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과연 나라인가’- 벌써 4주째 저 멀리 대한민국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세월호 선장의 얼빠진 행동. 탐욕과 탈법, 그 자체인 해운회사. 부패사슬에 갇힌 관료마피아의 세계. 무능하기만 한 정부. 그 와중에 희생된 꽃봉오리 같은 생명들.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분노가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그 가운데 또 다시 촛불이 켜지고 있다. ‘분노의 조직화’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정부투쟁을 선동한다. 박근혜 정부의 퇴진을 요구한다. 온,오프라인을 타고 거침없는 정치적 선동선전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가 상당히 당혹해 하고 있다고 한다. 여론의 움직임이 그렇지 않아도 심상치 않았다. 고공비행을 하던 대통령지지율이 뚝 떨어졌다. 40대가 등을 돌린 탓이다. 그런데 또 다시 촛불이 하나둘 켜지고 있으니.
촛불은 계속 번져나가고 있다. 안산에서. 광화문에서. 그리고 워싱턴DC에서, 뉴욕에서, 또 LA에서.
‘세월호와 함께 박근혜 정부도 침몰했다’-이런 표어와 함께 침몰하는 배의 모습이 들어 있는 포스터가 미주 사회에 등장했다. 그리고 그 참상을 고발하는 광고를 뉴욕타임스에 싣기 위한 기금모금과 함께 미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인 시위가 시작됐다.
“South Korea Ferry Tragedy. It is no accident, it is a massacre!(세월호 참사. 그것은 사고가 아닌, 학살이다!)” 지난 8일 낮 워싱턴 주미 한국대사관 앞에서 검은 옷에 노란 리본을 꽂은 한인 여성들이 이런 표어가 든 큰 플래카드를 들고 벌인 시위가 그 스타트로 미 전역 38개 지역에서 시위는 이어질 계획이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무능력과 무대책의 정부. 그 정부에 대해 유족들은 절망감을 느낀다. 국민들은 분노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 분노가 해외의 한인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진다. 인터넷을 통해 그것도 실시간으로. 그러니….
새삼 한 단어가 떠 올려 진다. 원거리 민족주의(long distant nationalism)라고 하던가.
“21세기의 민족주의는 돌연변이 민족주의(mutant nationalism)가 될 것이다. 대대적인 이민을 가능케 하고 있는 현대의 세계 경제시스템은 새로운 형태의 민족주의를 만들어내고 있다. 원거리 민족주의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말이다.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그 사회에는 별 관심이 없다. 고국에서 일어나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거기에서 정체감을 찾는다. 본국에 가 살 생각은 전혀 없으면서.” 원거리 민족주의자들이 보이고 있는 일반적 속성이다. 이런 그들은 더 전통에 집착하면서 근본주의적 입장을 보이기 쉽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해외거주 중국인들이 본토인보다 더 대만공격에 적극적이다. 가장 강력한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자들은 캐나다계 크로아티아인이다. 미국 내 아이리시들은 한 때 가장 적극적인 IRA 지원세력이었다. 힌두민족주의 본부는 인도가 아닌 런던에 있다.
원거리 민족주의를 다른 말로 하면 원거리 애국주의라고도 할 수 있다. 왜 미주 한인들이 시위에 나섰나. 이런 면에서 선의의, 또 순수한 동포애의 발로라는 설명도 틀리지 않는다. .
“…그렇지만 참정권 없는 참가는 무책임하기 쉽다. 원거리 정치가 가져온 결과에 대해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본국에 있는 치밀한 정치적 기회주의자들에게 이용될 가능성도 높다.” 원거리 민족주의가 지니는 또 다른 면에 대한 앤더슨의 지적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해외거주자들이 상상속의 공동체에 대해 지니고 있는 애국심은 때로 특정 정치세력의 체제 도전의 주 방어기재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켜든 촛불, 그런데 그 ‘분노의 조직화’ 시도가 결코 낯설지 않아 보인다. ‘그들’과 ‘우리’로 편을 철저히 편을 가른다. 그러면서 유족들의 아픔을, 국민들의 상실감을 정권퇴진운동으로 연결시키려고 든다.
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고 학생들을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숨진 김주열, 박종철군 등과 비유하면서 ‘그들’과 ‘우리’, 다시 말해 계층 간의 갈등을 부추겼다. 전교조가 띄운 영상이 바로 그것으로 살벌한 진영 논리만 번뜩거리고 있는 것이다.
미주 한인 사회에 등장한 포스터도 그렇다. 어딘가 광우병 소란 때의 그 선동적 문구와 몹시 닮아 보이는 것이다. 그 때처럼 특정 정치세력의 정치 투쟁의 외곽 때리기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보인다면 지나친 말일까.
그 아픔, 그 상실감은 여전하다. 그 가운데 뭔가 한 가지 움직임이 감지된다. 일종의 국민적 합의다. 4·16 참사, 그 슬픔을 딛고 대한민국은 안전사회로 탈바꿈하는 패러다임의 대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는 일종의 다짐이다.
그 탈바꿈은 손가락질에 앞서 치유와 화합에서부터 시작된다. 정죄는 그 다음의 일이다. 미주 한인 사회의 역할은 바로 여기에서 찾아지는 것 같다. 시위도 시위지만 치유와 화합에 앞장 서야 하는 것이 아닐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