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라는 친구가 있다. 줄리 심 에드워즈, 하면 이곳 화가들도 대다수가 기억할 것이다. 그는 한때 LA에서 한인화단과 주류화단을 잇는 전시를 많이 기획했던 유능한 화가이며 큐레이터였다. 1995년 이맘때 폭동 3주년 기념으로 줄리가 기획했던 한흑작가 합동전 ‘콜래보레이션즈’는 LA타임스에서도 리뷰했던 대단히 인상적인 전시였다.
그런데 그때의 줄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금의 줄리를 보면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2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줄리는 여러번 변신을 거듭해 아주 다른 사람이 돼있기 때문이다.
줄리는 90년대 후반에 LA에서 멀리 떨어진 웨스트레익으로 이사를 갔다. 아이들을 좋은 동네에서 키우겠다는 남편 결정에 따라 한창 왕성하던 작가 커리어를 접고 백인동네로 들어가 전업주부가 된 것이다. 그리고선 곧바로 ‘사커맘’이 됐다. 남매를 어찌나 극성으로 뒷바라지하는지, 풀타임 기자인 나보다도 훨씬 바빠하면서 아이들을 끌고 축구장, 골프장, 테니스장, 수영장으로 뛰어다녔다.
그 즈음 줄리네 가족은 휴가 때마다 코스타리카로 놀러갔는데, 그러다가 그곳 바닷가에 작은 땅을 한 부지 사들였다. 매년 서너번씩 갈 바에야 아예 별장을 짓자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런데 그 땅값이 1년만에 두배로 오르는 것을 보고 줄리는 부동산에 눈을 떴다. 그리고는 코스타리카보다 개발이 안 돼 값이 훨씬 싼 이웃나라 니카라과로 눈을 돌려 그곳 땅을 조금씩 사기 시작했다.
그렇게 ‘복부인’이 된 줄리를 따라 2006년 니카라과에 간 적이 있다. 나도 흉내 좀 내볼까하여 따라다니면서 바닷가도 가보고, 부동산업자도 만나고, 변호사며 건축가를 찾아다니며 며칠간 들뜨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바로 그 얼마 후 줄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그날도 엘 트란시토 바닷가에서 땅을 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날이 어두워지자 수도 마나과까지 가로등 없는 비포장도로를 한시간 넘게 운전해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줄리는 바로 옆의 어촌에서 하룻밤 묵게 됐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그는 눈앞의 풍경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말았다. 너무나 가난하고 초라한 바닷가 마을, 남자들이 잡아오는 생선 몇마리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 아이들은 신발도 없이 뛰어놀고, 여자들은 할일도 없고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 연명하는 빈민어촌이 거기 있었다.
워낙도 착하고 남 돕기를 좋아했던 줄리는 그곳에서 박애가, 자선사업가, 선교사로 다시 태어났다. 이곳 여성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던 그는 마을 복판에 땅을 사서 엘트란시토 아트센터(ETCA)라는 비영리기관을 세웠다. 거기서 벽돌 한 장씩 쌓아 건물을 지으면서 한 편으론 바늘에 실도 꿸 줄도 몰랐던 여자들을 불러다 바느질을 가르치고 디자인을 해주며 가방, 인형, 액세서리 같은 상품을 만들게 했다.
옷감 재료는 미국에서 도네이션 받아다 조달했고, 만들어진 완제품은 줄리가 다시 미국으로 싸들고 와 주위사람들에게 팔아다가 엘 트란시토 여자들에게 돈으로 쥐어줬다. 처음으로 자기 힘으로 돈 버는 맛을 알게 된 그녀들은 지금 모두 손재주 뛰어난 봉제사들이 돼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줄리는 ETCA에 도서관도 세웠고, 수천권의 책을 소장하게 됐으며, 매달 트럭에 싣고 인근 학교들을 돌며 빌려주는 이동도서관도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 미국과 니카라과를 자주 오가던 줄리는 아이들이 다 크고 난 지금은 일년에 거의 반 이상 엘 트란시토에 상주하며 그곳 사람들과 고락을 같이하고 있다.
나는 작년에 오랜만에 LA에 온 줄리를 만나 그간의 사연을 듣고는 눈물을 흘렸다. 친구 중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랍고 자랑스러웠던 나는 올해초 8년만에 니카라과를 다시 찾았다. 줄리의 옷감 후원자가 된 두 친구와 함께였다.
줄리의 ETCA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근사했다. 자신과 봉사자 숙소를 2층으로 지었고, 도서관과 강의실이 딸린 아트센터도 단단하게 지었다. 마지막 프로젝트는 카페를 짓는 것이라고 한다. 여자들이 커피와 샌드위치와 자기네가 만든 물건을 팔 수 있는 카페, 그곳을 통해 엘 트란시토 여성들이 자립할 수 있게 되면 자신의 일은 끝난다고 했다.
8년동안 누구의 특별한 후원도 없이 여자 혼자 힘으로 이룬 그 건축물 앞에서 나는 평범한 개인의 작고 선한 의지가 한 마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목격했다. 지금 ‘도냐 줄리’는 이 동네의 선생이고 유지이며 멘토이고, 어쩌면 여신이다. 처음에 온갖 의심과 억측을 보냈던 이들이 지금은 그녀가 지나가면 존경과 감사가 담긴 인사를 보낸다.
줄리는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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