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 정치행동회의’(CPAC)와 UC버클리, 양쪽에서 다 기립박수를 받는 정치가는 드물다. CPAC은 미 전국의 열성 공화당원으로 이루어진 보수진영의 결집체이고 리버럴 성향이 강한 UC버클리는 미 진보주의의 메카이니 당연하다. 그런데 3월초 CPAC의 연례총회에서 청중을 열광케 한 2016년 공화당 대선의 한 예비후보가 지난주엔 버클리 강연에서 박수갈채를 받으며 청중을 사로잡았다.
켄터키 주 초선 연방 상원의원 랜드 폴(51).
대선은 아직 멀었다. 공화당의 첫 경선도 2년 가까이 남았고 출마를 공식발표한 후보도 없다. 물밑경쟁이 벌써 시작되었다 해도 정치적 시간으로 보면 몇 광년 같을 그 긴 세월동안 누가 또 다른 ‘브릿지 스캔들’에 걸려 추락할 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경주에도 매 순간 선두주자는 있게 마련이다.
금년 3월의 확실한 선두주자가 바로 랜드 폴이다. 지난 두주 사이 실시된 3차례 조사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8일 폐막한 CPAC 총회 모의투표에서 31% 지지율로 2위의 테드 크루즈를 20포인트 차이로 따돌리며 정상에 섰고, 한 주 후 북동부 공화당 리더십 컨퍼런스에선 15%로, 지난주 발표된 CNN의 전국여론조사에선 16%로 각각 1위에 올랐다.
정식개막도 안한 선거전에서 예상후보들을 대상으로 수시로 바뀌는 순위이기 하지만, “어? 세 번이나 연속으로…” 미디어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는데 거기에 더해 강경보수 ‘티파티의 기수’가 “사자굴에 들어간 다니엘처럼” 리버럴의 본거지에서 기립박수를 받아낸 것이다!
폴은 시작부터 평범한 정치인은 아니었다. 안과의사였던 그는 2010년 전국을 휩쓴 티파티 물결을 타고 당시 공화당 지도부가 밀던 기득권층 후보에 압승을 거두며 깜짝 등장한 전국적 스타였다. 3번이나 대선에 도전한 아버지 론 폴 전 하원의원과 함께 확실한 자유지상주의자로 연방상원에 입성한 후에도 ‘조용한 초선의원’에 머물지 않았다.
개인의 자유의지를 최우선으로 목표하며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자유의지론자의 소신으로 민주당 뿐 아니라 공화당과 맞서기도 주저하지 않았다. 연방예산 5천억 달러 삭감안을 제시해 눈총을 받았고 존 브레넌 CIA국장 지명자 인준을 막기 위한 13시간 필리버스터 강행으로 전국적 조명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가 목청을 높인 것은 국가안보국(NSA)의 불법도청 반대였다. 오바마 대통령등을 상대로 위헌소송까지 제기했다.
이번에 버클리에서 호응을 받은 강연의 주제도 ‘당신의 프라이버시’였다. 메시지 전달력이 탁월한 정치가로 꼽히는 그는 젊은 청중들을 향해 외쳤다 : “여러분이 셀폰을 갖고 있다면 여러분은 감시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셀폰으로 무엇을 하든 그것은 정부가 절대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나는 믿습니다”…기립박수가 뜨겁게 이어졌다.
현재의 공화당을 맛없는 피자에 비유하며 “진화하고 적응하며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도 했다. 이런 소신을 실천하려는 듯 공화당의 다른 후보들에 비해 흑인, 히스패닉 등 마이너리티 아웃리치에 열심이다.
지난 주말 CNN의 정치토론 참석자들은 “랜드 폴은 2016년 예비후보들 중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며 대선전의 주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고 워싱턴포스트의 루스 마커스는 “공화당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인 동시에 민주당에겐 가장 두려운 후보”라고 평가했다.
“흥미롭다, 신선하다”는 미디어의 과장조명이 곧 꺼질 거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반론도 물론 대두되었다. 버클리와 CPAC 청중의 대다수가 “테러전쟁보다는 스마트폰 도청을 더 두려워하는 젊은 층이었고 영리한 폴이 이들의 감성에 영합한 것”이라는 비판도 가해졌다.
이 같은 비판이 아니더라도 출마를 결정할 경우 폴이 직면할 도전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버지 폴이 대선 도전으로 닦아놓은 기반은 조직과 자금 면에서 큰 도움이 되겠지만 ‘자유지상주의’의 횃불을 이어받아야하는 부담 또한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극단적 자유지상주의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 도청하는 큰 정부는 싫어도 정부가 관리하는 소셜시큐리티와 메디케어 혜택은 포기할 용의가 없다.
강경 소신으로 일관했던 아버지의 유산을 뛰어넘어서 당내 폭넓은 지지를 얻어내지 못하면 지명전의 승리는 아예 불가능해 질 것이다. 기득권층과 연계를 넓혀가는 요즘 그의 행보가 이런 입장을 말해준다.
앞서 폴 자신의 실수로 구설수에 올랐던 연설 표절, 민권법 제한적 적용 논란, 자유지상주의와는 달리 낙태와 동성결혼 반대 등도 출마와 함께 가혹한 검증의 시험대에 올려질 것이다.
그러나 어느 후보인들 약점이 없을 것인가…이 순간의 ‘선두주자’ 폴의 고향 켄터키는 이미 “랜드 폴 대통령”의 가능성에 흥분해 있다. 지난주엔 그가 2016년 대선과 연방상원에 동시 출마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안이 주상원에서 통과 되기도 했다.
랜드 폴이 ‘가장 흥미로운 후보’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한때 ‘위험한 아웃사이더’로 내몰렸던 그가 종래대로 주저앉을지 새바람을 일으킬지는 틀림없이 공화대선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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