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마당’ 수입은 개인재산 인정
▶ 북적 거리는 남대문 시장 흡사
장마당 외부에는 농민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품을 가지고 나와 좌판을 펴고 팔고 있었다.
■고려 은행 앞에서 안내원을 기다리다.
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어린이들을 뒤로 하고 유치원을 떠났다. 미국 동포들의 힘으로 세운 유치원도 중요했지만 지금부터 찾아갈 장마당도 내겐 참으로 궁금한 곳이었다. 7명의 일행은 두 명의 북측 안내원과 함께 나진시 장마당으로 향하기 위해 밴에 올랐다.
차에 오르자마자 안내원은 다시 한 번 금기사항을 말한다. “조국의 산천은 무엇이나 사진을 찍을 수 있으나 북한주민은 찍지 마세요, 개인의 사생활 침해는 안 되니까요. 그리고 장마당에서는 소지품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소매치기 등 좀도둑이 있습니다. 귀중품은 차에 두고 내리세요, 특별히 장마당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입니다”라고 했다.
열심히 금기 사항을 말하던 안내원이 장마당에 가는 도중에 갑자기 자신의 카드에 돈을 좀 넣어야겠다고 하며 우리 일행의 양해를 구했다. 우리 일행을 다 데리고 개인 업무를 보기위해 은행을 가다니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했던 나로서는 상상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우린 모두 흔쾌히 괜찮다고 말했다.
밴 차량은 나진시 중심가에 있는 은행에 잠시 들렸다. 고려은행이란 간판 아래 차가 멈추었다.오후 두시, 나진의 중심가였지만 거리는 무척 한산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직장에 있고 학생들은 아직 학교에 있는 시간인지라 할 일없이 다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안내원은 개인의 일을 위하여 일행을 차속에 잠시 있으라며 은행을 다녀왔다. 북한에는 고려카드라는 직불카드 (데빗카드) 제도가 있어 은행에 돈을 넣고 그 한도 만큼 돈을 사용한다고 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크레딧을 미리 인정하여 사용하는 후불카드 제도는 없기 때문이었다.
■ 장마당의 중요성
북한 시장(市場)은 국가가 직접 경영하는 국영상점과 개개인이 자릿세를 내고 운영하는 장마당이란 형태가 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은 최악의 식량난으로 약 3백여만 명이 굶어 죽는 사태가 발생했다. 배급제도는 무너지고 생산은 중단되었으며 유통제도도 마비되었다.
식량난 이후 북한의 시장은 암시장 형태로 바뀌었으며 모든 필요 제품이 중국 상인, 조선족 보따리 장사꾼들을 통해 유입되기 시작했다. 외국 밀수품은 물론 북한 내에서도 몰래 빼돌린 완제품과 원자재가 암시장에서 거래되었다. 암시장 확산을 막지 못한 북한 당국은 장마당을 양성화함으로써 암시장을 막는다는 정책을 세운다.
북한 당국은 장마당의 판매 품목, 가격, 운영시간을 통제하기 시작했고, 일부 특정 공산품은 국영상점에서만 판매하게 하는 등 장마당에 대한 북한 당국의 통제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심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장마당에서 발생하는 수입은 개인 재산으로 인정이 되어서 인지 장마당은 계속 번성하였다. 이러한 파란만장한 흐름 속에서 최근 장마당은 배달식 장사를 도입하기도하고 옷가게에는 탈의실을 만들어 옷을 입어보고 살 수 있게 하는 등 고객 서비스가 강화됨으로 북한 경제에 더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만물상, 장마당
장마당은 생각보다 질서가 있고 깨끗하였다. 머리에 물건을 이고 나와 간단한 먹을거리나 팔고 있을 줄 알았던 내 예상은 완전히 어긋났다. 베트남, 캄보디아 등의 무질서한 재래시장을 몇 년 전 보았던 나는 나진 장마당을 보면서 내 선입견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마당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수한 중국 상품들이었다.
약 95%의 공장 제조 물품은 중국산이었다. 장마당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 거렸으며 활기에 차 있었고 크기는 약 만평정도였다. 우리는 인파에 밀려 발걸음을 옮기기도 힘들었다. 아무 의식 없이 서로 부딪히며 밀고하는 모습은 서울의 출퇴근 시간을 연상시켰다. 우리 일행들이 자칫 인파에 섞여 헤어질 것을 염려하는 안내원을 위해서라도 눈에 잘 보이는 하얀색의 모자를 구입하였다.
“이 모자 얼마인가요?”라고 물으니 “30원($5.00)입네다”라고 답을 하는데 이는 북한 돈이 아니고 중국 돈으로 30위안을 뜻하였다. 하얀 모자를 머리에 쓰고 나니 인파 속에서도 좀 더 마음이 편해졌다. 그때부터 우린 좀 더 본격적인 눈요기 샤핑에 들어갔다. 양말 한 켤레를 5원(80센트)에 구입하고 카메라 배터리, 충전기, 모자, 유치원생에게 선물할 과자 등을 샀는데 구입 제품은 모두 중국산이었고, 가격에 비교하여 품질은 좋았다.
잠시 지나다 보니 유독 사람들이 많이 북적거리는 곳이 눈에 띄었다. 역시 먹거리를 판매하는 곳이었다. 인간의 식욕을 자극하는 장사가 최고인 것은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떡볶이 파는 집의 인기는 높았다.
■ 통용화폐는 중국 인민폐
장마당은 비행기 격납고처럼 생긴 슬레이트 건물에 의해 실내와 실외로 나누어져 있었다. 실내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작은 매표소 같은 환전소가 있었으나 외국돈을 북한 돈으로 환전하는 사람은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장마당에서의 통용 화폐가 중국 돈이었기에 환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물품을 구매하는 북한 주민이나, 판매하는 점포 주인이나 중국 돈을 아무런 부담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1960년대 후반 남대문 시장에서는 버터, 커피, 샴푸, 식료품 깡통 등 미제 물건은 많았으나 그래도 통용화폐는 한국 돈이었다. 이곳 나진은 확연하게 중국 의존도가 높아 보여 이미 중국의 경제식민지가 되지 않았나 걱정되었다.
장마당에는 시장경제를 통하여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겠다는 가게 주인들의 근면성과, 잘 살아 보겠다는 인간적인 욕구가 보였으며, 점포 주인들의 고객에 대한 웃음과 친절은 서울 남대문 시장과 같았다, 장마당이 북한 경제 개방의 물꼬가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일행은 숙소인 동명산 호텔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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