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워싱턴 해군기지에서 정신질환자의 무차별 총기난사에 10여명이 살해당했을 때, 우려했었다 : “탕, 탕, 탕…수개월 전 전국을 뒤흔들었던 총소리가 이번 주 또 울렸고 탕, 탕, 탕…머지않은 장래에 또 울릴 것이다”
그 음산한 예언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한 달여 전 텍사스 주 육군기지 총기난사에 이어 지난 주말엔 정신질환을 가진 22세 대학생 엘리엇 로저가 벌인 광란의 살인극에 6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당했다. 남가주 바닷가의 평화로운 캠퍼스타운 아일라비스타를 공포로 몰아넣은 이 대량 살상극을 로저는 몇 달 동안 치밀하게 계획했다고 한다.
그의 계획은 사전에 발각될 수도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폐증을 앓고 정신질환 진단을 받았으나 처방약 복용을 거부하고 있던 아들의 이상증세를 눈치 챈 어머니가 치료상담가를 통해 신고, 경찰이 방문조사를 나온 것이 불과 몇 주 전이었다. 그때 이미 로저는 3자루의 권총과 400발의 탄환을 구입해 아파트에 숨겨두었으며 ‘나의 비틀린 세계(My Twisted World)’라고 제목 붙인 137 페이지나 되는 자신의 성명서이자 범행계획서의 초안도 거의 마무리했었다.
“…누군가가 내 계획을 알아채고 신고했을까봐 난 너무 두려웠다. 그렇다면 경찰은 내방을 뒤져 나의 총과 무기들, 그리고 내 계획기록을 발견할 것이다. 난 감옥에 처넣어질 것이고 내 적들에 대한 보복의 기회를 거부당할 것이다” 범행계획서에서 로저는 “고맙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때 ‘그런 일’은 벌어졌어야 했다. 그를 면담했던 경찰은 “소심하지만 예의바른” 청년이 아닌 여성혐오증과 세상에 대한 적대감으로 가득 차 끔찍한 살인을 음모하는 불안한 정신질환자의 낌새를 눈치 채고 아파트를 수색하여 무기와 계획서를 압수하고 그를 정신치료기관에 입원시켜야 했다.
그러나 전국에서 가장 강력한 총기규제법을 가진 캘리포니아에서도 현행법은 이 같은 ‘상식적 대처’를 허용하지 않는다.
1999년 컬럼바인 고교에서 버지니아텍, 오로라 극장, 투산의 수퍼마켓 주차장, 샌디훅 초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경악케 한 총기난사 참사가 발생했을 때마다 범행의 배경은 제각기 달랐지만 근본적 원인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너무 쉬운 총기 구입과 방치한 정신질환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총기를 난사하는 광기의 폭발…
최소한 정신질환자의 손에 총기가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면 대량살상 참사는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실현해야 마땅하지만 말처럼 단순하지는 않다.
1970년대만 해도 정신질환 증상을 보이면 거리에서 그대로 요양소에 강제 입원시키는 것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에 걸친 판결과 입법으로 규정이 변했다. 정신질환자의 인권보호 차원에서 지금은 강제 입원시키기 전에 그가 자신이나 타인에게 긴박한 위협이 된다는 확실한 증거를 제출해야 한다.
‘총기의 천국’ 미국의 총기법도 정신질환자의 총기 구입과 소유는 금지하고 있다. 문제는 총기를 살 수 없는 ‘정신질환’의 기준이다. 연방법에선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한 경력이 있거나 ‘정신결함’으로 판결을 받은 경우에만 총기구입과 소유가 금지되는 ‘정신질환’에 해당된다. 캘리포니아 주법은 여기에 더해 ‘치료사에게 특정 인물에 대한 구체적 위협의도를 밝혀 그 치료사가 경찰에 그 사실을 신고한 경우’에도 총기 소유를 금지하고 있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 없고 대놓고 누구를 위협한 적도 없는 로저는, 그래서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합법적으로’ 범행을 준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 의회는 어제 새로운 총기규제 강화법 심의를 시작했다. 핵심 내용은 가족이나 친구의 요청을 받은 경찰관이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개인의 총기 구입과 소유를 일시적으로 금지할 수 있도록 법원에 요청하는 ‘총기폭력 금지명령’이다. 총기협회가 반발할 것이다.
일각에선 법원이 정신질환자에 대해 의무적 치료명령을 내리도록 한 ‘로라의 법’에 대한 확대적용도 촉구되고 있다. ‘환자의 권리 침해’라는 반대가 나올 것이다. 공공안전 책임과 개인권리 보호가 맞서면서 실현은 지연될 것이다.
로저의 총격에 희생된 크리스 마티네즈는 아버지처럼 변호사가 되려고 UC산타바바라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던 겨우 스무살, 꿈 많은 대학생이었다. 목숨 같은 외아들을 어이없게 잃고 비통한 61세의 아버지 리처드 마티네즈는 절규했다 : “…이런 상황을 용납하는 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삶은 이런 게 아닙니다. 더 이상은 단 한명도 희생 되서는 안 됩니다…이 광기는 언제 멈출 겁니까? 언제가 되어야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이 광기를 멈추도록 할 것입니까”
그의 절규는 모든 부모들의 마음에 가닿았고, 27일 UC산타바바라 추모식에 참석한 2만 명의 기립박수를 받았지만 그의 물음엔 아무도 확실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두려운 것은 총기를 난사하는 정신질환자의 광기만이 아니다. 자녀들의 꿈꾸며 살아갈 권리보다 총기소유의 권리에 집착하는 ‘광기’가 점점 더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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