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가뭄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캘리포니아에 가뭄 비상사태가 선포된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비 안 오는 겨울은 주 전체가 겪고 있는 자연의 변덕이지만 지역마다 미치는 여파가 다 같지는 않다.
센트럴밸리에선 메마른 휴경지가 늘어나면서 농부들의 파산이 속출하고, 새크라멘토엔 정원의 스프링클러 작동과 세차를 금하는 절수령이 발동했으며, 17개 농촌 커뮤니티는 머지않아 식수배급엔 직면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이에 비하면 LA를 비롯한 남가주는 뭐랄까, 여유가 보인다. 절수 캠페인도 자발적 협조에 머물러 있고 일반주민의 ‘물 위기’ 체감지수는 제로에 가깝다. 지난달 말 주 수자원담당처가 금년에는 더 이상 북가주 수원지에서 각 지역 저수지로 물을 방출하지 않을 것이라는 단수제를 발표했을 때 경기를 일으킨 센트럴밸리와는 대조적으로 LA수도국은 “서부 전역에 비가 전혀 오지 않는다 해도 앞으로 1년 반은 견딜 수 있다”고 호언했다.
잔디에 물주다가 벌금형에 처해졌던 1980년대 말과는 사뭇 다르다. 지금 못지않게 극심했던 당시의 가뭄이후 주민들의 절수와 당국의 저수를 병행하며 꾸준히 다져온 대비책 덕분이다. 변기에서 세탁기에 이르기까지 절수형 교체 환불프로에 3억3,300만 달러를 투자하였고 저수시설 확충 등으로 물 비축 용량은 20여 년 전보다 14배로 늘렸다.
끊임없이 가뭄에 시달려온 땅 캘리포니아에서 ‘물’은 가장 시급하지만 가장 풀기 힘든 난제 중의 난제다. 해마다 부딪치는 ‘물 위기’에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이해관계가 얽혀드는 ‘물싸움’이 재연되어왔다. 핵심은 물의 분배와 관리 정책 변경을 통한 ‘내 몫의 물 권리’ 확보다.
금년 논쟁은 워싱턴에서 더욱 뜨겁다. 논쟁의 표적은 캘리포니아의 중심 수원인 새크라멘토 강과 샌호아킨 강이 만나 삼각주를 이루는 델타지역이다. 시에라의 눈 녹은 물이 모여 농업지대와 남가주로 보내지는 이곳은 멸종위기에 처한 희귀어종을 보호하고 생태계 파괴를 막아 궁극적으로 수원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로 양수를 제한하는 연방 환경규제에 묶여있다.
연방규제를 한시적으로 유보시키고 물을 퍼 올려 농토로 더 보내자는 공화당의 주장으로 싸움은 시작되었다. 지난주 공화당 주도의 연방하원은 캘리포니아 공화당 연방하원의원들이 공동제안한 긴급가뭄법안을 통과시켰다. 급수용량과 환경보호를 둘러싸고 농부와 환경운동가, 물 담당 관리들이 수년간 협상하며 다듬어온 균형을 순식간에 뒤흔들려는 공화당 ‘음모’라며 주지사는 물론 민주당과 백악관도 반대하니 통과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위기의식이 고조된 센트럴밸리의 분노한 농부들에겐 절박한 이슈여서 민주당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환경규제법은 준수하면서 3억달러 기금책정 등 구조대책을 담은 상원 민주당 법안이 이틀 전 공개되었고 오바마 대통령도 내일 프레스노를 방문, 농부들의 고충을 듣고 가뭄대책을 제시할 예정이다.
환경보호와 농업의 이해상충은 캘리포니아 공화당이 종종 선거테마로 부각시켰지만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던 이슈다. 이번엔 좀 다를지 모른다. 농업지대의 가뭄피해가 워낙 큰데다 복잡할 수밖에 없는 민주당의 합리적 급수대책 설명보다는 공화당의 “농부와 물고기, 누가 우선이냐?”의 간결한 반박이 유권자에게 훨씬 어필하기 때문이다.
새크라멘토에서 진행 중인 ‘물 전쟁’의 이슈는 11월 주민투표에 회부할 공채 발의안의 규모와 기금 용도다. 수십억 달러에서 수백억 달러까지, 어느 정도라야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을 것인가, 저수지 확충 혹은 절수프로 시행, 어디에 돈을 써야 유권자의 호응을 받을 것인가…정치적 이해가 엇갈리는 주지사와 양당 주의원들이 각기 다른 대안을 제시하며 타협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주 북가주에 쏟아진 폭우 정도로는 가뭄해소에 턱없이 부족하다. 5월까지 비든 눈이든 계속 내린다면 또 모르지만 물론 그럴 가능성은 없다. 현재 3,800만명인 캘리포니아 인구는 2020년엔 5,000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인구는 예상대로 증가하고 급수정책은 마련되지 못할 경우 2020년의 물 수요와 공급의 차이는 2 대 600만 에이커피트에 달할 것이다.
지금은 ‘농부 대 물고기’ 같은 이분법적 정치싸움에 시간을 낭비할 때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보다 장기적인 물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때라는 의미다. 그렇지 않으면 캘리포니아의 미래가, 인간의 미래가 어떻게 위협받을지 모른다고, 갈수록 예측불허로 요동치는 요즘의 자연 변화가 경고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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