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하원이 부활절 봄 휴회에 들어가던 지난 주말, 낸시 펠로시 하원민주당 대표는 각기 지역구로 귀향하는 민주의원들에게 중간선거의 새로운 전략 가이드를 전달했다 - “폴 라이언의 예산안을 공격하라!” 표밭의 반발을 확신할 만큼 대폭삭감의 무자비한 칼날을 휘두르는 예산이기 때문이다.
하원예산위원장 라이언의 2014-2015 회계연도 예산안은 10일 하원에서 219 대 205로 통과되었다. 찬성표는 모두 공화당, 민주당은 전원 반대했다. 공화당 12명도 반대표를 던졌지만 ‘그 정도 삭감으론 부족하다’는 티파티가 대부분이니 공화당이 라이언 예산안의 깃발 아래 단합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행히 라이언 예산안이 입법화될 가능성은 제로다. 민주당 주도 상원에 도착하는 순간 폐기 운명에 처할 것이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내년 가을까지의 임시지출 잠정예산안을 초당적으로 합의해 통과시켰으므로 상원에선 예산안 작성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입법화도 되지 않을 라이언 예산안에 왜 양당은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일까. 상징성 때문이다. 라이언 예산안의 의미는 입법보다는 메시지 전달이다. ‘적자 없는 미국을 향해가는 로드맵’ - 보수진영의 긴축재정 청사진을 보여주며 2014년과 2016년 유권자 선택을 부추기는 것이다.
금년 중간선거 압승으로 상하 양원을 다 장악하고 2016년 대선 통해 백악관 입성까지 허락되었을 때 “우리 공화당이 펼쳐갈 통치의 방향”을 제시하는 정치적 문건이 바로 라이언의 예산안이다. 상징적이지만 그래서 중요하다. 복잡하고 지루해도 구체적으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표를 던져 선택을 하려면 먼저 알아야 한다.
라이언의 새 예산안은 전혀 새롭지 않다. 2010년 중간선거 공화당 압승 후 그가 예산위원장이 된 2011년부터 벌써 4년째 매년 봄마다 보아온 내용이다. “번영으로 가는 길” - 제목도 매번 같다.
기본골격도 그대로다. 지출 대폭삭감과 메디케어 개혁, 오바마케어 폐지로 10년 내 예산 균형 실현이다. 이번 삭감규모는 10년간 5조1천억 달러다. 저소득층의 푸드스탬프와 메디케이드, 대학생의 학자금대출과 초등학생의 무료급식에서부터 도로보수 등 공공사업, 취업훈련과 의료연구, 주택과 영양보조…저소득층과 중산층 대부분이 삭감의 한파를 체감하게 될 것이다.
양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방예산은 4,830억 달러 늘어나고 기업의 세율은 낮아진다. 자녀 있는 중산층 가정의 세금은 연평균 2천달러 인상되지만 최고부유층의 세율은 현행 최고 39.6%에서 25%로 낮아진다.
하이라이트는 노년층 정부의료보험인 메디케어 개혁이다. 애초엔 메디케어의 민영화였다. 그러나 막강 유권자 집단인 노인들이 펄쩍 반발하자 한발 물러섰다. 현재 55세 미만 연령층을 대상으로 원하는 경우에만 정부에서 ‘보험료 지원’을 받아 민간보험에 가입할 옵션을 주겠다는 내용으로 완화시켰다. 그러나 보험의 속성상 민영화로 가는 첫 걸음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오바마케어 폐지를 담고 있지만 오바마케어 가입자 750만명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다시 무보험자로 방치하려는 뜻은 아니기를…)입법 여부와 상관없이 예산안은 각 당의 ‘국가를 위한 선택’을 반영한다. 쉽게 말해 “우리가 무엇을(혹은 누구를) 더 위하고, 무엇을 덜 위하는지에 대해 국민에게 알려주는 것”이라고 민주당의 크리스 밴 홀런 의원은 설명한다.
지난달 오바마 대통령도 자신의 예산안을 공개하며 역설했었다. “하나의 국가로서 우린 결정을 해야 한다. 최고부유층의 절세혜택을 보호할 것인지, 미국민 모두의 기회확대를 위해 현명한 투자를 할 것이지…”
라이언이 강조하는 것은 ‘책임 있는 지출제한’이다. 사회안전망을 수선하여 꼭 필요한 사람에게 지원이 가도록 할 것이며 ‘친성장 정책에 의한 경제 활성화, 그에 따른 세수증대’가 균형예산 실현의 동력이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의 예산안 삭감 중 69%는 저소득층 및 중산층 지원프로를 겨냥한다. 예를 들어 푸드스탬프 수혜자의 경우 380만명에 대한 혜택이 중단된다는 뜻이다…가난한 사람들에게서 푸드스탬프를 빼앗고, 펠그랜트와 무료급식을 줄여 이루는 균형예산은 과연 자랑스러운 것일까.
라이언의 예산안은 그의 확신처럼 ‘번영으로 가는 길’이 될 수 있을까. 민주당의 공격처럼 ‘파멸로 가는 길’까지는 아니라 해도 ‘빈익빈 부익부’의 지름길이 되지 않을까. 라이언이 제시하는 내일의 미국이, 나는 솔직히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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