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태평양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나. 중국 교과서에 따르면 답은 ‘모택동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일본과 중국이 다시 군사적 충돌을 하게 되면 그 승자는 누가 될까. 절대다수 중국의 젊은이들은 ‘중국의 승리’로 답을 내릴 것이다.
“미국도, 소련도 아니다. 태평양 전쟁, 그 전쟁에서 일본군국주의를 패배시킨 것은 중국 공산당이다.” 그렇게 그들은 배웠고 또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현재를 통제하는 자가 과거를 통제한다. 과거를 통제하는 자는 미래를 통제한다.” ‘1984년’의 작가 조지 오웰의 금언이다. 전체주의 체제 통치자들은 정치적 생존의 수단으로 역사를 날조한다. 이를 빗댄 말이다.
오늘날의 중국을 전체주의국가라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무리가 있다. 그러나 전체주의적 특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공산당 1당 독재체제다. 거기다가 역사사실을 감춘다. 날조한다. 거기에 바탕을 둔 체제가 중국의 정치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사교과서에는 공산당의 찬란한 업적만 나열돼 있다. 4000만의 아사자를 낸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의 광풍 - 이런 것들은 통째 빠져 있다. 그러므로 중국의 젊은 세대의 의식에는 ‘모택동은 위대한 지도자’로만 깊이 각인돼 있다.
왜 여전한 모택동 숭배인가. 모택동을 배격한다. 그의 죄악상을 공개한다. 그 경우 그가 저지른 반인륜범죄의 하수인 역할을 한 중국 공산당의 실체가 드러난다. 다시 말해 중국 공산당의 유전자 코드를 파괴하는 행위가 된다는 판단에서다.
집단기억을 상실했다. 과거를 직시하지 않는다. 그런 체제는 스스로의 평화적 존속은 물론이고 이웃과의 평화적 공존도 불가능하다.
이성에 호소하는 정치적 온건세력은 설 곳이 없다. 우파의 강경논리만 허용된다. 외교 정책도 마찬가지다. 내셔널리즘이 동원되면서 강경으로만 치닫는다. ‘의도성 역사망각증세’를 보이고 있는 체제가 보이는 일반적 발열현상이다.
이야기가 길어진 것은 다름 아니다. 일과성의 계절병 정도로 생각됐었다. 해마다 8월이면 그 병이 도진다고 했던가. 그게 그런데 아닌 것 같아서다.
그 병 증세가 날로 두드러지고 있다. 중국이 보이고 있는 최근의 잇단 행태와 관련해 관측통들이 내리고 있는 진단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거침없는 일방적 역사 부정(否定)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마치 작심이라도 한 것 같아 보이는 그 행태의 배경은 무엇일까.
“동아시아국가들은 저마다 ‘정상국가의 꿈’을 지니고 있다. 한국의 경우 그 꿈은 통일이다. 일본의 경우 그 꿈은 그늘진 역사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디플로매트지의 지적이다.
경제력에 상응하는 정치적 위상을 확보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2차 대전 패전 후 강요된 평화헌법을 폐기하고 군사대국으로 갈 수 있는 헌법 개정을 해야 한다. 아베 일본총리가 바라보는 ‘정상국가’- 그 꿈을 이루는 수순이다.
그 과정에서 과거와 다른 행태를 보이고 있다. ‘과거사에 대해 매일 같이 사과만 하는 일본’- 거기에서 과감히 탈피하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정상국가’라는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그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 시진핑이 제창한 ‘중국의 꿈(中國夢)’이다. 그 꿈은 민주화가 아니다. 과거 한나라와 당나라 시절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중화민족 부흥’이 그가 말하는 꿈이고 정상국가론이다.
그 꿈이라는 것이 그런데 그렇다. 상대국가의 꿈은 자국의 꿈 실현에 방해요소가 될 수가 있다. 일본의 대국화는 중화민족의 부흥에 저해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일본과 중국의 분쟁은 단순히 국가 이해를 둘러싼 분쟁이 아니다. 한 국가의 꿈과 국가 정체성을 둘러싼 갈등이다.” 내셔널리즘과 내셔널리즘의 충돌이 그 본질로, 동북아지역 안보지형의 근본적 변화와 함께 역사전쟁은 과거와 사뭇 다른 차원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물러설 수 없는 이데올로기 전 양상을 보이면서.
관련해 새삼 주목되고 있는 것이 두 달이 채 안 된 시점. 그러니까 2013년 12월26일 도쿄와 베이징에서 동시에 벌어진 해프닝이다. 아베 일본 총리가 각료들과 함께 그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같은 날 중국의 시진핑은 공산당 상무위원 전원을 대동하고 모택동 묘소를 참배했다.
야스쿠니 신사란 곳은 도조 등 태평양 전쟁의 1급 전범들의 위패가 모셔진 곳이다. 모택동 묘소는 자국민만 수천만을 학살한 희대의 독재자 모택동의 시신을 방부 처리해 영구 봉안한 곳이다.
명색이 세계 2위, 3위의 경제대국이다. 그 나라의 지도자들이 인류학살 원흉의 위패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각기 ‘정상국가의 꿈’ 실현의 염원을 다진 것이다.
이는 단순한 우연인가. 아니면 뭔가 불길한 하나의 전조인가. 아무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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