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단은 생선튀김, 삶은 계란, 오징어무침, 김치, 빵, 된장국. 나이에 비해 밥의 양이 많은 것 같은데 모두 깨끗이 비운다. 같이 먹고 싶었는데 안내원이 말려서 아쉬웠다.
민간인이 밟아본 북한땅,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을까. 지난 9월 북한 나진 지역에 건립된 동명 유치원 개원식에 참가하기 위해 5박6일 동안 북한 땅을 밟고 온 하봉호(퀸즈 거주)씨의 북한 방문기를 통해 알아본다.
북한여행의 설레임
주변의 모든 것에 관심이 많은 나는 통일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특히 문이 닫혀있는 폐쇄국가 북한은 어려서부터 문을 한번 열어보고 싶었다. 자유스럽게 여행이 안 된다고 하니, 나의 도전의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때 뉴저지 메이플우드 성당의 조야고보 신부께서 함경북도 나진지역에 어린이들을 위한 유치원을 세우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였고, 조신부님을 졸라서 나진 동명유치원 방문을 계기로 대한민국 북쪽 땅을 드디어 밟아보게 되었다.
준비 모임
중국 연변의 대우호텔에서 북한에 들어가기 위해 모인 일행은 신부님 두 분을 포함 5명과 나진에 있는 유치원을 도와주는 연변의 조선족 2명이었다. 우리는 호텔 로비에 모여 이번 여행의 팀장이신 조야고보 신부로 부터 주의사항 및 행동지침을 들었다. 나는 여러 가지 금기사항을 숙지하고 짐을 정리하여, 나진에 들고 갈 소지품과 중국에 돌아와서 사용할 물품을 나눈 후, 두고 가는 일부의 짐은 중국에 보관시켰다.
입국 수속
나진 선봉지역을 들어가기 위하여 중국의 훈춘시내에서 두만강변을 따라 약 30분을 가니 중국의 관문인 췐허 세관이다. 이곳에서 출국 수속을 마치고 두 나라의 세관 500미터를 왕복하는 버스를 타고 두만강 다리의 중간 지점에 오니 북측의 경비원이 버스에 올라와 승객들을 면밀히 점검하고 내려간다. 버스는 계속 다리를 건너 북한의 원장리 세관에 도착하여 입국 수속을 하게 되었다.
북측에서 마중 나온 안내원은 우리가 소지하고 있는 물품을 입국용지와 함께 자세히 기록하도록 요구하였으며, 세관원은 우리들의 소지품을 자세히 관찰하였다. 원정리 세관의 비효율적인 업무와 수많은 입국 인파로 입국 수속은 약 2시간이 넘게 진행되었으나 우리 일행은 드디어 북한 땅을 밟았다는 사실에 감격해 있었다. 북조선에서 마련한 중국산 밴을 원정리세관에서 타고 북측 여행사 안내원의 환영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교육, 거주, 의료가 무료로 제공됩니다. 우리나라는 1990년도 고난의 행군을 끝내고 발전의 길목에 서있습니다”라고 자랑하던 북한 안내원은 가동이 중단된 나선 정유공장을 지나가다가 “미국의 횡포로 석유를 수입 못하여, 북조선 전체 소비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연간 30만 배럴의 생산규모의 정유공장이 멈추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때문에 자동차 운행과 전력 사용 등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안내원은 일행에게 우리가 현재 우리나라 최북단인 교통과 지리적 요충지인 나선지역에 있다며 기억이 가물거리는 50년 전에 공부한 지리를 복습시킨다. 들판에는 잘 자란 옥수수, 벼 등 농작물이 눈앞에 들어왔다. 가난한 나라선 흔히 보이는 노상 거지나, 동냥하는 아이들, 일이 없어 빈둥거리는 실직자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볼 수 없었다.
나진 동명유치원
약 1 시간의 지리공부를 끝내자 우리의 목적지인 나진시 동명유치원을 방문 할 수 있었다. 뉴저지 메이플우드 성당이 주축이 되어 건축한 유치원은 콘크리트로 견고하고 웅장하게 세워진 3층 건물로 약350명의 유치원생이 다니고 있었다. 유치원생은 낮은(만4살)반과 높은(만5살)반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각 교실에는 학업실, 세면실과 취침실이 있었으며, 취침실의 침상은 이층으로 구분이 되어 있는데 각층에 12개의 침상이 있어 24명이 어린이가 낮잠을 잘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세면실은 커다란 유리가 있어 교실에서 선생님이 세면실을 처다 볼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다. 세면실에는 4개의 세면대와 1개의 수세식 용변기가 구석에 있었으며 24명을 위한 욕실용 슬리퍼가 있었는데 전부 중국제품이었다. 어린이들은 아침에 유치원에 와서 교실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교실로 들어와 학습을 하고, 점심식사를 한 후 낮잠을 자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하는데, 이때 선생님들은 학생 개개인의 능력을 유심히 보아서 음악, 체조, 미술 등에 소질이 뛰어난 학생을 발굴하여, 각자의 개성을 살려, 가야금, 바이올린, 피아노, 체조, 노래 등의 특별반을 구성하여 개인지도를 하고 있었다.
또한 강당에서는 유치원을 설립하고 멀리 미국에서 찾아온 우리 일행을 위한 공연이 있었는데 4살, 5살짜리 아이들의 가야금, 드럼, 장구, 피아노, 연주와 연주기법, 무대의 입장과 퇴장 등이 너무나 세련되어서 일행 모두는 감탄의 박수를 치며 격려하여 주었다. 5살짜리 아이가 피아노 체르니 50번을 쳐서 놀라기도 하였으며, 한 어린이는 빠진 이빨을 보여 가며 활짝 웃음을 띠고 가야금을 연주하는데 키가 작아 버팀목을 놓고 올라가기도 하였다.
아이들의 연주가 끝나자 점심시간이라 우리는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약 200명이 한꺼번에 식사할 수 있는 식당은 식탁 하나에 10명의 어린이가 앉아 같이 식사를 하였다. 식사는 밥과 5개의 반찬(달걀, 생선튀김, 김치, 빵, 오징어무침)과 국이 있었다. 식당에서 나오다 내 손녀처럼 귀엽게 생긴 아이가 있어 몇 살인가 물으니, 아무 대답이 없다. 그래도 아이들과 말을 하고 싶어 자꾸 물으니, 내가 한심하다는 듯 “복도에서는 조용히”라며 예쁜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댄다.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함께 이야기하면 소란하니 통제를 위하여 나온 동명유치원의 규율이었다.
우리는 유치원 아이들과 헤어지기 싫었으나, 식사 후 낮잠 자는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하여, 원장선생과 작별 인사를 한 후 동명유치원을 떠났다. 천진난만한 아이들, 선생님들 그리고 운동장에서 만난 놀이터를 만드는 목수… 우리가 만난 모든 사람들은 같은 얼굴에 같은 한국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들에게 아무 사상도 체제도 느끼지 못하였다.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확신밖에는....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자본주의도 십자가도 없었다.
조야고보 신부님은 이곳 북녘 하늘 아래에서 예수님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으며, 묵묵히 통일을 위하여 하나하나 돌을 쌓아 가고 있었다. 결코 성급함이 없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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