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4회 카파미술상 올가 라씨 작품세계
▶ 스폰지·테입·병뚜껑으로 만든 변형된 공간, 환경따라 달라지는 인식·경험 신선한 충격
스폰지를 겹겹이 붙이고 쌓아서 만든 ‘배열’(Array, 2011).
올가(Olga Lah)라는 특이한 영어이름을 가진 작가 나지숙(33)은 작품세계 역시 조금 특이하다.
‘예술’과 ‘신학’이라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아니 진지한 아티스트라면 비켜가기 쉬운 종교적 신념을 자신의 예술철학 밑바탕에 놓고 있는 것이 그렇고, 작가로서 형태보다는 공간을, 메시지보다는 초월을 이야기하는 점이 그렇다.
미술사를 공부한 후 풀러 신학교에서 신학석사를 마친 그는 자신이 아티스트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젊은 작가들의 꿈의 공모전인 카파미술상 수상작가 치고는 놀라운 고백이 아닐 수 없는데, 그의 레주메를 훑어보면 본격적인 아티스트로 활동한지가 이제 4년 남짓하다.
그래서일까, 그의 접근법에는 일상성과 신선함이 있다. 이게 아트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재료들-플라스틱 병뚜껑, 설거지용 스폰지, 비닐테입, 침대시트, 마대자루, 지퍼, 종이, 책… 주변에 널려있는 허접스런 생활재료들을 특이한 모양으로 쌓아올리거나 벽을 따라 거대한 집합체로 설치해 전시장을 전혀 다른 형태로 재구성하는 그의 설치작업은 공간적이고 초월적이며 경험적이다.
“제 작품을 보는 사람들의 첫 반응은 모두 깜짝 놀라는 것입니다. ‘와우!’가 가장 많이 듣는 표현이지요. 놀랍게 변형된 공간이 이상하면서도(odd feeling) 압도적인(overwhelming)경험을 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 공간에서 경이감과 초월성을 느끼고, 자신의 일상의 삶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올가 라 작가는 평범한 재료들을 수천개씩 붙여서 스케일이 굉장히 큰 장소특수적 아트를 만든다. 다양한 색과 형태와 사이즈를 가진 콘텍스트를 반복적 배열에 따라 설치함으로써 공간을 변형시키고 새로 창조하는 것이다.
공간은 그에게 특별히 중요한데, 이유는 공간에 이야기를 만들어주고, 하이라이트를 부여하면 그 공간에 들어서는 사람들의 감관이 열리면서 움직임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인식과 행동의 경험을 느끼게 해주는 작업,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어떤 현실도 초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4,000개의 스폰지를 겹겹이 붙이고 쌓아서 만든 ‘배열’(Array, 2011)은 거대한 유기체처럼 굽어지고 휘어지며 새로운 벽과 집합체를 형성해 개체의 스폰지로서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역시 수천개의 플라스틱 병뚜껑들을 벽과 천정과 바닥에 자유롭게 붙여나간 ‘번식’(Propagate, 2012)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퍼져나가며 거대한 물결을, 구름을, 혹은 세계지도를, 아니 음표들이 살아 춤추는 악보를 형성하고 있다.
또 색색의 비닐 테입을 벽에서 바닥으로 이어붙이며 비스듬한 선들을 조성한 ‘무빙 더 라인’(Moving the Line, 2013), 전시장 입구와 벽에 거대한 종이를 구겨붙여 기묘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포 더 랜드’(For the Land, 2011) 같은 작품들은 보기만 해도 그 심플하고 기발한 아이디어에 눈이 번쩍 떠진다.
특별한 것은 그녀의 모든 작업들이 대단히 재미있고도 신비하면서 우아하다는 것이다.
올가 라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종교적인 색채는 전혀 없지만 기독교 신앙이 바탕이 된 작품들”이라며 “거대한 공간을 재구성하는 장소특수적 설치아트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초월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 설치작가 올가 라
- 미술사·신학 공부
제14회 카파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올가 라(33·나지숙)는 LA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인 2세 작가다. 토랜스 고교를 나와 UC리버사이드에서 미술사와 스튜디오 아트를 공부했다. 하버드 대학원의 예술교육학과에 입학허가 받았으나 LA를 떠날 수 없었던 사정으로 진학을 포기하고 풀러 신학대학원에 입학, 2006년 신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영국의 서섹스 대학에서 1년간 미술사 프로그램에 참가했고,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등지에서 레지던시 아티스트로 활약했다. 아트 오브 나우 국제컴피티션 1등과 제7회 아르테 라구나의 파이널리스트 등 여러 미술공모전에서 수상했으며, 게티 다문화 인턴상을 두차례 수상했다. 2012년 LA한국문화원 공모전에도 선정돼 참가한 적이 있다.
‘갤러리 825’를 비롯해 LA와 팜스프링스, 슬로베니아에서 8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30여회의 다양한 그룹전에 참가했다. 2014년 LA의 공항 전시 및 설치작가의 한사람으로 선정됐고, 현재 제라시(Djerassi) 레지던트 아티스트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는 그는 카파상 수상자로서 상금 1만달러와 함께 2015년 봄 LA 한국문화원에서 작품전을 갖게 된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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