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브라이언 김 경영칼럼
▶ 터보에어 그룹 회장
1910년 봄 작은 잠수정 한 척이 훈련 중 히로시마 인근 바다에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가와사키 조선소에서 제작한 이 잠수정은 배 이름도 따로 없었고 그냥 ‘6호 잠수정’이라 불렀으며, 잠수함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시절 잠수함 개발을 목적으로 한 시험훈련 중 발생한 사고였다.
사쿠마 쓰토무 해군 대위 지휘 아래 13명의 승조원들이 타고 있었던 6호 잠수정은 훈련 나흘째 되던 날 잠항을 시작하자 곧바로 해치를 통해 바닷물이 흘러들어 승조원들의 필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6미터 해저로 가라앉고 말았다.
침몰 이틀 후 인양된 잠수정을 해군기지로 예인해 사고조사를 위해 해치를 열었던 조사반장 요시카와 중령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오더니 이내 통곡으로 변했다.
당시 미국과 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 잠수함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초기 엉성한 설계와 기기의 작동불량 등으로 사고가 자주 발생했으며, 그때마다 잠수정 내부의 모습은 모든 승조원들이 유일한 출구인 해치 쪽으로 몰려가 뒤엉켜 죽어 있는 처참한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사쿠마 정장의 시신은 사령탑에, 기관담당 중위는 전동기 곁에, 조타병은 조타석에, 공기수는 공기 압착관 앞에 숨져 있는 등 승조원 모두가 각자의 위치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그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다 숨졌음을 말해 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쿠마 정장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연필로 깨알 같이 적혀 있는 메모였다. 극한상황에서 기록을 남긴 것도 그렇지만, 산소가 희박해져 가는 고통 속에서도 자세한 사고 경위와 시간대별로 신체적 변화까지 기록해 놓았다. 훗날 잠수정 개선의 자료로 삼기 위한 그의 초인적 행동은 우리에게 깊은 경외와 감동을 준다.
그것뿐 아니다. 메이지 천황에게 남긴 메모에는 “소관의 부주의로 폐하의 잠수정을 침몰시키고 부하들을 죽게 해 죄송하다. 바라건대 이번 사고로 인해 잠수정 개발 진행에 지장이 없도록 부탁드린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죽음은 조금의 유감도 없다”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짤막한 유서를 남겼다. “감히 폐하께 말씀 올림, 제 부하의 유족들이 곤궁해지지 않도록 배려해 주시기를, 제 염두에는 오직 이것 밖에 없음”갓 서른 살 젊은 장교의 행동이라기엔 믿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하고 훌륭한 리더십의 표본이다.
어느 조직이든 리더의 역량에 따라 강한 조직도 되고 사분오열, 지리멸렬 실패하는 조직도 된다. 전후 일본이 패전을 딛고 세계시장을 석권하며 두 번째 경제 대국이 된 기본적 요인은 부하들의 마음을 얻는 리더십을 갖춘 기업 경영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GM의 최고경영자인 메리 바라의 의회 청문회를 뉴스를 통해 잠깐 봤다. 사소한 부품 결함을 10년씩이나 방치해 13명의 사상자를 내게 한 이유를 따져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메리 바라는 “나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어처구니없는, 그야말로 보통의 이웃집 주부의 답변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자기는 당시 CEO가 아니어서 책임이 없으며, 이번 문제는 자기와 상관없는 GM이라는 회사의 문제라는 식의 답변처럼 들렸다.
대당 57센트의 부품 값을 절약하기 위해 10년 동안이나 문제를 감추다 사상자를 내게 했다면 그런 부도덕한 회사가 만든 자동차를 앞으로 누가 사겠는가?나는 GM이 최소한 그런 회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자동차 사고에는 많은 개연성이 있어 혹 부품의 결함이 원인이 됐더라도 사실을 확인하는 게 쉽지 않다. 처음엔 단순한 운전자 과실 문제로 처리되다 비슷한 사고가 자주 발생해 의심을 갖고 부품의 조사를 시작해도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는데 GM처럼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는 회사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와중에 금융위기까지 닥쳐 대규모 구조조정 등 어수선한 환경도 GM이 실기하는데 한 몫을 했을 것이다.
따라서 메리 CEO는 회사의 최고 책임자로서 부품 값 몇 센트를 아끼려고 문제를 감추다 희생자를 낸 부도덕한 GM은 결코 아니라는 적극적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전자와 후자는 향후 소비자들 인식에 확연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선박의 결함으로 배가 침몰하는 순간에도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고 자신보다는 끝까지 부하들의 가족들 안위를 걱정하는 리더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리더십 결과의 차이는 오늘의 GM과 도요타가 처한 각 상황이 잘 대변한다.
힘으로 이끄는 리더는 직원들의 손을 움직이게 하지만, 마음을 얻는 리더는 부하들의 영혼을 움직인다. 경쟁이 치열해 질수록 부하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경영자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국식 리더십에 황혼이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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