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동구권이 요동친다. 소련제국이 붕괴됐다. 숨 쉴 틈도 없이 전개되고 있는 세계사적 사건들. 그 때, 그 당시 미국 대통령이 오바마 이었으면 어떤 결과가 왔을까. 내셔널 인터레스트지가 던진 질문이다.
역사에는 가정법이 없다고 했든가. 그런데 왜 굳이 가정법을 동원하면서 이 같은 질문을 던졌을까.
국내외적으로 만만치 않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이 모든 위기의 극복은 대통령의 리더십에 달렸다. 그런데 그 대통령의 리더십이 어딘가 허약해 보인다. 일부에서는 표류상황을 맞고 있다는 주장마저 서슴지 않는다. 그 만연한 불안감의 발로가 아닐까.
대통령의 리더십 문제가 새삼 클로즈업되고 있다. 성공한 대통령과 실패한 대통령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실패한 대통령 이야기부터 해보자. 한 ‘대통령학’ 전문가는 대통령의 실패를 무작위적 실패(failure of omission)와 작위적 실패(failure of commission), 두 가지로 분류한다.
본인의 잘못은 아니다. 통제 불능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잘못된 과거 정책의 누적결과라고 할까. 위기는 거기서 비롯됐다. 그 위기 앞에서 그러나 드러내 보인 것은 무능밖에 없다. 위기대처에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무작위적 실패를 말하는 것이다.
노예제 위기는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 위기로 미합중국이 분열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무대책으로 일관했다. 링컨의 전임인 뷰캐넌 대통령이 맞은 상황이다.
왜 그는 실패한 대통령이 됐나. 먼저 품성, 자질론이 제시된다. 때문에 좁은 정치적 이해에만 급급해 대사를 그르쳤다는 것이 역사가들의 진단이다.
과감한 정책드라이브를 펼쳤다. 결과는 그러나 참담한 실패다. 그로 인해 경제가 말이 아니게 되면서 정치, 사회적으로도 악영향을 끼쳤다. 작위적 실패의 경우다.
윌슨 대통령의 2기가 이에 해당된다. 1차 대전 참전을 위해 무리수를 두었다. 전쟁을 빌미로 지나친 국유화정책을 펼쳤다. 시민의 자유를 속박했다. 그 결과 유권자들은 등을 돌리고 미국의 GDP는 6.5%나 감소하면서 대공황의 늪에 빠져들게 됐다.
무작위적 실패와 작위적 실패- 역사가들은 어느 쪽에 더 나쁜 점수를 줄까. 무작위적 실패다. 나름 노력을 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이 작위적 실패에 역사는 다소 관대한 편이다.
성공한 대통령으로 이야기를 돌려보자. 링컨, 조지 워싱턴, (프랭클린) 루스벨트. 성공한 대통령의 귀감이다. 이 세 대통령에게는 그래서 항상 ‘위대한’이란 수식이 따라붙는다. 그에 준하는 성공적 대통령으로 제퍼슨, 잭슨, (시오도어) 루스벨트 등이 꼽힌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역사의 전환기에 지도자로 선택됐다. 그러면서 새로운 국가 방향설정에 성공한다.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아 새로운 비전과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그가 제창한 정책노선은 한 시대의 노선이 된다.
분열 위기에서 미합중국을 구했다.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미국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졌다. 대공황,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극복해냈다. 위대한 대통령들의 공헌이다.
여기엔 한 가지 단서가 붙는다. 위대한 대통령은 ‘시대의 산물’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중국식으로 표현해 치세(治世)에 대통령이 됐다. 그 대통령에게는 패러다임의 변혁 같은 것은 요구되지 않는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아무 때나 ‘민족중흥’이 요구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에게 먼저 요구되는 것은 ‘시대에 대한 통찰력’이라는 지적이 따르고 있다.
불안은 계속 높아간다. 파당으로만 치닫고 있는 워싱턴정국. 푸틴의 러시아, 시진핑의 중국으로부터의 거센 도전에 날로 약화되고 있는 수퍼 파워 미국의 입지 등등으로. 이 상황에서 오바마 리더십은 어떤 역사의 평가를 받을지 벌써부터 불안한 시선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게 그런데 미국만의 이야기일까. 여전히 중심을 못 잡고 있다. 아니, 스스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세월호 참사 한 달이 훨씬 지난 현재 한국 정부의 모습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그 수습책 제시가 졸속적이었다. 인사(人事)는 또 다시 참사(慘事)가 됐다. 안대희 낙마로 집권 15개월의 박근혜 정부는 백지 상태가 됐다. 더 우려되는 것은 정부 지휘부의 공백사태다.
화급한 개혁과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게다가 한반도의 안보지형이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대결구조와 함께 동아시아의 구 안보질서는 무너지고 새 질서가 태동되고 있다. 여간 엄중하지 않은 게 안보정세인 것이다.
진정한 리더십, 지도자의 진면목은 위기 때 드러난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것은 다름 아니다. 먼저 겸허히 잘못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음을 열고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도 포용하는 것이다. 설득과 화합과 소통과 감동의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장래는 험난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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