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화제의 신간 - 치과의사 김범수의 ‘치과가 간다’
▶ “시간도 십일조” 병원 닫고 오지 찾아 봉사 버린 가방 100여개, “개인여행은 꿈 못꿔”, 명품 선교일기 76편… 24일 출판기념회
돈과 시간과 의술과 사랑을 모두 십일조하며 살고 있는 치과의사 김범수.
케냐 모얄레의 고등학생들과 찍은 사진을 표지로 쓴 ‘치과가 간다’.
한국일보에 오랫동안 칼럼‘선교하는 삶’을 집필했던 치과의사 김범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칼럼니스트의 한 사람이다. 기자생활을 오래 하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의 기고와 칼럼을 읽었지만 그의 글처럼 간결하고 품위 있게, 또 행복하고 재미있게, 매번 나를 감동시킨 글은 없었다.
김범수씨는 또 내가 가장 존경하는 평신도 선교사이고, 가장 경이로운 신앙인이다. 주위에 수많은 신자가 있지만 그처럼 선하고 순수한 크리스천은 이제껏 본 일이 없다. 믿음이 얼마나 깨끗하고 신실한지,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면 주저 없이 실천에 옮기는 우직함은 그의 큰 얼굴에 떠오르는 아이 같은 미소와 너털웃음과 어울려 거의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LA에서 제일 바쁜 치과의사인 김범수는 소득의 십일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십일조’를 하는 것으로도 동료들 사이에 유명하다. 어느 날 새벽기도를 하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감사하는 가운데 “아, 시간도 하나님께서 주셨지, 그럼 시간도 십분의 일을 떼어 드려야겠구나”하는 마음이 생기더란다. 그때부터 일년 365일 중 36.5일, 아니 때로는 그 이상을 병원 문 닫고 선교지로 돌아다닌 지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하나님만 아실 것이다.
말이 시간의 십일조지, 그게 얼마나 큰 결단인지는 다들 알고도 남으리라. 게다가 말리기는커녕 더 하라고 부추기는 아내와 두 아이가 있으니, 이 가족은 천국에 가면 일등시민, 아니 로열 패밀리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한 달에 하루씩 LA 미션에서 노숙자 봉사를 하면 일년에 12일이죠. 거기에 멕시코 일일선교 서너 번 가고, 먼데 두 번 다녀오면 일년치 십일조가 채워져요. 올해도 6월에 코스타리카, 11월에 아프리카 선교여행이 있는데, 그 사이에 멕시코 몇 번 다녀오면 또 십일조를 하게 되지요. 여행가방 사고 짐 싸는 일에는 이력이 났습니다”
평소 큰 이민가방을 펼쳐놓고 다음 여행지에 가져갈 짐들을 미리미리 챙기며 항상 떠날 준비가 돼 있다는 그는 그동안 쓰고 버린 여행가방 만도 100개가 훨씬 넘는다고 한다. 워낙 오지를 다니는 데다 매번 가방이 미어터지도록 물건을 실어 나르기 때문에 10년 워런티 제품을 사도 한 번 다녀오면 네 바퀴가 온전한 게 없다는 것이다.
편도에 30시간씩 걸리는 아프리카 선교를 일년에 두 번씩 다녀오기도 하고, LA에서 사흘 길-비행기 네 번 갈아타고 작은 통통배로 들어가야 하는 석기시대 나라 파푸아뉴기니에도 두 번 다녀왔으며 러시아, 파나마, 중국, 북한, 에티오피아, 케냐, 남아공화국, 브라질, 그리스, 터키, 뉴질랜드, 일본, 쿠바, 인디안 보호구역들…
그에게 물어보라. 안 가본 데가 어디냐고. 그러면 아마 사람들이 몰려다니는 화려하고 번잡한 관광여행지의 이름이 줄줄 나올 것이다. 개업한지 30년 동안 안식년은커녕 단기선교 말고는 제대로 개인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는 이 싸나이는 휴가가 모자란다고, 더 좋은데 더 멋진 데를 가고 싶다고 아우성치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그런데 그가 무엇보다 잘한 일은 그 아름다운 마음과 선한 눈으로 본 세상을 글로 남겨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읽게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예수쟁이 이야기를 쓴 건 아니다.
1997년 처음 신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땐 치과의사로서 삶 속에서 보고 느낀 이야기들을 재치 있는 수필로 엮어내곤 했다. 귀여운 유머와 진한 페이소스가 일품인 그의 칼럼은 그때부터 고정 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언제부턴가 글에서 할렐루야 냄새가 슬슬 나더니 날이 갈수록 하나님 이야기가 많아지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범수씨가 찾아와 하는 말이 자기는 이제 세상 이야기보다는 하나님 이야기만 쓰고 싶으니 이를 어쩌면 좋으냐고 털어놓았다. 좋은 필진은 놓치면 안 되는 법, 그 날로 종교면에 ‘선교하는 삶’이란 제목의 고정칼럼이 신설됐고, 작년 말까지 무려 10년 넘게 계속됐던 것이다.
거기서 태어난 책이 2006년 나온 ‘예수님 치과’, 그리고 이번에 8년 만에 새 책 ‘치과가 간다’(토기장이)가 나왔다. 그 전에 출간한 ‘사랑한다, 날마다’(2001)와 ‘사랑은 동사다’(2002)를 합치면 네 번째 책인 셈이다.
‘명품 선교일기’라 불러도 좋을 ‘치과가 간다’에는 나이 마흔에 만난 하나님 때문에 ‘행복하게 고달픈 삶’을 살고 있는 덴티스트 선교사의 미션 트립 이야기 76편이 담겨 있다. 엄청나게 무거운 이동식 치과장비를 보물단지처럼 끌고 다니며 물도 전기도 없는 오지에서 뜨거운 햇빛을 조명삼아 하루 수백명의 입을 벌리고 아픈 이를 고쳐 주느라 매일 파김치가 되는 이야기를 그처럼 신나고 재미있게 쓸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선교 이야기 외에도 김범수 칼럼의 진수를 보여주는 재미난 글들이 모두 수록돼 있는 이 책은 하나도 잘난 체하지 않으면서 화려한 미사여구 한 줄 없이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글들, 최상의 단순함이 최고임을 증명하는 글들이 가득하다.
‘치과가 간다’의 출판기념회는 오는 24일 오후 5시 동양선교교회 교육관에서 열린다. 그동안 한 번도 출판기념회를 열지 않았던 김씨 가족이 친지와 교우들의 성화에 못 이겨 처음 마련한 자리이니만큼 많은 팬들이 참석해 격려해 주면 좋을 것이다.
김범수는 서울고, 경희대 치대를 거쳐 군의관 복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 왔으며 UCLA에서 치과과정을 마치고 지난 30년 동안 LA에서 개업하고 있다.
문의 (323)829-4142, (213)389-0937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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