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대통령의 측근 실세를 기소했는가 하면 철저한 수사로 현 여당의 전신이었던 한나라당에 차떼기 정당이란 오명을 안겨주어 한 때는 국민 검사라고 상찬을 받았던 안대희 씨의 공직생활 대단원이 꽤나 씁쓰름하다.
세월호 참극과 후유증 때문에 이반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관피아’(관료사회와 마피아의 합성어)를 척결할 개혁 사도로 박근혜 대통령이 그를 국무총리 자리에 임명한 지 칠일도 못되어 사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전관예우란 극히 한국적인 현상의 늪에 빠졌던 것이 널리 공개된 탓이다.
보도에 의하면 소위 경기고와 서울대 출신의 수재 중 수재로 20세 때 사법시험 합격 등의 최연소 기록을 많이 세웠던 안 씨는 서울 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나 대법관으로 임명되어 2012년에 퇴임했다. 그리고 1년 후인 2013년 7월에 변호사 개업을 해 그해 5개월 동안의 수입이 무려 17억원, 그러니까 하루에 1,000만원씩 벌었다는 데야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런 사람이 관료사회만이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를 개혁하려는 노력에 있어서 선봉장 역할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라서 심지어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 언론사들로부터도 해명을 요구받다가 물러나게 된 것이다.
서울의 일류 로펌들이 퇴임 대법관을 포함한 전직 판검사들을 엄청난 보수를 지급하면서 스카우트 해가는 것은 비밀도 아닌 모양이다. 현직 판검사들이 과거의 상관들이었던 변호사들을 봐주는 전관예우의 관행 때문에 사법 절차에 연루된 기업들이나 부자들이 사건 수임료로 일반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액수의 돈을 쾌척하는 것이다. 대법원에 상고되는 사건 서류에 도장 하나 찍어주는 대가가 3,000만원이라는 설도 있을 정도다.
대기업 총수들이나 임원들이 법정에 서게 될 때 체형을 피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천정부지일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 사건에서 60억원을 받은 전 대법관도 있었다는 보도이다.
미국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물론 독립된 사법부가 존재해온 지 200년이 넘는 나라이고 제도도 다른 점이 있어서 한국과 비교한다는 게 무리이기는 하다. 미국의 대법원 판사(9명)들 그리고 종신직인 연방 순회 그리고 지방법원 판사들(870명)은 자진해서 조기 은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퇴직 후 로펌으로 가거나 변호사 개업하는 일이 거의 없다. 저술 활동, 학계 진출 아니면 강연 등을 통해 사회발전 특히 법조계의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 50개주의 각급 법원들의 경우는 판사가 종신직이 아니라서 임기가 끝나거나 임명제가 아닌 선출직 판사의 경우 선거에서 패배하면 다시 변호사로 법원에 출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경우에 과거 동료들이었던 현직 판사들이 ‘전관’들이 대표하는 사건들에 유리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가능성은 인간 마음속의 깊숙한 동기와 심성에 따라 있을 수도 있겠지만 증거에 따른 ‘공평무사한 판결’의 구호와 이상 때문에 상당히 제약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어떤 판사가 자신의 동창생 변호사가 법정에 나타날 때 그에게 유리하게 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껴 공평무사의 정신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민사소송의 경우 원고 피고 양쪽의 입장과 증거가 팽팽하게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제도 아래서 사실 심리는 배심원이, 법적용은 판사가 한다지만 증거 채택에 관한한 판사의 판단은 상고로 뒤집어지기까지는 절대적이라서 그릇된 판사의 판단으로 어떤 결정적인 서류가 증거로 채택이 안 되면 배심원이 그 서류를 고려하기는커녕 서류의 존재 자체를 무시해야하기 때문에 결국은 포켓의 깊이가 사건의 종결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이다.
불완전한 인간사회라 미국 사법부라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헤이팅스란 플로리다주 연방 지방판사는 자신의 법정에 서게 된 범죄자로부터 뇌물을 요구했다는 죄목과 위증 죄목으로 연방하원의 탄핵을 받아 상원의 재판 결과 해임되었었다. 반면 연방법원의 형사사건에 있어서는 배심원에 의해 무죄 평결을 받았을 뿐 아니라 플로리다주 어느 선거구의 연방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미국 역사상 탄핵소추를 받은 15명 판사 중 하나라는 오명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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