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오랜만에 만난 한 지인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그냥 눈물이 나오고 우울해지는 것을 금할 길이 없어 일손이 잘 잡히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보니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이민온지 40여년이 훨씬 넘은 이 중년의 남성 사업가는 자신은 한국의 경제적인 성장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이젠 한국이 정말 살기좋은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외국인들에게도 늘 자랑을 하고 지냈는데 이번 사태로 받은 충격이 너무 커서 한 동안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기분이 울적해지면서 술, 담배를 하는 횟수가 늘었고 아직도 희생된 학생과 유가족을 생각하면 침통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한 여성 부동산 에이전트는 사건 발생 후 2주 정도 구조되지 못한 학생들이 무사귀환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그저 한없이 울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염원했던 기적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듯 세월호 참사는 재외 한인 동포들의 마음속에도 지우기 힘든 상처와 트라우마를 남겼다.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다가 1992년 LA 폭동 당시 수많은 피해자와 희생자 유가족, 시가전을 방불케했던 폭도들의 방화현장, 성금분규 등을 취재하면서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웠던 때가 새삼 떠올랐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취재해서 공정하게 보도해야 하는 기자의 입장에서 처음에는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sympathy)을 느꼈다. 그러나 폭동으로 인한 후유증이 장기화되고 급기야는 폭동성금에 따른 분규와 지지부진한 회복 등으로 피해자들의 가정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고통이 자신의 것처럼 옮겨지는 ‘감정이입’(empathy)을 경험했던 적이 있다.
또한 1994년 노스리지 지진 당시 거주하던 메도우 아파트의 매몰로 사랑하는 남편과 장남을 졸지에 잃고 자신과 작은 아들만 살아남은 이현숙씨를 취재했을 때 그녀가 겪은 고통을 취재하면서 느낀 ‘감정이입’은 상당 기간 지속되었다. 그녀에게 닥친 엄청난 고통과 슬픔의 감정이 전이되어 한동안 힘들었다. 그러나 가녀린 여인이 감내하기 힘든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면서 살아가는 데 많은 힘이 되었다. 자신에게 닥친 엄청난 재난을 꿋꿋하게 극복하는 이현숙씨의 모습은 타임지와 LA타임스 커버스토리로 소개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세월호 침몰 참사 때 “아빠 나 죽기 싫어, 엄마 사랑해” 등 학생들이 침몰하는 배에서 남긴 메시지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을 적셨다. 위기에 처해있는 아이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는 내용을 담은 ‘상처 가득한 자리에서 아이들 살아남게 하소서’라는 신현림 시인의 글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현장에서 취재할 수는 없었지만 한국민들이 겪는 슬픔을 직접 접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 4월 말 한국을 방문했을 때 주변의 많은 지인들을 만나 소회를 들어보았다. “이 나라에서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 지금처럼 죄스러운 적이 없다”는 것이 공통점이었다. 그 당시 한국은 모든 활동이 정지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TV, 신문 등 언론은 밤낮으로 세월호 참사로 인한 여파와 책임자 처벌 등의 뉴스만 보도했고 드라마 및 예능 프로그램도 일시 방영을 중단했다. 모든 수학여행과 상당수의 문화행사 등이 취소, 연기되는 등 침울한 분위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5월2일 오후 서울 지하철 사고가 발생했고 그날 우연히 사고가 났던 2호선 열차를 오전에 이용했던 기자는 한국 사회 곳곳에 안전 위험요인이 도사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 지하철 사고 당시 세월호 침몰사건 영향 때문인지 젊은이들이 아이와 여성, 노약자를 우선적으로 배려하면서 질서있게 행동해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한국이 답을 찾고 있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한국인들이 세월호 참사와 서울 지하철 열차 추돌사고가 별개 사건이 아닌 규제 시스템의 붕괴에 따른 결과로 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불현듯 세월호 사태를 놓고 남탓, 서로의 탓만을 하는 지금,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의 ‘내 탓이오’ 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나는 잘했는데 남이 잘못해서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는 아전인수식의 해석보다는, 남에 대한 비방으로 나를 가득 채우기보다는 ‘내 탓이오’라는 심정으로 스스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뉴욕타임스의 지적처럼 세월호 참사로 나타난 사회의 병폐를 뼈저린 자기성찰을 통해 개혁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진정한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peterpa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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