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연히 한국에서 태어난 여자농구 코치가 루이지애나-먼로 주립대학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는 기사를 인터넷에서 봤다. 그 이름도 생소한 작은 대학이라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그녀의 선수시절 하이라이트가 담긴 유튜브 비디오(https://www.youtube.com/watch?v=wRyASHVimgY)를 보고 깜짝 놀랐다.
특히 그 시대에, 그런 농구를 하는 여자선수는 처음 봤기 때문이다.
기자는 현재 LA 레이커스 한국어 TV 중계방송 해설위원으로도 활동 중이고, 또 수많은 WNBA 선수들을 한국여자프로농구 구단들과 성공적으로 연결해준 경험이 있기에 특히 여자 농구선수는 좀 볼 줄 안다고 생각하는데 1980년대 초에 그런 농구를 하는 여자선수가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다. 혹시 누가 먼저였는지 매직 잔슨과 래리 버드가 NBA에 데뷔한 해를 확인해봐야 했을 정도였다.
참고로 잔슨과 버드는 1980년 NBA에 발을 들였고, 이 한국선수가 미국에서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한 건 1982년이었다. 찾아보니 실제로 1985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기사에 ‘한국인 매직 잔슨’이라고 소개된 적도 있다.
그 주인공은 옥은정(51·당시 이은정) 현 루이지애나-먼로 주립대 어시스턴트 헤드코치로 “그 동안 수많은 농구 경기와 선수들을 봤지만,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이런 여자 가드는 본 적이 없는데 왜 이미 한국에서 잘 알려진 이름이 아니냐”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틀 후 데일 브라운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데일 브라운이라면 한 때 이름을 날렸던 미 대학농구의 명장인데, 설마 ‘샤킬 오닐의 스승’이 난데없이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냈을까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하지만 그 데일 브라운 전 LSU 감독이 맞았고, 그 이메일에는 그와 옥은정 코치가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도 붙어있었다. ‘샤킬 오닐의 스승’도 “당신(옥 코치)은 너무 겸손해서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지 인정을 못 하는 것 같다. 나도 이 기자와 같은 말을 여러 번 하지 않았는가. 내가 본 최고 선수 중에 한 명이 분명하고, 또 패스 솜씨는 그 누구도 못 따라간다고 여러 번 말했는데 마침내 그걸 알아보는 다른 사람이 생겨서 나도 기쁘다”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은정 돌풍’은 ‘린새니티’(Linsanity)의 주인공 제레미 린(현재 휴스턴 로케츠 소속)이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로 역사적인 의미가 깊다. 특히 제레미 린은 하버드 시절 NCAA 토너먼트에 나가본 적도 없는데, 이은정 선수는 1985년 노스이스트 루이지애나로 불렸던 대학을 NCAA 토너먼트 ‘파이널 4’까지 끌어올린 기적을 일으켰다.
진짜 ‘인새내티’(Insanity)는 애국심부터 앞세우는 한인 팬들이 이은정을 모르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은정 선수가 이끈 노스이스트 루이지애나는 1982-86년 102승15패를 질주했지만 그 이후로는 비슷한 성적을 낸 적도 없다. 이은정 선수는 4년 통산 평균 18.9점에 8.4어시스트란 기록을 남겼고, 4년 연속 사우스랜드 컨퍼런스 ‘올해의 선수’로 뽑힌 발군의 스타였다. 올아메리카 팀에도 3차례나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왜 이런 선수의 존재가 한인들에게 이미 잘 알려져 있지 않는지 의문이다. 네이버나 구글 검색에서도 이은정 또는 옥은정에 대해 나오는 정보가 거의 없다.
LPGA 투어 골퍼 미셸 위나 LA 에인절스 캐처 행크 콩거(한국명 최현) 등의 기사를 쓰다보면 “한국인도 아닌데 왜 다루느냐”는 독자들의 항의가 들어올 때가 있는 것처럼 이를 한국에서 ‘교포’는 한국인으로 간주하지 않는 문제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 이은정 선수는 ‘코리안 아메리칸’도 아니었다. 한국여자 실업농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제일은행에 지명된 경력이 있는 숭의여고 출신 선수로 그 옛날 일찌감치 미국무대 진출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시대에 앞서 한국 리그에 등을 돌린 일종의 ‘괘씸죄’가 적용된 것이란 추축도 가능한데 박찬호(1994년 메이저리그 데뷔), 박세리(1998년), 히데오 노모(1995년), 스즈키 이치로(2001년), 김연아, 리나 등 보다 최소한 10년은 먼저 아시안 선수의 경쟁력을 보여준 한국 여자농구가 있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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