사는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가 되돌아봐야 할 과제가 아닌가 싶다. 언더우드의 이 기고문은 학연, 지연에 얽매인 한국의 ‘편 가르기’를 지적한 글이다. 내편이 되면 간이라도 뽑아줄 것 같이 친절하고 끈끈한 의리를 자랑하지만 한번 편에서 내밀리면 철저히 원수가 된다는 것이다.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자랑하지만 길가다가 어깨라도 마주치면 눈을 부라리며 주먹질도 서슴지 않는다며 비꼬는 내용에 속이 상하기도 했지만 꼭 한번 되새겨야할 귀중한 충고라고 생각된다. 우리 편에 들면 돈도 생기고 진급도 된다. 하지만 ‘우리’를 유지하려면 의리라는 명목으로 각종 비리도 눈감아 줘야 한다. 부조리나 부정부패를 목격해도 덮어 버려야 우리 편에 속해 영화를 누릴 수 있다.
세월호 참사이후 한국의 분위기는 또 다른 세월호 침몰을 보는 듯해 어지럽고 답답하다. 금쪽같은 자식을 졸지에 잃어버린 부모들의 절규,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분노, 전국의 초상집화, 국난을 이용하려드는 정치인들, 그와 중에 법망을 피해가며 도주 활극을 벌이는 유병언, 관피아 파동, 할 말 못하고 눈치 보며 오보만 쏟아내는 언론들...
세월호 사태는 어제 오늘의 문제에서 싹튼 부정부패의 산물은 결코 아니다. 대통령을 탓할 일도 아니고 공무원을 탓할 것도 없다. 공무원도 국민이고 피해자도 우리다. 우리 자신을 탓해야 할 일이다. 권력이면 다되는 사회, 뇌물주면 눈감아 주고 우리 편이 잘못해도 감싸주는 이상한 의리의 사회. 이런 사회를 만든 장본인은 ‘우리’다. 줄기차게 ‘네 탓’하며 손가락질만 계속하면 세월호의 비극은 또 찾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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