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이 빚은 예술품. 역사 유적지 체험 ‘감동’
하산활동 이뤄진 칠보산 오랜 세월 비바람 의해
여러 가지 희귀한 모양의 암석 봉우리 만들어
1200년 역사 개심사 주지 설법 대신 김정일이 두드렸다는 목탁자랑
북한 천연 기념물 경성 약물온천 만병통치 유명
■칠보산 부부 바위
2살 먹은 미령이의 해맑은 웃음을 접대 받은 일행은 모두 만족하며 버스로 돌아왔다. 스가 움직이자 안내원은 다시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마이크를 잡더니 자랑스런 표정으로 금강산, 묘향산 등 우리나라 금수강산의 아름다움을 설명했다.
특히 우리가 가고 있는 칠보산을 이야기하며 이곳이 함경북도의 금강산이라고 강조했다.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칠보산은 바위에 섞인 모래 같은 약한 부위가 오랜 세월 비바람에 의해 깎여 없어지면서 여러 가지 희귀한 모양의 암석 봉우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함경북도 남쪽 바다와 육지에 용암이 솟아 만들어진 칠보산은 지역에 따라 내칠보, 외칠보, 해칠보로 분리되었다.
내칠보의 바위들은 보다 아기자기하며 외칠보의 봉우리는 웅장하다고 설명했지만 내 눈으로는 구별이 어려웠다. 아무튼 재미있게 생긴 바위들이 많이 있었는데, 곡식 낟가리처럼 생긴 노적봉, 만 마리의 사자가 웅크리고 있는 자태의 만사봉, 우산을 펼친 것 같은 우산바위, 그 밖에도 장군바위, 송이버섯바위, 피아노바위, 기와집바위, 농부바위 등등 우리의 일상생활에 있는 모든 것들이 바위로 다시 태어나 있었다.
선녀가 하늘로 올라갔다는 승선대에는 부부가 포옹하고 있는 모양의 부부바위가 있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남편을 부둥켜안고 있는 부인이 왼손을 남편의 바지 속에 넣어 “물건”이 그대로 있는지 확인하는 모습이라는 안내원의 설명에 모두 웃으며 하산했다.
▲칠보산 승선대에서 본 부부바위. 내칠보에는 있는 송이버섯 모양의 버섯바위
■ 발해 시대의 절, 개심사
숙소로 가는 도중 826년 발해 시대에 세웠다는 개심사(開心寺)에 도착했다. 중 고등학교 시절 역사시간에 말로 만 듣던 발해 유적지를 직접 본다는 것만으로도 감동되었다. 절에 들어가면서 안내원은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된다고 설명했지만 선교나 포교의 자유까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200년의 역사를 지닌 개심사는 남한의 일반 사찰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건축 양식이나 단청의 색상, 부처님 위치까지 별로 차이가 없어 보였다. 중앙에 위치한 대웅전에 들어가니 주지스님이 우리를 맞이하였다.
스님은 설법 대신 이 절이 김정일이 방문한 영광된 절이라고 소개했다. 당시 김정일이 직접 두드린 목탁이라서 보관하고 있다며 불상 옆의 플라스틱 상자속 목탁을 자랑스럽게 보여 주기도 했다. 개심사를 내려와 숙소 입구에서 안내원은 김정일이 이곳을 매우 중요한 관광자원으로 생각하였다며 현장시찰과 작업 지시 상황을 기념한 대형 모자이크를 보여 주었다.
▲1200년 전 발해 시대에 세웠다는 개심사를 지키고 계시는 스님.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된다고 하지만 우리 일행 중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손고락질하지 마시라요”
3층 건물만한 모자이크 그림을 보며 일행 중 가장 연세 많은 한분이 김정일의 그림을 손가락으로 무심히 가리키자 라선시부터 따라온 동포 담당 안내원이 “손고락질하지 마시라요”하며 매우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였다.
내가 첫날 손가락으로 태양상을 가리킬 때는 단호한 목소리였지만 낮고 부드러웠다. 그러나 이번에는 목소리가 아주 컸다. 똑같은 말도 소리의 크기와 음색에 따라서 상당히 많은 차이가 있었다. 순간 분위기가 살벌해지자 일행을 생각한 당사자가 금방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칠보산 관광 여관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최고령의 연장자가 걱정이 되어 방에 함께 따라 들어갔다. 얼떨결에 손가락질하고 미안하다고 사과는 했지만 80가까운 나이에않고 돌아간다고 말해라, 그 안내원 직속상관이 누군지 알아보아라, 새파란 안내원에게 야단맞은 것이 어이가 없으신지 “그놈 건방지다, 혼좀 내야겠다, 나는 지금부터 여행하지이북에서는 노인을 이렇게 대접하느냐, 해외동포에 대한 대접이 이 정도냐”며 하며 몹시 흥분하였다. 우리는 아직도 감옥에 갇혀 있는 미국 시민권자 케네스 배 사건도 있으니 제발 좀 참으라고 만류하였다.
그러나 계속 마음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우리의 팀장인 조야고버 신부는 대변인이 되어 동포 담당 안내원에게 갔다. 미국과 북한의 문화적 차이를 설명하며 미국에서는 대통령에게도 불평하고 서로 비판할 수 있다. 손가락을 사용한 것은 아무 뜻이 없다. 연세가 80 가까이 되신 분께 목소리가 너무 높고 무례하였다고 따지고 안내원을 꾸짖으며 기어이 사과를 받아냈다. 이 안내원은 자신이 같은 말을 3번 반복 했으나 나쁜 말은 하지 않았다고 처음에는 사과하기를 거부하다가 목소리가 높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사과하였다.
손가락질로 부터 사과를 하고 다시 사과를 받고 서로 화해하는데 약 30분 동안의 긴장감은 이번 여행 중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되었다. 이 사건 후에 우리는 같이 대동강 맥주를 마시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까지 함께 부르며 더욱 친숙하여졌으니 전화위복이라고나 할까.
■칠보산 관광려관
작은 소동 뒤에 찾아온 칠보산 휴식 시간은 달콤했다. 산 속 깊이 파묻혀 있는 숙소는 단층으로 아담했다. 침대도 미국에 있는 호텔처럼 방 하나에 두개씩만 있어 먼저 숙소보다 이질감이 없었다. 작았지만 깨끗하였고 특히 청결하고 쾌적한 화장실이 마음에 들었다. 여관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는 계곡 속의 약수라고 하는 천하일품 “봉지샘물”이 있었다.
내가 안내원에게 “칠보산 무공해 봉지샘물”이란 상표의 생수를 남한에 공급하면 대박이 날거라고 했더니 잠시 전의 긴장했던 분위기가 다시 풀리며 함께 웃을 수 있었다.향긋한 고사리 무침과 송이 버섯구이의 감미로운 맛을 아쉬워하며 우리는 온천으로 유명한 경성으로 가기 위하여 버스에 올랐다.
■경성 온천
버스에서 일단 마이크만 잡으면 만물박사가 되는 청진 안내원은 칠보산의 북쪽, 청진의 남쪽에 위치한 경성은 북한이 지정한 천연 기념물로 약물 온천으로 유명하다며 우리에게 온천욕을 권하였다. 안내원을 따라 허술한 단층 건물에 들어서자 진료소라는 사인이 왼쪽에 보여 치료 목적의 온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도에는 “라돈이 주성분인 이곳 온천물은 만성 대장염, 관절염, 피부병, 저혈압, 당뇨, 불임증에 좋다”는 안내문이 벽에 붙어 있었다.
하얀 타일로 된 낡은 욕조 20개가 합판 칸막이에 의해 나누어져 있었는데 나는 창가 쪽 욕조에 들어갔다. 그런데 물이 너무나 답답하게 조금씩 나와 다른 욕조를 찾아 반대 방향으로 갔더니 진료소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진료소 안이 궁금하여 열린 문틈으로 쳐다보니 담당자는 보이지 않고 온천물이 만병통치약인지 이런 저런 병에 좋다는 문구와 “온천물의 사용 방법, 마시는 방법”등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경성 온천은 약 400년 전 조선시대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일제 강점기 시대에는 일본 사람과 돈 많은 한국인만 출입이 허용되었고 서민들은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해방 후, 1946년, 김일성이 국민 건강 향상을 위하여 온천을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자유스럽게 출입하여 병 치료를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며, 청진안내원은 또 다시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나는 교회에서 “범사 하느님께 감사하라”고 배우는데, 이곳에서는 “범사에 김일성에게 감사하라”고 배우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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