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의 2014년 국정연설을 며칠 앞 둔 지난 주말 백악관이 출입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전달했다 : “대통령에겐 펜도 있고, 폰(전화)도 있다. 그리고 대통령은 그것들을 평등기회 회복 프로젝트에서 행정권한 행사와 모든 미국인 - 기업주와 근로자, 시장과 주의원, 청년과 재향군인, 전국 커뮤니티의 주민들 -을 동원하는데 사용할 것이다”
지난 한해 추진했던 정책의 입법화 대부분을 공화당 반대에 발목 잡혀 좌절당한 후 인내심이 바닥난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정계 외부에 전화로 참여를 요청하며, 의회 승인 없는 독자적 행동에 나설 것이라는 예보였다. 이른바 ‘펜과 폰’ 전략이다.
뉴타운 참사에도 불구하고 상원의 총기규제법 거부로 시작된 오바마의 재난은 시리아 사태의 미숙한 대처, 오바마케어 시행의 총체적 난국, 국가안보국의 감청스캔들, 하락하는 지지율에 이르기까지 2013년 내내 계속되었다. 28일의 국정연설은 오바마에게 악몽의 한 해를 덮고 새해의 화두를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고 사회지위 상향이동의 기회를 모든 사람에게 확대하는 경제적 정의실현을 최우선 당면과제로 제시한 오바마는 실행의지를 구체적으로 다짐했다.
2014년을 ‘행동하는 해(Year of Action)’로 천명했다. 그래도 ‘펜과 폰’에 앞서 의회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금년을 행동하는 한 해로 만듭시다. 그것이 미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것입니다 - 이 회의장에 모인 우리 모두가 그들의 삶, 그들의 희망, 그들의 기회에 집중해주기를 국민들은 원합니다”
오바마 집권 내내 적대적이었던 의회 공화당은 지난해 국정연설 통한 오바마의 요청을 거의 다 무시했다. 금년에도 아마 그럴 것이다. 그래서 금년엔 의회를 향한 협력 호소에만 그치지 않았다. 이렇게 덧붙였다. “…난 여러분 모두와 함께 일하기를 열망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멈춰 서지 않습니다. 나도 안 그럴 겁니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나 더 많은 미국가정에게 기회를 확대해 줄 수 있다면 입법 없이도 난 조처를 취할 겁니다, 난 그렇게 할 것입니다”
전투의지를 표명하는 선언과 함께 오바마는 연방계약업체에 대한 최저임금 인상, 은퇴저축프로 신설, 직업훈련 확대, 생산 연구소 설립 등 행정명령으로 시행할 수 있는 정책들을 제시했다. 그러나 행정권한의 영향력이란 의회 입법에 비해 훨씬 제한적이고 때론 잠정적이다. 최저임금 인상 행정명령의 수혜자는 수십만에 그칠 것이다. 수천수백만 근로자가 혜택을 받으려면 의회에서 인상법안이 통과되어야 한다.
오바마도 안다. ‘펜과 폰’을 홍보한 백악관의 참모들도 역부족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더구나 소득불평등과 임금정체는 7명의 민주·공화 양당 대통령 시대를 번갈아 지나온 40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채 악화되어온 난제다.
LA타임스는 그래서 오바마는 자신이 처한 한계에 대해 철학적이 되어간다고 지적한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본질적으로 ‘역사’라는 강의 거센 급류에서 릴레이 경주를 하는 수영선수와 같다”라며 “완전히 새롭게 출발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시작했다고 내 앞에서 열매를 맺는 것도 아니지만 진전은 시킬 수 있다”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그다지 효과적도 아니지만 새로운 것도 전혀 아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자주 활용했던 행정권한이다. 집권 5년이 지났을 무렵 클린턴은 238건, 부시는 197건이나 발동했었다. 같은 기간 오바마는 그들보다 적은 167건에 머물러 있다.
오바마의 대 의회 경고에 “제왕적 대통령이냐”는 공화당의 비난이 빗발쳤지만 사실 이번 연설의 내용은 포괄적이지도, 원대하지도 않아 제왕과는 거리가 멀었다. 보다 단편적이고 현실적이며 어조도 온건했다. 다가오는 중간선거의 민주당 표밭을 의식하며 포퓰리즘을 강조했으나 부유층 소득제한 보다는 중산층 기회확대를 강조하는 등 과격한 표현도 지양했다.
특히 이민개혁에 대해선 유리그릇 다루듯 조심스러웠다. 이민개혁은 입법화에 관한한 오바마의 유일한 희망이라 할 수 있다. 하원지도부는 긍정적이어도 보수 일각의 반대가 완강한 것을 아는 오바마는 이번 연설에서 공화당을 자극할 이민관련 언급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민개혁의 시급함을 강조하고 경제적 효과를 소개하며 양당의원들의 노력에 찬사를 보냈을 뿐이다.
정부폐쇄에서 에드워드 스노든에 이르기까지 2013년 국정연설에선 언급 안 된 사안들에 휘청댔던 예측불허의 워싱턴이니 오바마의 ‘행동하는 해’가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는 알 수 없다: 이번 연설을 계기로 오바마의 정치적 입지는 강화될까, 떨어진 지지도는 상승세로 돌아설까, 새로운 화두 ‘경제적 정의실현’에 힘입어 민주당은 상원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아니면 모든 것이 지지부진하면서 오바마는 조기 레임덕으로 추락해 버리는 건 아닐까…열쇠는 유권자의 호응이다.
오바마의 전임 대통령들도 집권2기에 위기를 맞았었다. 레이건과 클린턴은 정치적으로 회복했으나 부시는 그러지 못했다. 여러 원인이 있었지만 주원인은 경제였다.
경제가 계속 호전된다면 오바마의 지지도도 함께 올라갈 것이다. 거기에 오바마케어가 더 이상 말썽 없이 무난히 시행된다면 민주당의 중간선거 전망도 밝아질 것이다. 이민개혁법안까지 통과된다면 오바마는 수십년 별러온 ‘헬스케어’와 ‘이민’ 두 가지 주요 개혁을 실현시킨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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