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대의 참화인 제2차 대전이 일어난 것은 1939년 9월1일로 돼 있다. 이 날은 히틀러가 영국과 프랑스의 경고를 무시하고 폴란드를 침공한 날이다. 전투가 시작된 것은 이 날이지만 2차 대전의 실제 시작은 1936년 3월 7일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이 날 히틀러는 베르사유 조약을 일방적으로 깨고 진주가 금지돼 있는 라인란트로 쳐들어갔다.
상당수 독일 군부는 이에 반대했다. 당시만 해도 독일과 프랑스의 전력은 비교가 안 됐기 때문이다. 히틀러 자신도 “라인란트 진주 후 48시간이 내 생애에서 가장 초조한 순간이었다”며 “프랑스 군이 반격만 해왔더라면 우리는 꼬리를 내리고 도망쳐야 할 판이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 때 프랑스가 총동원령만 내렸더라도 독일군은 물러나야 했고 그렇게 됐더라면 히틀러는 실각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랬더라면 2차 대전도, 600만 유대인 학살도 물론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히틀러는 왜 이런 무모한 결정을 했을까. 첫째, 그는 경제난으로 국내에서 곤란에 처해 있었다. 국민들의 관심을 밖으로 돌릴 이슈가 필요했다. 둘째, 그는 프랑스가 군대와 무기는 있지만 싸울 의지가 없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1차 대전의 후유증에다 대공황의 여파로 국민들의 심신이 지쳐 있었다. 거기다 정정 불안으로 정권이 수시로 바뀌었다. 그가 라인란트로 진주했을 때도 전 정부가 무너지고 과도 정부가 막 들어섰을 때였다.
과연 히틀러의 예상대로 프랑스는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치욕적인 베르사유 조약을 깨고 구영토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찾아온 히틀러는 하루아침에 독일 국민의 영웅이 됐다. 여기에 맛들인 히틀러는 1938년에는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더니 그 여세를 몰아 체코슬로바키아 주데텐 지역에 살고 있는 독일 자국민 보호를 구실로 체코를 분할 점령해 버렸다.
체코는 당연히 이를 원하지 않았으나 영국과 프랑스의 압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의 수상 네빌 체임벌린이 뮌헨에서 체코를 독일에 남겨주는 문서에 서명한 후 “이것이 우리 시대의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한 말은 어리석은 유화주의의 상징으로 지금까지 전해온다.
70여 년 전 유럽에서 일어났던 일이 지금 구소련에서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우크라이나 민중 봉기로 과도 정부가 들어선 틈을 타 러시아의 푸틴은 전광석화처럼 자국민 보호를 구실로 크림 반도를 합병해버렸다. 이와 함께 경제난으로 바닥을 기던 푸틴의 인기는 치솟고 있다.
이에 대한 서방의 반응은 70년 전 영국과 프랑스처럼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우크라이나는 한 때 미국과 소련에 이은 3대 핵 보유국이었다. 그러던 것을 1994년 미국과 러시아, 영국이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을 약속한다는 부다페스트 메모랜덤 하나만 믿고 핵무기를 모두 러시아에 넘겨주고 말았다. 핵을 포기한 리비아의 카다피가 살해당하고 우크라이나 영토가 날아가는 것을 본 이란과 북한이 무슨 생각을 할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뻔하다.
유럽과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은 러시아와 비교가 안 된다. 그럼에도 푸틴이 이렇게 대담하게 나오는 것은 이를 사용할 의지가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시리아의 아사드가 화학무기를 사용해 자국민 1,500여명을 살해하자 화학 무기 사용은 “빨간 선”이라는 자기 발언을 뒤집고 러시아의 중재안을 핑계로 무력 사용을 포기했다. 이때부터 푸틴은 오바마는 마음대로 가지고 놀아도 좋은 장난감 이상으로 보지 않고 있다.
1976년 당선된 지미 카터는 늙은 브레즈네프를 껴안고 키스까지 해가며 소련과 친해 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런 카터에게 소련은 아프가니스탄 침공이란 카드로 답했다. 뒷통수를 맞아도 심하게 맞은 것이다. 지미 카터는 지금까지 유약한 지도자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오바마케어 부실 공사로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있는 오바마에게 크림 반도 사태는 또 다른 재난이다. 이를 방치할 경우 푸틴은 동 우크라이나, 발트 해 3국, 중앙아시아 공화국으로 마수를 뻗혀 갈 것이다. 그럼에도 오바마에게는 푸틴을 견제할 아이디어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오바마에 자꾸 지미 카터의 이미지가 오버랩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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