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땅’에서 파산직전으로 곤두박질쳤던 캘리포니아는 불과 2년 전만 해도 여기저기서 얻어맞는 동네북 신세였다. 2012년 공화당 대선후보 미트 롬니도 민주당의 진보정책이 초래할 국가의 운명을 빗대어 “미국은 그리스처럼 될 것이다, 혹은 스페인이나 이태리…아니면 캘리포니아” 꼴이 날 것이라고 조롱했었다.
롬니는 낙선했고 캘리포니아는 회생했다. 재도약하는 캘리포니아를 워싱턴포스트는 ‘뉴 골드러시’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정부지출 논쟁의 쟁점은 이제 예산삭감이 아니다. 기대 못했던 흑자 금액을 어디에 쓸 것인가로 바뀌었다. 정치가들은 더 이상 비호감의 대상이 아니며 여론조사는 이들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율 상승을 보여준다. 양극화 대결로 인한 정가의 교착상태도 사라지고 있다…판타지 랜드인가? 아니다. 캘리포니아다”캘리포니아 최연소 주지사를 역임한 후 30년 만에 재입성한 75세 최고령 주지사가 전력투구한 3년 노력의 결실이다. 지난주 제리 브라운 주지사의 2014-2015 회계연도 예산안 공개 회견은 전국 미디어의 조명을 받았다. 받을만하다. 전임자에게서 물려받은 270억 달러 적자예산을 흑자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46억달러의 흑자를 예상하는 새 예산안에는 희망이 담겨있다. 빚 갚기도 시작할 것이고 예비비도 떼어 놓았으며 그동안 ‘가혹한’ 삭감을 단행했던 교육과 저소득층 의료복지 지출도 일부 늘렸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대학생들은 등록금 인상을 걱정하지 않게 되었고 주립공원 폐쇄나 입장료 인상도 없을 것이다.
보수일각의 지적처럼 캘리포니아가 전국적 경기회복세에 편승한 덕을 본 것도 사실이지만 뼈를 깎는 지출삭감과 어렵게 얻어낸 세금인상을 적절히 배합한 브라운의 리더십이 아니었더라면 단시간의 재정난 극복은 힘들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진보진영에선 ‘브라운의 올인 도박’이었다고 말한다. 산적한 난제들을 공개하고 전 주민의 고통 분담을 호소했으며 불가피한 세금인상을 프로포지션 30에 담아 주민들의 선택에 맡기는 모험을 감행했다. 정치적으로는 자칫 파멸 행보가 될 수도 있는 도박이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우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부유층 증세는 백만장자들의 이주 러시도, 일자리 축소도 초래하지 않았다. 실리콘밸리 경제가 되살아나고 주택시장이 활발해지면서 한때 10%를 넘어섰던 실업률도 8.5%로 하락했다. 자본이득세 증가로 지난봄부터 세수가 함께 늘어나기 시작했다.
10년 가까이 어두웠던 새크라멘토의 연초 분위기가 요즘은 훨씬 밝아졌다. 상하 양원 3분의2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며 수퍼 머조리티가 된 민주당은 희희낙락이다. 그러나 흑자혜택에 대해 한껏 기대했다면 곧 실망으로 변할지 모른다. 브라운은 확실하게 못 박았다 : “지금은 흥청대며 지출할 때가 아니다. 아직 우리는 위기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게 아니다…언제 계곡으로 다시 떨어질지 모른다. 오늘 있는 돈이 내일에도 있는 것은 아니다”여전히 긴축을 강조하는 브라운의 인기는 높은 편이다. 12월 필드여론조사에선 지지도 58%를 기록했다. 재정적 보수를 고수하는 그에 대한 유권자의 신뢰도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캘리포니아 정계는 브라운의 주지사 재선 출마를 전제로 움직이는 중이다. 아직 출마선언은 안했지만 취임 후 최고 지지도에 벌써 1,500만 달러를 넘은 선거자금도 쌓여있고 미완의 과제도 남아있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민주당의 개빈 뉴섬 부지사, 카말라 해리스 주 검찰총장을 비롯한 젊은 주자들은 2018년을 목표할 뿐 브라운에 도전할 의사는 비치지 않는다. 로널드 레이건과 피트 윌슨 주지사를 배출한 공화당은 브라운에 맞설 강력한 도전자도, 주의회의 입지회복 전략도 아직 찾지 못한 채 지지부진 상태다. 출마를 선언한 2명의 후보는 인지도와 자금력 모두 브라운의 상대가 되기 힘들다. 4년 전 이맘 때 이미 열기를 뿜어대던 2010년 주지사 공화당 예선전과는 한참 다르다.
3월7일로 후보등록을 마감하는 금년 주지사 선거 6월 예선은 예년과는 달라진다. 양당후보를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후보가 함께 경선을 치러 최고 득표자 1,2위가 본선에서 겨루게 된다.
일단 후보로 나선다면 브라운에게도 정치적 취약점은 많다. 실업률과 빈곤률은 여전히 전국평균보다 높은 8.5%와 16%에 머물러 있고, 공무원 연금개혁과 과밀교도소 행정대책도 발목을 잡을 것이다. 막대한 기금이 요구되는 고속철도와 지하수로 건설에 대한 그의 집착이 유권자들의 반대와 어떻게 충돌할 지도 알 수 없다.
‘새로운 골드러시’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어갈 차기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뽑는 선거전은 곧 막이 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몽상적인 이론가 ‘달빛 주지사’에서 성공적으로 탈바꿈한 실용적 리더 제리 브라운이 군림할 것이다. 최연소, 최고령, 최장수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더해 또하나 ‘최초의 4선 주지사’ 기록에 도전하는 그를 위협할만한 뉴페이스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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