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술이 발달하지 못해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시절에는 백일을 생존 가능성의 척도로 보았나 보다. 그래서 백일잔치가 시작되었을 것 같다. 당시 마을마다 사내아이에게는 개똥이, 소똥이, 말똥이 같은 이름이 유행했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개똥같은 아이니까 염라대왕의 눈길이 제발 비껴가길 바라는 부모들의 마음이 담겨있다. 그러나 개똥이가 장성하여 이웃 마을에 사는 갑순이와 혼담이 오갈 때쯤에는 갑돌이로 바뀌었을 것으로 추정 된다.
길동이, 귀동이, 기덕이, 경동이, 갑돌이와 같이 ‘ㄱ’과 ‘ㄷ’조합으로 된 이름들은 그 어원이 개똥이에 있지 않을까 추측된다. 출세하여 이름을 날린 길동이가 고향마을에 돌아오면 어릴 적 애칭이었던 개똥이의 금의환향 마을잔치가 벌어졌다.
요즈음 동부의 버지니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교과서 동해 병기법안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마치 겹겹의 수비망을 요리 조리 비켜서 공을 몰고 골문 앞까지 진출한 우리편 축구선구가 골키퍼 앞에서 슛을 날리는 순간의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 것 같다.
이번 법안 발의 및 심의 통과과정은 일본해 단독표기의 부당성을 널리 알리는 데 크게 성공했다고 본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가지 아쉬운 것은 왜 우리는 ‘동해’를 고집하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병기를 요구할 것이면 한국해/일본해가 더 격에 맞고 논리적일 것 같다.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든 지도를 보지 않고도 그 위치를 정확히 유추할 수 있는 이름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왕 일을 벌였으면 황해/서해 병기도 성사시켰더라면 하는 욕심도 있다. 나는 아산만에 인접한 서해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군대 생활 중 2년을 남해안에서 그리고 첫 직장이 동해안에 있었기에 세 바다와 인연이 깊다.
동해는 동쪽에 있는 바다라는 보통명사이지만 우리가 오래 사용하다보니 고유명사화한 사례이다. 그런데 전 세계에는 수 없이 많은 동해가 있을 수 있다. 마치 마을 마다 개똥이가 있었듯이.
우리의 동해는 일본 쪽에서 보면 서북쪽에 있는 바다이고, 황해(Yellow sea)로 불리는 우리의 서해는 중국 쪽에서 보면 동쪽에 있는 바다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중국이 우리의 서해를 황해/동해로 부르자고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
버지니아에서 법안 통과 후 다른 주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데, 동해병기인가, 또는 한국해 병기인가 아니면 아무거나 병기만 성사시키면 되는 것인지, 각자 알아서 하라는 것인지 한국정부의 방침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우선 무엇이 되었건 일본해 단독 표기에 대한 부당성은 꾸준히 제기해야 할 것으로 본다.
동해는 한국, 일본, 러시아가 해안선을 공유하고 있으며 러시아에 접한 해안선이 가장 길다. 러?일 전쟁에서 지구를 반 바퀴 돌아온 러시아의 발틱 함대가 일본 해군에게 전멸 당했던 러시아에게는 치욕의 바다이기도 하다. 일본해 단독 표기 저지에는 러시아와 협력하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의 공식 지도에는 바다명칭 병기는 허용 될 수 없으니 당사국들끼리 협의해서 대안을 제시하기까지는 종래와 같이 일본해라는 명칭을 사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본해 단독 표기나 동해병기 모두 한일 양국간 의견 일치에 이를 가능성은 약하다. 대안으로 한때 동해를 청해(Blue Sea) 로 부르자는 의견이 있었다. 기존의 황해와 잘 어울리는 매우 아름다운 이름이다.
일본이나 러시아도 거부할 수 없을 것 같다. 항해의 물과 청해의 물이 만나면 초록색이 된다. 그래서 우리의 남해안에서 제주도와 마라도에 이르는 바다를 녹해(Green Sea)로 부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중,일 간 녹색의 평화지대이자 한국이 세계와 교통하는 통로로 적합한 이름이다.
고향을 찾은 길동이나 갑돌이를 어릴 적 친근했던 이름인 개똥이로 부를 수 있듯이, 우리의 동해바다는 국제적으로 지도상에 어떻게 표시되든 한반도 내에서 우리는 동해로 부를 수밖에 없다. 동해 그리고 서해, 남해.
요즈음 우경화 추세인 일본이 독도는 물론이고 울릉도까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길지도 모른다.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동해가 일본해로 단독 표기되는 것은 빠른 시일 내에 시정해야할 것이다. 이번에 미주 한인이민사에 큰일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버지니아 한인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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