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억이 벌써 희미하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한국방문을 말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떠내려가고 말아서인가. 통곡은 하늘을 뒤덮는 것 같다. ‘우리의 미래’를 그리도 허망하게 바다 속에 수장시키고 말다니.
정부에 대한 불신이 대통령을 향해 그 방향을 틀면서 분노는 더 확산되고 있다. 이 명박 정부가 광우병 사태로 식물정권이 되다시피 했다. 그 보다 더 심각한 사태가 올 수도 있다. 그런 흉흉한 말들이 나돌면서.
그 세월호 선실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영상들이 CNN 방송 등을 타고 방영됐다. 차마 들을 수 없는 아이들의 그 마지막 절규. 침몰된 대한민국의 해양안전. 그 처절한 현장이 여과 없이 전 세계에 전해진 것이다.
순간 한 곳에 생각이 멈춘다. 대한민국의 ‘해양 안보’다. 4.19 때보다도, 5.18 때보다도 더 많은 생명이 희생됐다. 그 세월호 참사의 광경이 새삼 오버랩 되면서.
“유럽은 랜드스케이프(landscape-육지형태로 연결된 지역)이고 동아시아는 시스케이프(seascape)이다. 20세기와 21세기의 중요한 차이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로버트 카플란이 한 말이다.
“지난 세기 세계의 주 전쟁터는 유럽대륙이었다. 동서로 갈라진 독일이 바로 그 최전선이었던 것. 그 후 수 십 년. 세계 인구와 경제의 축이 유라시아 대륙의 다른 한쪽으로 옮겨지면서 가상의 주 전쟁터도 바뀌고 있다. 동아시아의 주요 나라들이 맞대고 있는 바다가 바로 그곳이다.” 이어지는 그의 주장이다.
동아시아, 다시 말해 서태평양지역이 세계적인 파워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21세기는 해군, 해양력의 세기가 되고 그 중심은 동아시아가 된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지역은 한 세기 전부터 전쟁에 시달려왔다. 노일전쟁이 그 시발로, 중일전쟁, 한국전쟁, 베트남에서 캄보디아로 이어진 동남아시아 전쟁 등이 그것으로, 이 긴 전쟁을 통해 동아시아국가들은 저마다 하나의 민족국가로 새로 태어난다.
중국의 경우 모택동 시대의 혼란기를 거쳐 등소평 시대의 개혁개방을 통해 본격적 경제개발시대를 연다. 이 내부결속과정을 지난 후 중국이 지향하고 있는 것은 바다로의 진출이다. 대양해군 양성과 함께 대륙세력을 넘어 해양세력으로 전환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국들도 같은 과정을 겪었다. 그리고 저마다 외부로의 지향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6억5천만 인구의 동남아국가들, 13억의 중국, 그리고 15억 인구의 인도대륙국가들. 이들이 만나는 곳은 남중국해로, 새삼 중요시되고 있는 것은 해군이다. 이 남중국해가 그래서 21세기의 주요 전쟁터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지정학적 특수성뿐만이 아니다. 내셔널리즘이 국가이데올로기화 되고 있다. 동아시아지역에서 목격되고 있는 이 내셔널리즘 팽배현상이 또 다른 위험 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동아시아의 또 다른 주요지역은 동북아시아다. 한반도로 특색 지어지는 이 지역은 동남아와 달리 여전히 냉전 상황에 갇혀 있다. 이 지역 안보정책의 축은 북한의 운명이다. 북한붕괴 시 한국군과 미군, 중국군의 진입은 필연으로, ‘붕괴 후 북한’처리가 주 관심사란 점에서 해군 이슈는 당장은 부차적이다.
그러나 보다 장기적으로 볼 때 해상전력은 주 이슈로 부상할 수밖에 없다. 통일 한국과 일본과 중국은 동해와 서해 등 바다를 끼고 미묘한 균형을 이루게 된다. 이 동북아시아에서 해양 안보는 궁극에 있어 주 어젠다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동북아시아로 좁혀보자. 안보 불안의 제 1요소는 무엇인가. 북핵문제가 정답이었다. 그 답이 그런데 최근 들어 달라지고 있다.
“일본과 중국 간에 충돌이 나면 미국은 일본을 보호할 것이다.” 오바마의 도쿄 발언이다. 센카쿠열도분쟁이 동북아 안보위협의 제 1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말이다. 북한문제는 후순위로 밀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 변수만으로도 벅차다. 그런데 전쟁의 파고가 저 멀리 남쪽에서 한반도 해역으로 몰려들고 있다. 한국의 안보가 일본과 중국의 갈등, 더 나가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대립이란 다층적 구도에 갇히는 형국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21세기는 해군과 해양력의 세기가 되고 그 중심은 동아시아가 된다.” 그 상황에 제대로 대비하고는 있는지.
해양안전망 부재 상황에서 어이없이 희생된 어린 생명들. 그 세월호 분향소를 찾고 있는 조문객 행렬. 그 서글픈 광경을 바라보면서 새삼 스친 생각이다. ‘한국의 해양 안보는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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