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는 지난 주 목요일 회의에서 드디어 내년도 교육예산을 확정했다. 저녁 7시 반부터 시작된 심의는 자정을 넘겨 1시가 되어서야 마쳤다. 그 동안 카운티 수퍼바이저 위원회와 교육예산 보조액수를 놓고 대립하고 교원단체들과 힘겨운 협의 등의 산고를 거쳤다. 그런데 한 해 예산 수립을 마치기 무섭게 또 그 다음 해를 준비해야 한다. 내년 예산심의도 올해 못지않게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관계자 모두가 쉴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페어팩스 카운티 공립학교는 경상예산만 해서 한 해에 25억불 규모이다. 그리고 추가적인 시설예산도 연 1억5천5백만 달러에 달한다. 이들은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규모에 비해 어쩌면 교육위원회가 시간을 쏟기에는 너무 작은 액수라고도 볼 수 있는 10만 달러 액수의 예산 항목이 지난 목요일 교육위원회 예산심의 때 수정안으로 제기되었다. 작은 액수이지만 이 수정안이 중요한 것은 한인 학부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에 관한 것이고 그 항목 제기 자체가 한인 학부모들 노력의 산물이었다는 상징적 의미 때문이다.
한 달 전 쯤 어떤 한인 학부모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조기교육 프로그램(Early Literacy Program. ELP)에 관한 우려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이민자 학부모들이 자녀교육을 위해 좀 더 준비되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훈련의 기회를 제공한다. 현재 한국어, 스페니시, 그리고 아랍어로 진행되고 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첫 번째 교사로서의 역할, 페어팩스 카운티 공립학교가 학생들에게 기대하는 학업과 태도, 그리고 공립학교가 현재 제공하고 있는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도 제공한다. 이 프로그램이 수요에 비해 현저하게 부족한데 그 것마저 내년에는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나는 이메일을 받자 바로 어렵겠지만 영어로 다시 써서 보내 달라고 했다. 교육청의 담당 직원에게 보내야 하는데 내가 직접 번역하기에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더니 이메일을 보내신 분이 여러 시간에 거쳐 정성껏 영어로 다시 써서 같은 날 보내 오셨다. 문장 구조가 어색하거나 문법에 오류가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내용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상황을 보고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메일을 보낸 분에게는 프로그램 예산에 관한 부분은 공청회 때 와서 말씀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공청회에서는 3명에게 발언 기회가 주어지는데 여럿이 와서 각 3분씩 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내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한인들이 실제 공청회에 나와 발언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뜻 밖에도 3명이나 나와서 발언을 했다. 그리고 그 분들 발언 때 뜻을 같이 하는 여러 학부모들이 뒤에 서서 동조의 뜻을 표했다. 나 뿐 아니라 동료 교육위원들도 평소 보기 힘들었던 한인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놀라워하면서 그 분들의 발언을 경청했다. 그 세 분 모두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리고 그 중 한 분은 이민자로 미국에 와서 일주일에 60-80시간씩 일하면서도 자녀들의 좀 더 나은 교육을 위해 자신의 일 스케줄을 조정해 가면서라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왔다고 했다. 이 발언은 여러 교육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결국 이들의 공청회 참여는 나로 하여금 작은 액수이지만 이 프로그램을 보다 알차게 하기 위한 예산조정안을 준비하게끔 했고 결국 동료 교육위원들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이 날 공청회에 참석한 10여명의 한인 부모님들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번 경험이 한인 사회에 좋은 본보기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교육이나 정부의 각종 프로그램과 현안에 우리의 목소리를 주저하지 말고 내야 한다. 나 하나가 과연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하는 회의적 시각보다 당장 반영이 되지 않더라도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우리가 속해 있는 커뮤니티나 공동체가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기를 바란다. 그 것은 이 땅에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나 이방인이나 방관자로 여겨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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