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세월이 흘러 흘러 처녀들이 다 따갔지. 처녀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총각들에게 다 시집갔지. 총각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몽땅 병사가 됐지. 병사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모조리 무덤이 됐지. 무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전부 꽃이 됐지,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처녀들이 따갔지…사람들이 언제나 (전쟁의 해악을) 깨달을꼬?”
킹스톤 트리오가 반세기 전에 히트시킨 이 베트남전 반대 포크송은 중노년층 한인들에도 낯설지 않다. 미국은 물론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크게 유행했었다. 피터, 폴 & 매리, 조운 바에즈, 미치 밀러 합창단, 브러더스 포, 에디 아놀드, 말린 디트리히, 자니 리버스 등 수 많은 가수와 악단이 노래하고 연주했다. 내가 모은 CD에도 9곡이나 끼어있다.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피트 시거가 최근 94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미국 포크송 중흥의 대부로 추앙받아온 그가 죽자 모든 신문방송이 일평생 반전운동, 평등운동, 노동운동, 인권옹호, 환경보호 등 사회정의 구현에 앞장섰던 그의 공로를 기렸다. 일부 지역에선 그를 사후 노벨평화상 수상자 후보로 옹립하자며 서명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줄리아드 음대 부부 교수 사이에 태어난 시거는 하버드대에서 학점미달로 장학금이 끊기자 학교를 중퇴하고 포크송에 매달렸다. 그는 1940년 캘리포니아에서 우디 거스리를 만나 그룹 ‘올머낵 싱어즈’를 결성했다. 그때 부른 ‘이 땅은 너희 땅(This Land Is Your Land)’은 요즘도 인기다. 거스리가 히스패닉 농장인부들을 위해 만든 이민자 권리옹호 노래다.
시거는 ‘위버스’라는 다른 그룹을 결성해 ‘굿나잇, 아이린’ ‘내게 해머가 있다면’ ‘와인보다 달콤한 키스’ ‘옛 스모키 산 정상에서’ 등을 잇달아 히트시켰다. 구약성경 전도서 3장(“천하의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을 인용해 작곡한 ‘돌아, 돌아, 돌아(Turn! Turn! Turn!)’를 그룹 버즈(Byrds)를 통해 히트곡 차트 1위에 올려놨다.
특히 시거가 옛 흑인영가를 개작한 ‘우리는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는 1960년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주도한 흑인 인권운동의 주제가가 됐다. 시거는 이 노래를 킹 목사와 나란히 행진하며 함께 불렀다. 요즘도 세계 각국에서 피압박 계층의 저항가와 단결가로 불려진다. 일설에는 북한주민들도 은밀하게 이 노래를 부른다지만 확인할 길이 없다.
시거는 외국 포크송을 숱하게 발굴해 소개하거나 개작했다.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는 코사크 민요에서 땄다. 조운 바에즈가 부른 ‘도나, 도나(Donna, Donna)’는 유대인 민요, ‘관타나메라(Guantanamera)’는 쿠바 농민가요에서 각각 찾아내 세계적으로 히트시켰다. 그는 후진들의 훌륭한 멘토이기도 했다. 걸출한 싱어송 라이터인 밥 딜런도 그중 하나다.
그 시거가 1957년 한국의 대표적 민요인 아리랑도 불렀다. 그의 기념음반에 ‘Ariran’이란 제목으로 수록돼 있다. 시거는 미국인 프리랜스 여기자 님 웨일즈가 일제 치하였던 1937년 중국에서 조선인 사회주의자 겸 독립운동가인 김 산(본명 장지락)을 인터뷰해 공동명의로 출간한 ‘아리랑: 중국혁명에 낀 조선 공산주의자’라는 책에서 아리랑을 발굴해냈다.
시거가 한국전에 참전해 아리랑을 찾아냈다는 일부의 주장은 억지다. 그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한때 공산당원이었다. 미국 판 ‘빨갱이 소탕바람’인 매카시즘이 몰아쳤던 1950년대 시거도 블랙리스트에 올라 연방하원의 반미행동 조사위원회에 소환됐다. 그는 일체 증언을 거부해 의회 모독죄로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1960년대 복권돼 활동을 재개했다.
그는 2009년 1월 오바마 대통령의 1차 취임 축하공연 피날레에서 ‘이 땅은 너희 땅’을 불렀다. 92세 때인 2011년 10월엔 월가 점령대에 합류해 ‘우리는 승리하리라’를 불렀다. 근래 앤디 윌리엄스도, 에이디 골메도, 슬림 휘트맨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인생은 짧고 노래는 길다. 우리 후세와 그 후세들도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냐”고 계속 물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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