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임(논설위원)
해외 입양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들이 한국에서 잇따라 개봉되고 있다고 한다. 5월에는 벨기에 입양인 출신 융 에낭(한국이름 전정식) 감독의 애니메이션 ‘피부색깔=꿀색’이 개봉 했고 6월에는 프랑스 입양인 쎄실 들래트르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프랑스인 김명실’이 개봉한다.
입양인 출신 감독이나 입양인 주인공은 이구동성으로 “완전한 유럽인도 아니고 완전한 한국인도 아니다. 많은 입양인들이 정체성 혼란으로 힘겨워 했다 ”고 전한다. 비단 입양인에게만 해당되지 않는 것이 미국에 사는 우리의 자녀들도 문 밖만 나서면 타인종의 시선을 한 몸에 받지 않는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교육 받고 미국 문화권에서 자랐지만 외모가 동양인이라서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는 자녀의 말을 한두 번은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정체성 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학에 가면 타인종 친구들이 “영어 잘하네, 조기 유학 왔어?”, 혹은 “왜 누들 안 먹어?” 하고 물으면 황당하기 이를 데 없고 그렇다고 이마에 ‘나는 미국에서 태어난 시민권자입니다’ 라고 써 붙이고 다닐 수도 없다.
주위에 뉴욕에서 태어나 명문사립대학에 4년간 전액장학금을 받고 간 한인 여학생이 있다. 1학년 때 장학생그룹 무료 해외여행으로 터키 전역 투어를 간 적이 있다. 장학생들은 대다수 백인들이고 한인은 혼자, 아이는 여행길에서 일행을 놓쳤다.
한 도시를 구경한 다음, 인솔교수와 동료 학생들은 이 한인여학생을 잊어버리고 투어 버스를 타고 다른 도시로 간 것이다. 뒤늦게 일행이 없어진 것을 안 여학생은 터키인들에게 물어물어 동네 버스를 타고 일행을 찾아갔는데 지도교수에게 왜 자신을 놓고 갔냐고 했더니 들려온 답이 코미디였다.
“그곳에 한국 관광객들이 많았다. 그래서 네가 눈에 띄지 않았다.”
터키 여행 이후 이 여학생은 장학생 그룹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이럴 경우 소심한 아이들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다른 이의 시선에 위축되기 쉽다.
뿐인가, 아이들이 종일 끼고 사는 컴퓨터, TV 드라마와 쇼, 영화에서는 소수민족 핸디캡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잘 생기고 멋진 역할을 하는 한인은 보기 힘들고 악한, 자영업자, 구두쇠 등으로 묘사되거나 우습게 망가져 조롱거리가 되기 일쑤이다.
한국에서도 재외동포의 위상이 말도 못하게 떨어졌다. 1980년대만 해도 미국 이민을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지만 1990년대 이후 한국이 경제적으로 자리 잡고 반미 정서가 움트면서 미국의 위신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거기에다가 미주한인 출신 연예인의 병역 문제, 원정출산, 조기유학, 기러기 가족, 광우병 루머, 한미 FTA 등 각종 미국관련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미주한인들도 덤으로 욕을 먹었다.
미주이민 111년의 역사 속에 해외 입양인이나 2세, 3세들이 겪는 고민과 아픔은 상당하다. 그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것이 우리 1세들이 할 일이다.
성실하고 솔직하게, 치열하게 살아온 1세들의 삶의 역정은 칭송받을 만하다. 우리는 우리를 제대로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
한인밀집지역인 퀸즈 플러싱을 비롯 맨하탄, 브롱스, 브루클린, 뉴저지의 팰팍, 포트리 등등 40만 한인 가정마다 속속들이 숨겨진 이야기들, 참으로 할 말이 많은 것 같은데 의외로 뉴욕 한인사회는 잔잔하게 가라앉아 있다.
이대로 있다가는 얼마 후 우리가 살아온 흔적은 스러지고 만다. 뉴욕한인이민사 연구에 더욱 힘을 보태고 각종 자료와 사진을 수집하여 뉴욕한인 이민박물관을 제대로 만들어보자. 뉴욕한인을 소재로 한 드라마, 시트콤, 영화도 좀 더 활기차게 만들어져서 2세, 3세들에게 우리가 살아온 역사를 보여주고 정체성 확립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먼저 뉴욕 한인들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재외동포재단, 뉴욕한국문화원뿐만 아니라 한국의 재능 있는 드라마 작가들도 관심을 갖고 호응해온다. 드라마 한편으로 중국을 뒤흔들어버린 ‘별에서 온 그대’처럼 ‘뉴욕에서 온 그대’를 테마로 하는 장르를 개발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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