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파워가 강한 캘리포니아는 선거 때마다 민주당에는 ‘철옹성’같은 표밭으로, 공화당에는 싸워도 이기기 힘든 대표적인 ‘데드 존’(Dead Zone) 지역으로 꼽히지만 캘리포니아는 과거 가장 보수적이며 반이민 성향이 강한 공화당의 텃밭과 같은 지역이었다.
닉슨, 레이건 전 대통령은 물론 하이람 존슨이나 얼 워렌과 같은 공화당의 전국적인 지도자들을 배출한 지역이 바로 캘리포니아였고, 과거 처음으로 외국인 토지소유금지법을 제정해 외국인의 토지소유를 법으로 금지했던 지역이 바로 캘리포니아였다. 당시 미국 이민법은 아시아계 이민 1세가 귀화 시민권자가 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던 시절이어서 캘리포니아에서 아시아계 이민 1세는 토지 소유가 불가했다.
1990년대 미 전국적인 반이민 분위기를 선도했던 지역도 바로 캘리포니아였다. 1990년 초반 심각한 경기침체로 반이민 정서가 꿈틀거렸던 캘리포니아는 불법체류 이민자에 대한 교육, 보건의료 등 공공복지 혜택을 금지하는 강력한 반이민 조항을 담은 ‘발의안 187’을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다. 마치 초강경 이민단속법을 제정해 미 전국적인 반이민법안 제정 붐을 일으켰던 21세기의 애리조나와 같은 지역이 당시에는 캘리포니아였던 셈이다.
하지만, 지금 캘리포니아의 정치 지형은 과거와는 천양지차로 달라져 있고, 이 정치지형 변화를 라틴계를 중심으로한 이민 유권자 파워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불과 20여년 사이에 달라진 캘리포니아의 정치지형 변화를 들여다보면 민주당과 공화당이 인도적인 이민개혁에 동의하면서도 수년째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풀지 못하는 현실을 일부나마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바로 이민개혁이 내포하고 있는 숫자, 즉 양측의 정치셈법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대다수가 민주당 성향으로 추정되는 1,100만명에 달하는 서류미비 이민자들이 이민개혁으로 시민권을 취득, 새로운 유권자 그룹으로 부상하는 상황은 공화당에는 악몽이 될 수 있다.
반면, 민주당 입장에서 이민개혁은 거대한 새로운 지지 세력을 단기간에 확보할 수 있는 최상의 카드가 될 수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71%라는 압도적인 히스패닉 유권자의 지지로 재선에 성공했던 결과는 이민개혁이 몰고 올 정치지형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서류미비 이민자들에 대한 시민권 취득 허용을 공화당이 그토록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화당의 주요 지지세력이 보수성향의 백인 유권자란 점도 이민개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블룸버그 뉴스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 전국 공화당 하원의원 지역구의 유권자 분포를 보면, 히스패닉 유권자 비율이 16.7%로 집계돼, 민주당 지역구의 히스패닉 유권자 비율 22.9%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11월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하원의원들이 보수 백인 유권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민개혁안을 지지하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와 다름없는 셈이다. 70%에 가까운 미국인들이 이민개혁에 우호적이고, 상당수의 공화당 의원들이 내심 이민개혁을 지지하면서도 이 법안을 지지하기 힘든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비타협적인 강경한 태도와 선거기금 동원력을 앞세워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티파티와 같은 강경 보수세력의 입김도 공화당으로서는 무시하기 힘들다. 지난 1월 한 달간 ‘티파티 패이트리어트’라는 강경 보수단체가 공화당 하원의원 90명에게 이민개혁 반대를 요구하며 건 전화가 무려 90여만 통에 달한다는 한 조사결과는 공화당 지지보수세력의 이민개혁 반대 입장이 얼마나 강경한 지를 보여준다.
부시 행정부 시절부터 수차례 무산과 재시도를 반복해 온 이민개혁이 올해 또 다시 무위에 그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 그리고 공화당이 진심으로 이민개혁을 바란다면, 정치적 셈법을 떠나 대승적 차원에서 서로 한발씩 양보하는 정치적 대타협안을 찾아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은 이민개혁이 인도적 차원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되며 선도적으로 공화당이 품고 있는 불신을 해소시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 공화당도 선거정치 셈법에만 골몰하지 말고 우리의 이웃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수천만 이민자 가정의 고통을 먼저 상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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