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엔 많은 사람이 ‘신년결의’를 한다. 금연·금주·다이어트·운동 등이 매년 단골 결의사항이지만 대개 작심삼일이다. 새해 들어 며칠 지났으니 벌써 대부분 ‘도루아미타불’이 됐을 것 같다. 그래서 대신 ‘신년소망’을 꼽는 사람도 많다. 한국인들의 넘버원 새해소망은 몇 년째 세계일주 여행이다. 북한 동포들은 아직도 ‘이밥에 고깃국’을 실컷 먹는 것일 터이다.
시애틀타임스가 전한 워싱턴 주민들의 새해소망도 다양하다. 보잉의 777X기 공장을 워싱턴주에 유치할 것, 만년 꼴찌 매리너스가 AL 서부조에서라도 우승할 것, 개스 값이 1달러 밑으로 떨어질 것, 특히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평양에 가서 배준호 선교사를 데려올 것, 대마초가수 겸 동성애 여배우 마일리 사이러스가 북한에 망명할 것 등이 포함돼 있다.
신년결의, 신년소망 외에 신년전망도 연초마다 등장한다. 올해도 미국은 불경기에서 완전히 탈출하지 못하고, ‘오바마케어’가 발효된 정초부터 중간선거가 있는 11월까지 시끌벅적할 전망이다. 시애틀과 워싱턴주 경제도 뜨겁지 않고 뜨뜻미지근하게 성장할 것이란다. 반면에 한국의 한 점술인은 올해 한국의 국운이 ‘왕성 대길’할 것이라고 뜬금없이 예언했다.
꼭 반세기 전인 1964년 점술인 아닌 대학생들이 점친 한국 경제성장 전망은 터무니없이 빗나갔다. 설문에 응한 대다수 경희대 학생이 그해 103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이 개교 50주년(1999년)엔 300달러, 100주년(2049년)엔 500달러로 늘어난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그 설문조사 후 반세기도 안 된 작년 말 한국의 국민소득은 물경 2만4,000달러 선이었다.
역시 1964년, 미국의 저명한 미래학자이자 저술가인 아이작 애시모프도 50년 후 2014년의 세상을 전망했었다. 날씨변화에 영향 받지 않는 지하가옥에서 살고, 벽에 전자조명장치가 부착돼 창문이 필요 없게 된다고 했다. 공중부양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쇠고기와 닭고기 맛을 내는 해조류 영양 바가 주식이 된다고 했다. 3D TV의 출현은 정확하게 맞췄다.
나는 1964년 ‘약관’을 넘긴 대학 졸업반이었다. 취직은 언감생심이었고 입대할 날짜나 기다릴 처지였다. ‘굴욕적인’ 한일 국교정상화를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데모(6·3항쟁)로 서울 일원에 계엄령이 선포됐다. 그해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이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로 27위에 올랐지만 한국축구는 3패로 예선 탈락해 출전 팀 중 꼴찌(1득점, 20실점)를 기록했다.
당시는 흑백TV도 귀했다. 비교적 잘 살았던 이모 댁에 가서 AFKN(미군방송)의 ‘로렌스 웰크 쇼’를 보는 게 큰 재미였다. 한국은 1964년 수출 1억달러를 돌파하고 감개무량해 ‘수출의 날’을 제정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현재 한국 수출액은 6,000억달러를 헤아린다. 전 세계 첨단 TV와 셀폰 시장을 한국이 지배한다. 반세기 전엔 상상도 못한 얘기다.
생활수준이 급격하게 향상되면서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신년소망도 세계일주, 아니면 적어도 유럽여행이나 카리브 크루즈여행 정도로 격상됐다. 영어회화를 마스터하겠다거나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등 제2, 제3 외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사람, 악기 한 가지를 익히고 싶다는 사람도 많다. 진학, 취직, 마이홈 마련 등이 단골 소망이었던 50년 전과 판이하다.
한인들의 새해 소망은 본국인들보다 소박하다. 오래 동안 불황에 시달린 탓인지 새해엔 경기가 좀 풀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 신앙생활에 충실하겠다는 사람도 꽤 많다. ‘노인대학’에 나가 뭐라도 배우고 싶다는 어른들도 있다. 내 소망 역시 소박하다. 올해 토요일마다 52차례 산에 오르고, 52차례 칼럼을 써서 총 400회째를 돌파하는 것이다.
올해는 갑오년 청말띠 해이다. 청말(靑馬)은 날쌔고 강인해서 건강, 부, 성공 등을 상징한다. 서양 사람들도 청마를 상상의 동물인 유니콘으로 치부한다. 고사성어에 나오는 ‘새옹지마’도 준마였다. 청마였는지 모른다. 그 말이 복과 재앙을 번갈아 가져다 줬지만 새옹은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그게 인생사라고 했다. 그의 인생관을 배우는 것도 좋은 신년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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