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연 리뷰
▶ LA 오페라의 ‘타이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르네 플레밍은 정신분열증을 보이는 블랑쉬를 완벽하게 표현한다.
화려한 미모의 창녀 타이스(니노 마차이제)가 아타나엘(도밍고)을 희롱하고 있다.
지난 주말 이틀에 걸쳐 두 편의 오페라를 감상했다. 17일에는 플라시도 도밍고 주연의 ‘타이스’(Thais)를, 18일에는 르네 플레밍 주연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ㆍ이하 ‘욕망’)를 연달아 관람했는데, 아직도 감정적으로 소진돼 있을 정도로 강렬한 공연들이었다. 두 작품 모두 스토리가 극적이고, 굉장히 에로틱하며, 스타 파워가 엄청난 공연이라는 점이 흥분과 부담을 함께 안겨주었다. 다행히 완전히 다른 성격과 다른 음악의 오페라였기 때문에 격정적 스테이지의 여운에 침수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두 작품 모두 LA 오페라가 처음 무대에 올리는 공연이고, 앞으로 다시 보기는 힘든 프로덕션이 될 것이다. 73세의 도밍고가 심금을 울리는 ‘타이스’와 르네 플레밍(55)을 위해 쓰여진 ‘욕망’을 그녀의 스테이지로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정숙희 기자> <사진 Robert Millard>
-타이스
심금 울리는 거장 도밍고
창녀서 성녀로 환생하는
니노 마차이제의 열연 조화
19세기 프랑스 작곡가 쥘 마스네(Jules Massenet)의 이 오페라는 드물게 공연되지만 로맨틱하고 극적 감성으로 충만하며, 인간의 욕망과 위선, 정신과 육체의 영원한 갈등을 다룬 심도 깊은 작품이다.
특별히 스웨덴 고텐부르그 오페라에서 가져온 이 프로덕션은 성과 속의 대조를 의상과 세트로 극명하게 강조하고 있다. 4세기 말 향락의 도시 알렉산드리아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무대와 의상으로 치장했고, 기독교의 구원과 영원을 전하는 수도사와 수도원은 누더기와 황량한 사막으로 표현된다.
희대의 고급 창부이자 비너스 신봉자인 타이스(니노 마차이제)는 휘황찬란한 금박 의상에 수많은 보석이 번쩍이는 호화로운 모습으로 모두의 눈을 현혹시키는데 종국에는 흰옷 입은 신부, 가장 아름다운 성녀로 승화된다. 반면 그녀를 회개시켜 알렉산드리아를 정화하겠다고 나선 수도사 아타나엘(도밍고)은 목적을 달성하지만 그 자신이 타이스의 아름다움에 매혹돼 정욕의 포로가 되어버리고 만다.
타이스가 과거를 버리고 새롭게 거듭나는 내면의 변화를 표현할 때 나오는 유명한 바이얼린 독주 ‘타이스 명상곡’(Meditation)은 2막에서 아름답고 처연하게 흘러나온다. 유명한 바이얼리니스트들은 모두 연주했고, 누구나 아는 별빛처럼 아름다운 이 선율을 LA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로베르토 카니 악장이 침착하고 절제된 연주로 들려준다.
도밍고는 이제 완전히 바리톤 가수로 자리 잡은 듯하다. 모든 장면에서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는 그의 스타 파워가 장엄하게 빛나는 가운데 소프라노 니노 마차이제의 열연 또한 놀라운 것이었다. 앤젤리나 졸리처럼 섹시한 모습에 노래와 연기도 잘하는 그녀는 마치 타이스가 환생해 돌아온 것처럼 창녀에서 성녀로 거듭나는 여인을 완벽하게 노래하며 명연을 펼쳐 보인다.
그녀는 다음 시즌 ‘라 트라비아타’에서 비올레타로 출연, 제르몽 역을 맡을 도밍고와 또 한 번 호흡을 맞추게 된다. 시녀 크로빌레 역의 장혜지와 시종으로 잠깐 등장한 윤기훈도 좋은 공연을 보여준다.
남은 공연은 5월25일 오후 2시, 29일 오후 7시30분, 6월1일 오후 2시, 4일과 7일 오후 7시30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르네 플레밍의 명성 그대로
앙드레 프레빈의 재즈풍 음악
클래식 뮤지컬 보는 듯
웃통을 벗어젖힌 식스팩 몸짱의 젊은 남자 배우들이 내뿜는 열기가 드넓은 공연장을 가득 채우며 스테이지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다. 무대 위로 올라온 오케스트라, 그 앞으로 침대 하나와 몇 개의 의자, 탁자, 짐가방으로 간단하게 꾸며진 반무대(semi-stage) 형식의 공연이 음악과 연기를 더 돋보이게 한다.
음악은 거의 재즈풍이고 거의 전체가 영화음악처럼 느껴질 정도로 대중적인 현대 오페라. 앙드레 프레빈(85·Andre Previn)이 르네 플레밍을 염두에 두고 쓴 이 작품은 오페라라기보다 ‘음악을 입힌 연극’으로 느껴진다. 아니면 재즈 오페라, 혹은 클래식 뮤지컬이라 해도 좋을지. 놀라울 것도 없는 것이 앙드레 프레빈은 클래식 지휘자이자 작곡가가 되기 이전에 영화음악으로 오스카상을 4회나 수상했던 영화음악가이며 재즈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이다. 그는 80년대에 LA필 하모닉의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는데 당시 LA필 회장과의 불화로 사임한 뒤 뉴욕으로 이주, 그곳서 남은 생애를 보내고 있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이 원작인 이 오페라는 희곡 대본을 그대로 무대에 올린 듯 대사 한 줄 한 줄이 오리지널 플레이에 너무도 충실하다. 듀엣도 코러스도 없고 오로지 4명의 주요배역-블랑쉬 뒤부아(르네 플레밍, 이 공연에서는 블랑쉬가 아니라 블랜치라고 부른다), 그의 동생 스텔라(스테이시 타판), 스텔라의 남편 스탠리(라이언 매키니), 미치(앤소니 딘 그리페이)의 열연에 기대어 가는 공연이다.
이들 4명은 노래뿐만 아니라 연기를 기막히게 잘해 오페라가 연극처럼 느껴질 정도인데 그 중에서도 특히 스탠리는 배우인지 가수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파워풀한 공연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비비안 리가 주연했던 1951년 영화에서 스탠리 역을 맡았던 말론 브랜도가 질풍노도 같은 연기를 펼쳤던 것이 생각나는, 그에 견줄 명연이다.
귀부인처럼 우아한 음색을 가진 르네 플레밍은 16년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초연된 이 작품이 아직도 그녀만의 오페라임을 증명하며 불안하고 허영심에 들뜬 블랑쉬를 열연한다. 수많은 감정의 분출로 극저음과 날카로운 고음을 넘나드는 블랑쉬를 어쩌면 그때보다 더 깊고 성숙해졌을 표현으로 들려준다. 몇 개의 아리아는 정말 아름다웠다.
남은 공연은 21일과 24일 오후 7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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