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는 매우 유용한 가축이다. 우리 조상들은 소 없이는 농사를 못했다. 봄철 쟁기질도, 가을걷이 운반도 소가 해냈다. 생전에 뼈 빠지게 일하고 죽은 뒤 살과 뼈와 가죽 등 몸뚱이 전체를 사람에게 바친다. 증권시세가 활황이면 ‘소시장(Bull Market)’ 불황이면 ‘곰시장(Bear Market)’으로 불린다. 소는 원래 농경사회 이래 대표적 재산증식 수단이었다.
그 근면 성실한 소가 일하지 않고 누워 있거나 졸고 있으면 재앙이 초래되는 걸까? 재미동포 중에도 와우 아파트 붕괴참사와 우면산 산사태를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듯하다. ‘와우(臥牛)’는 소가 누워 있는 상태를, ‘우면(牛眠)’은 소가 잠자는 상태를 각각 뜻한다. 와우 아파트도, 우면산도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려 엄청난 인명피해를 냈다.
서울 마포구 창전동 와우산 중턱에 세워진 5층짜리 ‘시민 아파트’가 준공 4개월 만에 폭삭 무너진 건 내가 새내기 사회부기자였던 44년전 이 무렵(1970년 4월8일)이었다. 고참 사진기자와 함께 달려가 목격한 사고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살아남은 가족들이 울부짖는 가운데 군경 구조대원들이 쑥대밭 콘크리트 더미를 헤치며 사체를 찾고 있었다.
와우 아파트는 부실건물의 표본이었다. 철근 70개를 넣어야할 기둥에 고작 5개를 썼다. 콘크리트 배합비율도 엉터리여서 거의 모래와 자갈로만 채워졌고 하수도 쓰레기 물로 반죽했다. 공사비가 평당 1만원도 안 들었고 공사도 6개월 만에 끝냈다. 붕괴사고로 33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부상당하자 ‘불도저’로 불렸던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이 사임했다.
와우보다 훨씬 처참한 건물 붕괴사고가 1995년 6월29일 부자동네 서초동에서 일어났다. 당시 업계 1위였던 삼풍백화점이 20초 만에 무너져 사망 502명, 부상 937명, 실종 6명 등 기록적인 인명피해를 냈다. 쇼핑객 3명은 콘크리트 잔해 속에 최고 17일간 갇혀 있다가 구조됐다. 원래 4층이었던 건물을 무리하게 5층으로 증축한 것이 붕괴원인이었다.
성수대교 붕괴사고(1994년 10월 21일)도 빼놓을 수 없다. 한강을 가로질러 성수동과 압구정동을 잇는 성수대교의 5~6번 교각 사이 상판이 강으로 떨어져 내렸다. 통과 차량들도 함께 떨어져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을 입었다. 부실공사로 인한 사고는 금년 2월 27일 경주의 한 리조트에서도 일어나 부산외대 학생 10명이 죽고 204명이 다쳤다.
우면산 산사태는 2011년 7월27일 발생했고 16명이 목숨을 잃었다. 100여년만의 집중폭우라는 천재에 대비소홀이라는 인재가 겹친 사고였다. 지난주 서울에 나가 있다가 서초동 친구 집에서 우면산을 제대로 봤다. 아파트 14층 창문을 통해 한눈에 들어온 우면산은 멀쩡했다. 봄기운을 내뿜는 산자락에서 3년 전의 비극을 감지할 수 없었다.
바로 그 무렵 서울 한복판 우면산의 저주가 워싱턴 주 산골로 옮겨 붙었던 모양이다. 시애틀에서 50마일(직선거리) 북쪽에 자리한 산간마을 오소(Oso)에서 지난 달 22일 집중호우 끝에 뒷산이 무너져 50여 가옥을 덮쳤다. 실종자가 많아 전체 사망자는 100명이 넘을 것으로 우려된다.
마을주민 절반 이상이 희생된 워싱턴 주 사상최악의 산사태를 겪은 오소도 우면산처럼 천재와 인재가 겹쳤다. 하지만 ‘잠자는 소’와는 관계없다. 오소는 ‘곰’을 뜻하는 스페인어에서 기원한다. 겨울잠을 깨운 집중호우에 곰이 심술을 부렸던 모양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미국 국민에게 오소마을의 희생자와 유족을 위해 기도해달라는 특별담화를 냈다.
오소를 통과하는 530번 하이웨이도 끊겼다. 이 산간도로는 알링턴에서 대링턴을 거쳐 그래닛 폴스로 이어지는 ‘마운틴 루프’ 풍치도로의 일부이다. 전망 좋은 험산준령이 많아 한인 등산객들이 연중 즐겨 찾는다. 특히 봄철엔 오소 인근 도로변에서 고사리를 따는 한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에겐 곰이 심술을 부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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