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려한 영광 뒤로한 만경봉호 쓸쓸히 관광객 맞아
▶ 북한 최대 중공업 도시...평양.함흥이어 세번째로 커
청진항에 정박되어 있는 만경봉호. 1960년대 9만 명의 재일동포를 북한으로 옮겨 유명했던 북송선이 이제는 녹슨 몸으로 쓸쓸히 관광객을 맞이하였다.
■ 녹슨 만경봉호
비포장도로를 털털거리며 2시간 넘게 달려간 곳은 청진항이었다. 인구 70만 명의 청진시는 러일전쟁 당시 일본에 의해 항만도시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해방 후에는 김책제철소를 시작으로 철강업, 금속공업, 제강산업으로 확장되면서 북한의 최대 중공업 도시로 발전하였다. 청진은 현재 북한에서 평양시, 함흥시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안내원은 우리를 청진 항구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전설처럼 말로만 듣던 만경봉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적으로 잘 나가던 1960년대에 9만 명의 재일교포를 북으로 운송해 왔다는 이 북송선은 화려했던 과거를 숨기고 벗겨진 페인트에 녹슨 몸으로 방치되어 쓸쓸히 부두에 정박되어 있었다. 관광객을 데리고 와서 보여 준다면 배에 페인트도 칠하고, 안내를 위한 팻말도 준비했어야 되건만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태로 관광객을 맞이하였다.
녹슨 만경봉호의 모습이 배가 고파서 울고 있는 듯 하여 마음이 아팠다. 부두로 따지자면 한창 작업에 바빠야 할 오후 2시이건만 하역 작업을 하는 다른 배는 보이지 않았다. 10년 전에는 하루에 한 번씩 남한으로 가는 배가 출항을 하였다고 하는데 이명박 정부 이후로는 경제 교류가 중단되고 미국의 경제 압박으로 인하여 교역량도 대폭 줄어서 항구 하역능력 중 20% 정도만 가동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 지역은 영화감독 신상옥을 비롯하여 리설주, 장성택이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세를 갖고 있었다.
■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눈물 젖은 만경봉호를 떠나며 울적했던 마음을 달래 준 것은 빌 게이츠였다.
청진시 중심가에 있는 함경북도 도서관에 도착한 우리는 빌 게이츠의 파워에 크게 놀랐다. 도서관의 모든 데스크 탑 컴퓨터 운용 체계를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우가 점령하고 있었다. 오후 4시경의 도서관은 막 학교가 파했는지 초등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열람실 전면 벽에는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아마 한창 미래를 꿈꾸는 학생들에게는 아주 자극적인 촉진제 역할을 할 것 같았다. 미 제국주의를 욕하면서도 아이들은 마이크로 소프트 시스템으로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었다. 단지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총 쏘고, 때리고, 부수고 하는 폭력적인 게임 때문에 어른들이 걱정을 해야 하지만 청진 도서관에서는 컴퓨터를 단속하는지 그저 단조로운 벽돌 쌓기 , 탁구, 스포츠 경기, 그림 그리기 등의 건전한 프로그램만 눈에 띄었다.
도서관에는 이밖에도 여러 가지의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위한 구호가 여기 저기 걸려 있었다. 특히 들어가는 입구엔 도서관 간판보다 5배는 더 큰 글씨로 “영광스러운 조선 로동당”이라는 사인이 건물 맨 위에 붙어 있어 도서관에 들어가는지 로동당 건물을 방문한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건물 안에는 “지구를 살리는 자전거” , “지구를 위험에 빠뜨리는 요소”등의 포스터도 보여 북한 또한 지구 환경 보호에 신경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서울에서 환경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조카에게 조국의 금수강산을 위하여 북한과 함께 환경운동을 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 울먹이는 사적관 안내원
다음 순서는 도서관 길 건너편에 있는 역사관이었다. 서울의 고궁 박물관이나 경주 박물관 등에서 신라와 백제의 수많은 문화유산과 유적을 보아왔기에 당연히 이번에는 북쪽이니 고구려, 고려, 발해의 유적이나 유물을 보겠거니 기대하고 길을 건넜다. 그러나 그 건물은 김일성, 김정숙의 항일 운동사를 보여주는 곳이었으며, 혁명 역사관의 안내원은 이쁜 얼굴에 날씬한 몸매로 맵시 있게 한복을 차려 입고 우리에게 김일성 부부의 항일투쟁 역사를 열심히 알려주었다.
이 안내원은 설명 도중 스스로 도취하여 울먹거리기도 하고 김일성부부가 일제 치하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며 조국과 인민의 해방을 위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는지를 말하였는데, 이때 나는 부흥회나 성령세미나에서 신앙간증을 듣는 듯 착각 되었다. 북한에 있는 6일 동안 매일 매일 사적지란 곳을 갔는데, 그곳들은 모두 김일성의 항일 운동사를 보여 주었고, 항일운동 중에 식사하고, 잠자고, 사격 연습하고, 독립군과 훈련하던 장소등 사적지가 너무 많아 김일성부부, 김일성부자가 지나간 모든 곳이 성역화 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냄새나는 화장실
혁명역사관에서 불편한 마음으로 나온 일행은 안내원을 따라 선물을 파는 상점에 갔다. 약 4000 Sq Ft정도의 매장에 5개의 작은 전등만 천정에 매달려 있어 전시품을 어둡게 조명하고 있었다. 담배를 제외한 모든 제품은 포장이 엉망인데다가 어두워서 우리 일행은 건성으로 상품을 쳐다보다가 숙소로 향하였다.
“청진관광려관”이라는 간판아래 영어로 “CHONGJIN HOTEL”이라고 써 있었다. 여관방 하나에는 침대 4개가 있어서 단체 손님용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침대시트와 이불은 깨끗하였다. 이불은 호청 중간에 둥근 구멍이 있어 바느질 없이 이불을 호청에 넣을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었다. 4개의 침대는 중간 칸막이로 방이 나누어져 있었다. 화장실은 수세식이었으나 좌변기는 아니었다. 좌변기에 습관 된 나는 변기의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잠시 망설이기도 하였다. 욕조에는 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고 플라스틱 물 바가지가 있는 걸로 봐서 화장실을 사용 후 물 바가지로 세척을 하라는 것이다.
시설이 이러하다보니 화장실에서는 냄새가 났다. 여관에서 공급하는 중국산 칫솔은 금방 휘어지거나 부러져 사용이 불가능했다. 중국에서도 품질이 저급한 상품을 가져온 것 같았다. 나는 비상용으로 뉴욕에서 가지고 간 칫솔을 사용하였다.
북한당국은 관광의 중요성을 느끼어 미국 시민권자인 우리 일행을 처음으로 받아 들였다고 하는데 어두컴컴한 기념품 상점과 냄새나는 화장실로 어떻게 관광수익을 올리려는지 답답하기만 하였다.
■2살짜리 아기의 김일성교육
다음날 아침 한경북도의 금강산이라는 칠보산으로 향했다. 잠자리가 불편하여도, 비포장도로로 먼지 속에 버스가 달려도 우리 일행은 같은 민족이 사는 북한이 경제적으로 하루 빨리 더 좋아지길 희망하는 마음을 서로 이야기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다행히 날씨는 계속 화창했다. 추수가 진행되는 농촌 풍경이 먼지와 함께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들판에는 아직도 추수가 진행되고 있었고, 추수가 끝난 고추, 시래기, 옥수수 등 농작물은 보관을 위하여 가정집 지붕 위에 널려져 있었다. 옥수수를 보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 옥수수 생각이 절로 났다. 옥수수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안내원은 우리 일행에게 바다가 보이는 어느 개인집으로 데리고 갔다.
개인집이 약 30채 정도 있는 조그마한 마을은 집, 나무, 조경 등 모든 것이 모델 하우스처럼 정리 정돈이 너무나 잘 되어 전시용 주택처럼 보였다. 우리는 그중 한집에 가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 앉아서 옥수수와 뜨거운 감자를 그곳에 사는 주민과 같이 먹었다. 그 집에는 30대 초반의 부부가 신미령이라는 2살짜리 여자 아기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는데 아기의 아버지는 군 복무 중이라 몇 달에 한 번씩 집에 온단다. 2살짜리 미령이가 너무 귀엽고, 옥수수 대접 받은 것이 미안하기도 하여, 은퇴신부께서 100위엔(약 16달러)용돈을 주었더니 엄마에게 돈을 들고 쪼르르 달려갔다.
처음에 한사코 거절하던 아이 엄마가 안내원이 괜찮다고 하자, “미령아, 수령님께 말씀드려야지”하며 아이를 데리고 김일성 부부 사진 앞에 가서 “용돈을 받았어요”하며 45도 머리를 숙여 인사하여 우리를 놀라게 했다. 약 10여 분간 미령이를 안고 놀던 일행이 헤어지려 하자 미령이가 아빠, 아빠하면서 울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미령이의 아버지와 나이가 비슷한 연변에서 온 동명 유치원 직원을 군대에 간 아빠로 착각한 모양이다. 미령이의 우는 소리도 마음이 아팠지만 김일성의 우상화 교육이 일반가정에서 2살 먹은 아이에게도 아주 자연스럽게 행하여짐을 보고 우리 가슴은 더욱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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