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glish for the Soul
최정화 [커뮤니케이션 학 박사/영어서원 백운재 대표]
Ears to Hear / 들을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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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who has ears to hear, let him hear.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을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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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음유시인 폴 사이먼[Paul Simon]의 노래 ‘Sounds Of Silence’를 즐겨 듣고 가끔 애써 부릅니다. 기타 못치면 간첩소리 듣던 고등학교 시절, 기타치고 노래하던 곡 중 으뜸으로 여기던 노래 "침묵의 소리." 가끔 가사를 새기다 보면, 가사들 사이사이, 행간에 숨은 비의(秘意)에 흠칫 놀라곤 합니다.
"Hello darkness, my old friend// I’ve come to talk with you again."오랜 친구 어둠이여, 너와 또 얘기하러 왔노라.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는 어떤 비전[vision]에 감전된 시인의 느낌을 가감없이 내보이고 있습니다.
Because a vision softly creeping// Left its seeds while I was sleeping.
왜냐하면, 즉 오랜 친구 어둠과 다시 소통하려함은, 어떤 비전이 부드럽게 그러나 섬뜩하게 다가와서 내가 자는 사이 그 씨를 뿌려놓고 갔기 때문입니다.
What is a vision? ‘비전’이란 무언인가? 정치가도 사업가도 비전을 얘기하고, 철인과 신비가도 비전을 말합니다. 아마도, 폴 사이먼이 말하는 ‘비전’은 네이티브 아메리컨 인디언들의 "Vision Quest," 즉 일종의 성인식같은 통과의례[Rite of Passage]에서 찾는 그런 비전이라 생각합니다. 광야에 홀로 나가, 인생의 의미를 찾아 깨닫고 돌아오는 ‘비전 퀘스트.’ 유식한 표현으론 ‘레종 데트르’(Raison d’être, 프랑스어로 ‘존재의 이유’)를 깨닫기 위해 떠나는 ‘비전 찾기 여정’, 그게 바로 ‘Vision Quest’요, 사실 우리 모두 육신의 죽음 전에 다만 어렴풋이나마 그 낌새를 알고 돌아가야 할 그런 ‘비전’을 노래하고 있는 겁니다. 자는 사이 슬며시 파고 들어 뇌리에 씨를 뿌리고 그 ‘비전’ 말입니다.
He who has ears to hear, let him hear.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을지니라.
어떤 비전이 뿌리고 간 씨앗, 자는 사이 씨 뿌려진 그 ‘비전’때문에 시인은 다시 어둠이란 오랜 친구를 찾아와 말을 겁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나의 머리에 박힌 그 ‘비전’이 아직도 침묵의 소리 안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And the vision that was planted in my brain// Still remains // Within the sound of silence.
그렇게 의미심장하게 노래를 시작한 시인은 중간쯤 가서 단언코 세상 사람들을 꾸짖습니다. 사람들은 말하는데, 말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듣는데, 듣지 않는다. People talking without speaking // People hearing without listening. 건성으로 말하고 건성으로 듣는다는 겁니다. 이 소절을 노래할 때면 늘 예수님 말씀이 공명합니다.
Whoever has ears to hear, let them hear. 들을 귀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알아들어라.
“자, 들어 보아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어떤 것은 서른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마르코 4:3-8]
He who has ears to hear, let him hear.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을지니라.
쉬운[?] 비유로 하신 말씀, 그래도 들을 귀가 있어야 알아듣습니다. 신학이나 철학으로 어렵게 풀지 않고, 그저 어린이의 마음으로 쉽게 알아듣는 귀, 그런 ‘들을 귀’가 사실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뭔가 심오한 게 있으리라. 씨앗 얘기 뒤에 숨은 뭔가 장황하고 그럴듯한 비밀이 있으리라. 그런 기대가 바로 ‘들을 귀’를 막아 버립니다.
고상한 노랫말을 쓰는 시인 폴 사이먼이 꾸짖듯 노래한 "People hearing without listening." 귀 기울이지 않고, 경청하지 않고, 가슴으로 듣지 않고, 그저 흘려 듣는 게 다반사인 요즘 사람들, 바로 우리 얘기에 다름 아닙니다. 한잣말로 성인이라 할 때, 그 성(聖)자는 바로 ‘잘 듣고 잘 말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남들이 못 듣는 걸 듣고, 그걸 제대로 말해주는 사람을 성인(聖人)이라 부릅니다.
20세기 끄트머리를 멋지게 장식한 자연인(自然人) 테렌스 맥케나[Terence Mckenna]의 멋진 한 마디가 문득 떠오릅니다. "Nature is not mute. It is man who is deaf." 자연은 벙어리가 아니다. 귀머거리는 바로 사람이다. Do you have ears to hear? 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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