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량한 모래사막 위 화려한 네온 꺼지지 앟아
▶ 라스베가스 신시가지 1마일 구간의 테마호텔들 위용
라스베가스의 에펠탑이 있는 야경
6월 11일. 화요일.
LA에서 여행의 첫 밤을 보냈다. 여행 때면 늘 그렇듯 꼭두새벽에 눈이 떠졌다. 룸메이트인 안과 의기투합해 호텔주변답사에 나섰다.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키다리 종려나무들이 머리를 풀고 환영인사를 한다. 간만에 마주한 야자나무 가로수 길은, 살며시 전에 살았던 호주의 Perth로 데려간다. 정을 쌓고 나누던 얼굴들이 그리움 속에 꽃처럼 피어난다.
또 하나, 여긴 LA입니다 하고 화려한 미소를 건네는 부겐벨리아도 반갑다. 평소에 조화가 생화 같이 보이면 꼭 만져보는데, 이 꽃은 반대다. 생화인줄 번연히 알지만. 하도 종이꽃 같아 매번 보드라운 꽃잎을 감촉해 본다. 생애 처음 이 꽃을 조우했던 곳이 Perth다. 역시 여행은 그리운 것과의 재회의 시간이기도 하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7시에 출발했다. 사흘일정을 안내해줄 가이드께서 “여행오시니 제일 좋은 게 뭐예요?”물었다. 여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밥할 걱정 없는 거요.”한다. 사실 여자들은 남자들과 달리 은퇴라는 게 없다. 그런 처지니 주방에서의 ‘대 탈주’와 ‘완전무장해제’만으로도 감지덕지다. 그런데 어느 누가 때만 되면 주부들에게 또박또박 밥까지 먹게 해줄까!
다이아몬드 바에 있는 한국 수퍼마켓에 들렸다. 물이 안 좋은 서부라 우리 팀은 사흘 동안 마실 물과 과일들을 샀다. 지중해성기후인 탓에 당도가 높은 캘리포니아과일답게 때깔들이 곱다. 내가 좋아하는 살구를 음미해보니, 모처럼만에 매료적인 ‘바로 그 맛’이라 행복하다.
동쪽으로 가는 버스차창에 어리는 풍경이 점차 메마른 갈색 톤으로 꺼칠하다. 눈을 한껏 싱그럽게 정화시켜주는 뉴욕근교의 초록정경과 비교된다. 들판이 더욱 메말라간다. 해발 1,000m~2,000m의 고지대로, 7,8월이면 북미지역에서 가장 뜨거운 곳 중의 하나라는 모하비사막이다. 켈리포니아주 남동부를 중심으로 네바다, 유타, 애리조나 주에 걸친, 1994년 국립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사막이다. 모하비란 이름은 아메리카토착민인 모하비족에서 유래됐는데, 뜻은 인디언말로 사막이란다. 그럼 그냥 모하비라고만 해야 맞는 말 아닌가.
그나저나 여태껏 내 머릿속에 자리 잡은 사막의 이미지는, 끝없는 모래와 오아시스, 낙타의 행렬 그런 거라 의아스럽다. 황토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키 낮은 관목들, 유카나무 같은 다육식물인 선인장, 이름 모를 풀들이 제법 많으니까. 알고 보니 사막엔 모래사막, 자갈사막, 소금사막, 선인장사막 등이 있단다. 일반적으로 연강수량이 250mm 이하에다, 낮과 밤의 기온차가 극심하고 고온인 지대를 사막이라 정의한단다. 사막에 대한 내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다. 이래서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나보다.
미국 동서남북을 관통하는 횡단열차들의 정거장인 바스토우
에서 점심을 먹었다. 남한 땅의 한 배 반인 약 160만 에이커로,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사막,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환경을 보여주는 모하비를 내처 달린다. 공기가 맑은 탓에 산맥꼭대기엔 세계에서 제일 질 좋은 눈도 온다니, 참 독존적인 특징의 사막임엔 틀림없다. 사구와 화산분화로 형성된 절벽과 바위 돔, 원뿔모양의 화산구도 있다는 풍치는, 점점 더 황무지화 하는 인상이다. 건설비를 600억 이상이나 들인 현대, 기아 차의 차량주행테스트장도 이 사막에 있단다.
누런 털실뭉치 같은 동글동글한 마른 풀인 텀블 위드가 ‘바람 따라 낙엽처럼 가버리듯’ 을씨년스럽게 굴러다닌다. 꼭 말라죽은 검불이다. 서부에만 있는 비름과의 풀로, 가을에 밑동이 잘려 동면하며 굴러다니다가 다시 뿌리내리고 사는 다년생 풀이다. 저지대엔 관목과 덤불로 덮인 습지도 보이고, 고지대엔 향나무와 소나무들이 모래언덕과 바위산에 드문드문 박혀있다.
고지대인지 난초의 일종인 죠수아 트리가 많다. 어느 모르몬교도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린 형상의 나무를 보고, 여호수아를 연상해 지은 이름이란다. 한인들이 흔히들 여호수아나무라고 하는 이유와 일치한다. 저지대를 지나가는지 유카선인장들이 부쩍 많이 나타난다. 죠수아나 유카나 다 생명을 놓아버린 색깔로 보이지만 수명이 1000년 된 것들도 있단다. 뿌리가 보통 10-12m까지 뻗어나가며 키도 9m까지 크기도 한다나. 생명력이 경탄자체다.
서부대륙은 태평양 속에 가라앉았다가 세 번 정도 융기됐단다. 그러다보니 모하비엔 사막거북, 사막여우도 있고 나무줄기를 갉아 수분을 섭취한다는 사막벌레도 있단다. 들새와 야생동물들이 풍부하고 포피꽃등 이름 모를 야생화 등 300여종의 사막성 생물의 서식지란다. 사람이건 동식물이건 환경에 맞춘 적응력으로 다 살게 마련인 점이 재차 신비롭다.
캘리포니아 주와 네바다 주의 경계지역이다. 하얀 모래언덕 뒤로 거무스레하고 험준한 바위준령들이 가림 막처럼 둘러서있다. 멀리 아득한 앞쪽에 호수가 자꾸 나타난다. 오아시스가 저렇게 클 리도, 흔할 리도 없는데 했더니 바로 신기루 현상이란다. 희한하게도 분명 호수인데, 앞으로 가도 가도 호수커녕 물 웅덩이도 없는 광야의 연속일 뿐이니 신기했다. 드디어 인디안 말로 ‘눈 덮인 산’이라는 네바다 주로 들어섰다. 80%가 모하비사막이고 20%가 산맥인 이 주의 특징은 카지노허용이다. 공항에도 게임기가 즐비하단다.
LA서 라스베가스 까지가 서울서 부산거리라는데 어느 새 거의 다 왔다. 그 유명한 캘리포니아 주의 생명수보급 댐이자, 애리조나 주와 네바다 주의 경계선인 후버댐을 코앞으로 지나가는 줄 알고 잔뜩 기대했다. 그런데 9.11테러 후, 댐이 테러대상1호로 지명돼 이삿짐트럭이나 버스는 무조건하고 다리진입금지란다. 그 가공할 끔찍했던 테러여파가 여기까지 미쳤다니, 새삼 치가 떨리고 소름이 끼친다.
우회된 다리를 지나가며 거대한 댐의 언저리 일부만 멀리서 일별했다. 로키 산맥에서 발원해 멕시코와 태평양까지, 장장 2,333km를 흐르는 콜로라도 강의 휴식처인 댐을 접하지 못한 게 영 아쉽다. 더구나 대부분의 댐들은 직선형인데 반해. 수압조절 차 둥그런 곡선형이라 더 볼만하다는데 말이다.
사막지대 통과세금인지 버스가 더위를 먹고 멈췄다. 승객들 반은 뒤에 오던 차에 타고 반은 다른 버스를 기다려야 한단다. 우리 팀도 1조만 탑승해 뒷자리에 샌드위치로 끼었거나 통로에 신문지를 깔고 앉았다. 주를 넘어갈 때마다 검문소가 있어서 버스 안에선 절대로 서있으면 안된다니까. 고생거리일 수록 추억거리다 싶어 짜증커녕 재밌어 웃음만 나온다. 로버트 해스팅스 작<정거장>에서도 ‘인생의 즐거움은 여행 그 자체’라 피력했으니까.’ 다행히 버스가 우리 일행이 박스로 사놓은 물로 해갈을 하신 후 기력을 되찾곤 금방 뒤쫓아 왔다.
드디어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서 홀연히 나타나는 초현대적인 도시에 도착했다. 우스갯소리로 “대박을 꿈꾸고 왔다가 쪽박 차고 떠난다.”는 라스베가스다. 경제공황 때 사막에 건설한 인공의 도시이자,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우리 손으로 일궈낸 20세기의 불가사의다”칭한 도시다.
우리가 내린 곳은 이집트의 고대도시 이름인 Luxor호텔이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떡 버티고 있어, 이집트 어디쯤에 도착한 걸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방에다 짐을 놓고 다시 로비로 모이란다. 안과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C라는 층인데 사람들이 다 내리기에, 로비려니 하고 덥석 따라 내렸다. 그런데 C는 카지노란 층이었는지 슬롯머신만 쫙 나온다. 애초 호텔건축 시에 심리학자에게 자문을 받아, 카지노 입구는 어린애라도 찾게끔 만들고, 출구는 미로처럼 설계했다더니 사실이었다. 호텔직원들한테 몇 번씩이나 물으며 방향을 바꿔 봐도 카지노만 나오지, 로비는 머리카락 꼭꼭 숨어라 한다.
군중심리에 휩쓸려 잘못됐어도, 아니다 싶으면 원점회귀가 정석이다. 그럼에도 어느 호텔이건 우선적으로 나오는 것이 중심인 로비였기에, 돌아가도 쉽게 나오려니 여겼던 게 잘못이었다. 모임시각도 지나 속은 빠작빠작 타는데 30분가량이나 뛰어다니며 진땀깨나 흘렸다. 단체여행인데 초장부터 십여 분이나 늦어 얼굴을 못 들겠다. 이런 사례를 방지키 위한 뼈있는 농담으로, “패키지 투어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투어”란 뜻으로 회자된다는데.
저녁을 먹으러간 식당에서다. 이런 사막까지 진출한 제법 큰 한식당이라 내심 뿌듯이 여겼다가, 삭막한 경우를 당했다. 단체관광 시엔 어느 식당이던 나올 때 팁을 일인당 1불씩 테이블에 놓고 나오는 게 관행이다. 우린 열 명이라 두 테이블로 나눠 앉았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서다. 우리 테이블 몫의 팁을 미리 꺼내 테이블에 놓으려는 순간, 웨이터가 어깨너머로 손을 뻗쳐 손에 쥔 돈을 휙 채가다시피 가져갔다. 식사도 안 끝낸 상태라 더 황당해 하는데, 저쪽 테이블에서 이미 우리 몫까지 팁을 지불했다는 사인을 보냈다. 가뜩이나 심드렁하게 대하던 웨이터가, 그토록 약사 빠르게 처신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아무리 다신 안 볼 관광객들 상대라 해도 손들었다.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사람을 고객으로 보느냐, 돈으로 보느냐의 차이니까. 손님기분이나 예우는 물 건너 간, 일테면 도덕성이 결여된 행동이니까. 모든 대인관계에서, 머리만 약게 빨리 회전하며 사는 사람은 자신이 남보다 훨씬 똑똑한 줄 알지만, 절대 아니다. 만고의 진리다. 찰스 디킨스가 역설한 “사람을 대하는 진실한 마음이야말로, 교육이나 돈보다도 더 온전한 사람을 만든다.”는 건 금언이다.
야경관광을 갔다. 신시가지인 스트립에 줄지어 선 1마일 구간의 테마호텔들의 위용이야말로, 인간의 무한한 야망의 표본이자 경쟁의 각축장이다. 명성이 자자한 유명건축물들, 즉 세계의 랜드 마크들이 총 집합된 세계축소판이다. 첫 번째로 눈에 각인되는 게 에펠탑이다. 유명도 1위란 증거겠다. 반갑기는 뉴욕종합판인 자유의 여신상과 꼭대기조명까지 카피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구장치까지 쌍둥이처럼 재현된 브루클린 다리다.
아무튼 순식간에 파리, 뉴욕, 이집트, 이태리 등으로 순간 이동하면서 올드 타운 으로 갔다. 신시가지로 빼앗긴 관광객들을 유치할 묘책으로 2004년에 설치된 유명한 관광거리 때문이다. 프리몬트 거리 전 구간을 덮은, 200m 길이의 돔형천장에 설치된 대형 LED화면의 전자 빅 스크린 쇼다. 오후 6시 이후 매시간 마다 6분씩, 주제를 바꿔 수 만개의 LED전구가 발하는 보석 같은 빛의 제전인데, 바로 한국 LG의 창조품이다.
가이드가 신이 나서 자초지종 들려주는데, 어찌나 통쾌한지 십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간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엔 일본에 의뢰했는데, 일본이 신기술 부족과 비용부담으로 난색 끝에 백기를 들었단다. 반면 후발주자인 LG는 호기 있게 단번에 OK하곤, 경비문제도 파격적으로 광고조건 하나만 제시했단다. 그러고도 예상보다 빨리, 보란 듯이 멋지게 해놓아 모두를 놀래켰다는 전설적인 스토리였기 때문이다. 이정도면 한국인은 무조건하고 봐야겠다는 사명감이 들고도 남게 마련이다.
당도해보니 호텔과 호텔사이의 골목 같은 도로가, 비닐하우스마냥 높고 둥그런 지붕으로 덮였는데, 그 지붕이 바로 LED화면이다. 관광객들이 구름처럼 모여, 막간을 이용한 거리의 악사연주를 뺑 둘러서서 보고들 있다.
나는 어딘가에 있다는 LG로고만 찾느라 꼼꼼히 살폈다. 한참만에야 천장의 중간부분 하단 맨 밑에 얌전히 있는 단 두 글자 LG를 발견한 순간, 맥이 빠졌다. 나처럼 열심히 챙겨보려니까 눈에 띄었지, 어느 누가 저런 귀퉁이에 작은 글자를 알아보겠나. 애쓰지 않아도 절로 눈에 착 들어와야 광고효과가 사는 건데 말이다. 첨단기술 값 과 난공사의 대금 값치곤 너무 양에 안 차 실망이다.
한국이 외교전에선 늘 지나친 양보와 관용의 난맥상에 빠져, 실익 면에서 항상 손해라는 게 내 소견이다. 아무리 겸손이 미덕이라지만, 지나치면 얕보이는 법. 또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주는 법이다. 과장하면 하늘의 별따기인 신기술이었는데, 좀 더 당당하게 요구하고 권리주장을 했어도 됐을 텐데... 안타까움이 더해지는 이유다.
드디어 암전이 되자, 천장에서 번쩍번쩍 전구 쇼가 시작됐다. 어느 별나라에서 밤하늘에다 펼치는 우주 쇼였다. 록 스타 본 조비가 기타 치며 노래하는 초대형 뮤직비디오다. 사람들은 현란한 별세계의 여흥에 빠져 흥겹게 몸을 흔든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만들었으니 잠간이라도 한국적인 문화나 쇼가 소개됐으면 하는 아쉬움에, 실망의 연속이다.
최고의 테마호텔로 자리매김한 베네치안 호텔로 들어섰다. 계단을 다 올라섰다가 별안간에 등장한 산 마르코 광장에 깜짝 놀랐다. 입구엔 베니스<베네치아>의 수호신인 기둥위에 날개달린 사자상도 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무대인 예쁜 리알토 다리도 한 눈에 들어오고 운하도 있다.
그뿐인가. 곤돌라도 다니고 유니폼인 곤 색과 흰줄무늬 티셔츠와 모자의 곤돌리에가 청아한 목소리자랑까지 하고 있다. 상가 앞에 기대서서 공짜로 노래감상을 하며, 하늘과 흘러가는 흰 구름들을 보았다. 프레스코화인 하늘이, 암만 봐도 야외란 착각에 빠질 만큼 진짜 하늘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색깔까지 변한다니 가히 신의 붓놀림이다. 2년 전, 보슬비 오던 베니스에서 느꼈던 로맨틱한 감정이 새록새록 살아나 더 감미롭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내내 양쪽으로 휘황찬란한 네온 옷을 입은 건물들과 몰려다니는 사람들을 보니, 정말 밤새 잠들지 않는 엔터테인먼트 도시다. <계속>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