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 사는 김 모씨는 매년 2월과 8월쯤 으레 인터넷 서비스업체에 전화를 건다. 가만히 있으면 한 달에 몇 십 달러를 손해 보기 때문이다. 케이블 TV 서비스까지 포함 월 80달러 정도를 냈던 김씨는 2년 전에야 ‘절약법’을 터득했다. 당시 경제적 부담을 줄이려 고객센터에 연락해 “다른 업체로 바꾸려니 계약을 해지해 달라”고 했더니 업체 측에서는 새 프로모션을 제시하며 월 이용료를 20여달러나 낮춰줬다. 그는 프로모션이 종료되는 6개월여 마다 이런 전화를 하는 게 겸연쩍기도 하고 성가시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에 한 푼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전략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꼭 계약을 끝내고 옮기겠다고 해야만 ‘카드’를 내미는 회사 측 태도가 이해가 안 된다”며 “그렇다면 몇 년간 제값 다 내고 사용했던 자신 같이 아무 말 없는 소비자들은 바보란 말인가”라며 씁쓸해했다.
케이블 TV· 인터넷 서비스 업체와 요금 흥정을 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소비자 정보지 ‘컨수머리포츠’나 주류 언론에는 아예 협상 테크닉까지 자세히 실려 있을 정도다. 월스트릿저널의 소비자 전문 기자도 “피트니스센터에서 케이블TV, 인터넷 서비스까지 최대한 요금을 흥정하라”며 “경기침체기에 더 이상 고객을 잃고 싶지 않은 그들은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단언했다. 실제 이와 관련 타임워너의 대변인은 “이런 식의 협상이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고객의 요구를 받아들이려 한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보통 고객이 전화를 해 요금을 낮춰달라고 하면 회사 측은 지역별 프로모션을 제시한다.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국가라는 미국에서도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표현이 통용된다니 놀랍기만 하다. 하긴 미국에도 ‘삐걱대는 바퀴가 기름을 얻는다’(The squeakingwheel gets the oil)는 속담이 왜 생겼겠는가. 사실 이런 속담에는 어떤 문제에 부딪쳤을 때 불평불만을 나타내야 상대가 그것에 신경이 쓰여 무엇이라도 이익이 되는 것을 준다는 의미가 내포됐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거나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같은 표현은 논리적이고 합리적 근거보다는 상대가 징징대는 것을 참지 못해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 준다는 점에서 개운치 않다.
기자도 얼마 전 뺑소니 사고를 당하고 나서야 이 표현들이 미국 사회속에서도 실재함을 깨달았다. 주행 중 갑자기 유턴하던 차량이 내 차를 들이받았다. 당연히 정보 교환이 이뤄질 줄 알았는데 두 명의 건장한 흑인이 내리더니 다짜고짜 내게만 보험증서와 운전면허증을 요구하는 거다. 10여분간 옥신각신하다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그 직후 흑인 운전자가 도주했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보험사에 클레임을 했다. 일단 내 보험으로 디덕터블을 지불하고 차량 수리를 마쳤다. 워낙 큰 보험업체인데다 경찰 리포트와 차량 번호판, 현장 사진, 목격자까지 확보한 상황이라 쉽사리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한달 만에 상대차 소유주 신원을 찾았다는 보험사측은 “그 쪽에서 그 차량을 몰고 나간 적이 없다고 주장해 내가 낸 디덕터블 비용을 배상해줄 수 없다”는 게 아닌가. 이후 두 달간 수시로 전화를 걸어 상황을 확인했지만 매번 같은 답변만 돌아왔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석 달이 훌쩍 지난 후 보험사와의 통화에서 마침내 분노가 폭발했다. 너무 억울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목청이 높아졌다. 당황한 에이전트가 바꿔 준 수퍼바이저에게 언성을 높이며 조목조목 따졌다.
그런데 그 다음날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차분히 내 의견을 말할 때에는 회사의 폴리시를 들먹이며 “미안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던 보험사가 강경하게 반응한 바로 다음 날 배상 수표를 보내겠다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된 걸까? 갑자기 내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서 일이 해결된 것일까. 도대체 여태까지 보험사에서 말하던 폴리시는 무엇이었을까 라는 의문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혹자는 울어야 할 때는 울고, 요구할 때는 소리를 높이는 것이 소비자가 권리를 챙기고 제대로 대접받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손해를 입어도 항의할 줄 모르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 불이익을 당하기만 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만만치 않다. 특히 소비자로서 거대 기업을 상대하는 것은 더 그렇다. 불만이 있으면 무조건 목소리부터 키우는 것도 정답은 아닐 게다. 언제나 어디서나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를 더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원리와 원칙이 통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고객이 가만히 있어도 바보가 되지 않고, 고함치기 전에 고객의 편의와 입장을 고려하는 세상 말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