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민 <뉴욕주 공인 홈인스펙터>
한국에는 벌써 봄이 왔다고 한다. 눈 사이로 피어오른 꽃망울이 신기하기도 하려니와 살짝만 구부려도 꺾여 버리는 그 연약한 꽃줄기는 어찌하여 얼지 않고 동토를 헤집고 겨울 내내 쌓인 눈 사이로 세상에 그 얼굴을 내밀었을까…
봄의 전령인 봄꽃은 물론이요, 땅속에 꼭꼭 숨어있던 개구리며 벌레들이 땅 위로 그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고 새들이 짹짹거리기 시작하면서 그 상큼한 봄소식을 겨우내 움츠린 우리 몸과 마음에 전하기 위해 어김없이 찾아온다.
이 상큼한 봄의 전령 중에 달갑지 않은 벌레도 살짝 숨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데 이름하여 터마이트 스웜머(Termite Swarmer)가 그 중의 하나다. 모르는 사람은 이른 봄에 웬 날개달린 개미가 집안에 나타났나 하겠지만 이것이 터마이트 전령인 줄 아는 사람은 초비상이 걸린다.
본래 터마이트(흔히 흰개미로 불림)는 땅속과 죽은 나무속에서만 사는 벌레다. 추운 겨울에는 땅속에 숨어 있다가 따스한 봄만 되면 기어 나와 나무속으로 파고든다. 나무를 먹고 살기 때문이다. 본시 스웜(Swarm)은 다른 곳에 둥지를 틀기 위해 기어 나와 무리를 지어 활개 치는 벌레 떼를 의미하는데 터마이트 스웜머가 이중 하나에 속한다.
터마이트는 컴컴한 어둠속에서만 산다. 눈은 퇴화되어 있고 세상 밖으로 나오면 죽는다. 그래서 우리는 집 나무기둥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진짜 터마이트는 볼 수가 없다. 그런데 스웜머 만큼은 밖으로 나올 수가 있다. 다른 곳에 새로운 둥지를 틀고 또 하나의 터마이트 군락을 만들기 위해서다.
터마이트 스웜머는 어떻게 생겼을까. 스웜머라고 하지 않고 때로는 플라잉 터마이트(Flying Termite) 혹은 윙드 터마이트(Winged Termite)라고 칭하기도 한다. 날개가 달린 고로 그렇게 부른다. 그래서 날개달린 터마이트인 줄 모르는 일반인들은 따스한 봄날에 나타난 날개달린 집개미 정도로 안다.
그러나 그 모습은 날개달린 개미와는 분명하게 구별된다. 대체로 일반 개미와 너무나 흡사하여 육안으로 구분이 안 되기 때문에 확대경을 이용하여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터마이트 인스펙터들은 확대경을 필수적으로 가지고 다닌다.
경우에 따라서는 샘플을 사무실로 가져와 고배율의 현미경으로 더 자세히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한 경우도 왕왕 있다. 먼저 그 몸체가 일반개미와 현저히 다르다. 터마이트 스웜머는 몸체가 바퀴벌레와 흡사하다. 그래서 바퀴벌레 과에 속한다고 한다. 잘록한 허리 대신 가슴과 허리와 배가 한통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 때문이다.
두 번째 쉽게 구분할 수 있는 특징으로 날개를 살펴보면 된다. 일반개미든 터마이트 스웜머는 좌우로 2개의 날개를 가지고 있다. 아울러 좌우의 날개는 각각 안쪽 날개와 바깥쪽 날개로 겹쳐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평상시 기어 다닐 때는 바깥쪽 날개만 보이나 날 때 보면 4개의 날개를 펼쳐 비행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일반개미는 안쪽날개가 바깥쪽날개에 비해 짧다.
그리고 모양이 매끈한 양면이 긴 이등변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날개 달린 터마이트는 안팎 날개의 길이가 동일하고 마치 긴 계란형모양 혹은 긴 타원형 모양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날개 길이가 확연히 다르다. 개미의 날개는 배를 덮는 정도의 길이를 하고 있으나 터마이트 날개는 자기 몸의 2배 정도의 길이로 되어있다.
문제는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날개 달린 터마이트의 습성 때문에 터마이트라는 존재가 집안에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놓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사라졌다면 애석하게도 나무 먹잇감이 풍부한 새로운 둥지를 찾았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터마이트 인스펙터들은 고성능 플래시 라이트를 이용에 그 흔적을 추적하게 되는데 바로 터마이트가 사라지기 전에 떨어뜨린 날개를 찾아내기 위해서다. 다행히도 터마이트는 나무속으로 사라지기전에 반드시 날개를 떨어뜨리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안 청소를 하다 보면 진공 소재기로 깨끗하게 그 날개마저 치워버리게 되니 그 다음에는 어쩔 수 없이 터마이트가 이동하기위해 만들어 놓은 진흙관(Mud Tube)을 목격하기 전에는 그 존재의 확인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진흙관이 연결되어 있는 곳을 살피게 되는데 진흙관이 지나가는 나무를 송곳으로 찔러보거나 송곳손잡이로 두들겨 본다. 그 이유는 고약하게도 터마이트는 나무속만 보이지 않게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만일 터마이트가 많이 파먹었다면 송곳은 쉽게 들어갈 것이고 두들겼을 때 빈소리가 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무속이 아예 들여다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는 나무속이 거의 비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돈 들여 상한 나무를 바꾸거나 보강하는 엄청난 공사가 필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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