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브라이언 김 경영칼럼
▶ 터보에어 그룹 회장
경찰의 정지 명령을 무시하고 도주하던 흑인 운전자 로드니 킹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무자비하게 구타한 백인 경찰관들이 법원으로부터 가벼운 처분을 받은 것에 흥분한 사우스 센트럴지역 흑인 주민들의 난동으로 4.29 폭동이 시작됐다.
한인타운을 포함한 LA 일부지역은 3일 동안 공권력 부재 속에 방치됐으며, 와중에 2.200여개의 한인운영 업소가 약탈과 방화로 3억5,000만달러의 막대한 재산 피해를 당했다.
당시 냉동장비 설치와 서비스 사업을 했던 필자의 주요 고객들은 사우스 센트럴 지역에서 리커스토어나 마켓을 운영하던 한인들이었다. 따라서 나는 한인업주와 흑인 고객과의 관계를 객관적 시각으로 볼 수 있었고, 사람과의 관계는 문화 차이나 언어의 장벽보다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임을 알게 됐다.
마켓이나 리커스토어를 운영하던 대부분 한인들은 자신의 경력과 무관했으며, 사전 준비나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언어장벽과 위험한 여건에서 장사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도 많았다. 거기다 물건을 훔쳐가는 고객들이 많다 보니 반가운 미소보다는 매서운 감시의 눈초리가 먼저이고, 그들의 불평과 항의는 냉소와 무시로 대응하는 게 일반적 풍경이었다.
그런 가운데도 기억에 남는 여러 업주들은 늘 미소를 잃지 않고 친절하게 흑인 고객들을 대했으며 항상 겸손한 자세를 보였다. 돈이 조금 부족해도 따지지 않고 식품을 건네주고, 아이를 안고 오면 사탕을 손에 쥐어줬다. 이런 한인이 운영하는 업소들은 폭동이 발생하여 여기저기 가게들이 불타고 약탈당하고 있을 때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뛰쳐나와 “여기는 우리 친구 가게야. 불 지르면 안된다구”고 고함을 치면서 폭도들로부터 업소를 필사적으로 지켰다. 폭동의 중심에서도 흑인 주민들의 자발적 보호로 무사할 수 있었던 업소들이 평소 겸손하고 친절한 업주들이었음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에 충분하다.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섬마을에 외손주 한명을 키우며 사시는 일본인 할머니가 있었다.
약간의 농사와 바다에서 김과 미역을 채취하여 파는 것이 주요 경제 수단인 섬에서 토지와 어업권, 그리고 노동력은 생존의 기본이며 필수였지만, 다리가 불편하고 식구도 없는 할머니는 노동력도 전무하고 토지나 어업권 취득이 불가능한 외국인 신분이었다. 할머니는 호구지책으로 동네 사람들을 상대로 가게를 운영했는데 잠자는 방 한 켠에 사과 상자를 책장처럼 올려놓고 약간의 상품을 진열한 구멍가계라고 표현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150여가구가 대대로 터를잡고 살아온 작은 마을이라 연결하면 모두 친척뻘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엔 이미 두곳의 가계가 있었기 때문에 장사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 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할머니의 가계는 늘 팔아야 할 상품이 부족할 정도로 이웃 동네에서까지 찾아와 성황을 이뤘다. 특별한 상품을 파는 것도 아니고 가격이 싼것도 아니었지만, 다른점은 상품을 항상 깨끗하게 진열하고 누구에게나 겸손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었다. 식사 중에도 손님이 오면 불편한 다리에도 불구하고 반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이와 상관없이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하셨다.
일본으로 돌아가시던 날 아침 할머니는 마지막 용돈을 방바닥에 놓고 중학생이 된 손자에게 가지라고 했다. 그리고 무심히 집어든 손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절대 잊지마라. 그냥 ‘떨어진돈을 줍는데도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안된다”.
타운 업소를 들르다보면 값비싼 보석과 어울지도 않는 고급 브랜드 옷으로 치장한 주인이 도도한 얼굴로 손님을 쳐다보는 경우도 가끔씩 본다. 이런 사람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무시당했거나, 자신의 결핍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받아 콤플렉스가 많은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자기를 과시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진정한 겸손은 높은 자존감과 강한 자신감에서 나옴을 기억하자. 손님에게 허리를 굽히는 게 자존심 상한다면 사업을 접으라고 권하고 싶다. 스스로 그만두지 않으면 머지않아 고객들이 문을 닫아 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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