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와 사생활 보호,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비법이 있을까. 인권보호 진영과 정보커뮤니티, 양쪽 모두가 수긍할 수 있을 정도의 두 이슈 간 균형잡기는 가능할까.
지난여름 정부가 일반시민과 동맹국 정상까지를 대상으로 무차별 대규모 감청을 했다는 사실이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밝혀지면서 전국이 충격에 빠졌을 때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의 안전을 보호하고 우리의 자유를 지키는 올바른 균형을 유지할 방법을 찾겠다”고 다짐했었다.
7개월의 산고 끝에 지난주 오바마가 발표한 미 최대정보기관 국가안보국(NationalSecurity Agency) 개혁안에는 균형잡기를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법대교수 출신 대통령은 NSA를 둘러싼 논쟁 양측의 입장을 상세히 설명하며 그 특유의 절충식 해법을 제안했다.
개혁안의 메시지는 간단히 정리될 수 있다 : 대규모 감청은 빠르게 변하는 국제환경에서 미국의 안보와 리더십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사생활 침해에 대한 우려도 충분히 이유 있다. 그러므로 대규모 정보 수집은 계속할 것이다, 그러나 남용방지 위한 제한을 가할 것이다.
메시지는 간단해도 개혁 내용과 그 실현 가능성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우방 및 동맹국 지도자에 대한 감청 중단에서 외국인 정보수집 시 미국시민에 준하는 보호규정을 적용한다는 것 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포커스는 무차별적으로 행해온 개인 통화기록 대량 수집이다.
오바마는 수집은 계속하지만 수집된 정보, 누가 누구와 얼마나 오래 통화했는지를 기록한 메타데이터는 앞으로 NSA가 보관하지 않도록 바꾸겠다고 했다. 외부에서 보관하는 개인통화기록을 NSA가 조사하기 원할 경우 법원으로부터 사전 허가를 얻도록 했다. 허가여부를 담당한 해외정보감시법원 (Foreign Intelligence SurveillanceCourt)에 외부의 의견을 표시할 독립적인 변호사 기구의 설치도 제안했다. 모두 NSA의 파워남용을 사전 차단할 안전장치들이다.
실제 효과는 대부분 불확실하다. 개혁사안 하나하나가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수집한 정보를 NSA가 보관하지 않으면 남용될 여지가 훨씬 줄어들지만 인계받아 보관할 기구가 현재론 마땅치 않다. 지난달 개혁 권고안을 제출했던 대통령 자문위는 전화회사나 제3의 민간기구를 추천했지만 전화회사들은 개입을 원치 않고 여건과 능력 갖춘 민간기구는 찾기가 쉽지 않다. 대통령은 법무장관과 정보기관장들에게 3월28일까지 적절한 보관처를 찾도록 명령했다.
FISC의 외부 변호사 기구 설치는 의회소관이다. 이미 관련 찬반양론이 분분한 의회에서 과연 언제 초당적 합의를 이루어 입법화 시킬지…실현가능성은 상상만으로도 요원하다.
의회만이 아니다. 통화기록 대량수집 프로그램의 운명은 궁극적으로 연방대법원에 의해 정해질 것이다. 지난달 2명의 연방판사들은 각기 다른 별도의 재판에서 통화기록 수집의 위헌성에 대해 반대의 판결을 내린바 있다.
절충식 내용에, 실현여부도 불분명하니 개혁안이 감청 반대파와 지지파 양쪽 모두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인권을 존중하는 ‘투명한 정부’를 약속했던 오바마의 ‘변심’에 실망한 리버럴 진영에선 “오바마의 미국에선 우리 모두가 용의자”라고 분노하며 오바마가 “사생활 침해를 중단하겠다는 원칙 선언은 안하고 감청의 당위성과 무해론 설득에만 급급하다”고 비난한다. 인권수호 진보파와 티파티 자유주의자들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민주당 실용주의자들과 공화당 안보 매파도 같은 어조로 불평한다. 효율적이고 유용한 정보프로그램에 왜 ‘불필요한 제한’을 가하느냐며 오바마의 개혁안이 “사생활 보호엔 별 효과도 없이 절차상 지연만 초래할 뿐 아니라 정보 실무현장에서 혼란과 위험 회피의 안일한 자세를 만연시킬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양극적 주장을 접어놓으면 잠정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다. LA타임스는 이번 개혁안이“9.11이후 아무런 통제 없이 질주해온 정보수집 확대의 시대가 끝나간다는 신호”라면서 “NSA 개혁이 당면이슈로 떠오른 것 자체가 큰 변화”라고 분석했다.
의회가 정쟁을 잠시 접고 초당적 입법화를 실현시킬 수 있을지, 보수적인 연방대법원이 안보와 자유를 공정하게 균형 잡는 획기적 판결을 내려줄지, 아니 그보다 앞서 두 달 안에 법무장관이 대량 통화기록을 보관할 민간기구를 찾아낼지, 정보커뮤니티는 자체개혁의 의지를 갖고 있기나 한지…아직은 어느 하나 확실한 게 없다.
그래도 개혁으로 가는 문은 열렸다. 첫 걸음도 내딛었다. 16개 기관 10만 명이 근무하는 비대한 미 정보부처의 간소화·효율화의 출발이다. 이번 출발은 정부 뿐 아니라 국민 각자에게도 집단적 안보를 위해 ‘나’ 개인의 사생활 침해를 어디까지 감수할 수 있는지 솔직하게 자문해볼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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