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종 밀집 지역에서 타이어 숍을 운영한다는 한 독자가 거래 한인은행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다며 하소연하는 전화를 걸어왔다. 기름과 타이어 고무 때로 범벅된 시커먼 작업복 차림으로 친누이 계좌에 3,000달러 현금을 입금하려했더니 한 남자 직원이 나서 ID를 요구하더란다. 이유를 물었더니 “법을 피해 타인의 구좌에 많은 돈을 분산 입금 하는 사람들 때문에 신분을 확인할 의무가 있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 독자는 종업원에게 6,000~7,000달러씩 대신 입금 시킨 적도 있었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항의하며 “왜 나한테만 그러느냐”고 따져 묻는 과정에서 언성이 높아지고 삿대질이 오가는 험악한 상황까지 치닫게 됐다는 이야기다. 이 독자는 “규정이 그렇다면 디파짓 할 때는 ID를 제시해야 한다”는 문구를 은행 내부에 붙여 넣으라고 요구했지만 지점장은 “그럴 수 없다”며 딱 잘라 거부하더니 경찰까지 부르겠다고 으름장을 놓더란 것이다.
독자와 은행 측과의 불미스런 말다툼은 오해와 설명부족, 그리고 한인들 특유의 ‘욱’하는 기질의 복합 산물로 보이지만 독자가 화를 낸 진짜 이유는 남자 직원의 ‘괄시적 시선’에서 비롯된 듯 싶다. 이 독자는 자신이 깔끔한 옷차림으로 은행에 갔다면 이 남자직원이 그런 요구를 했겠느냐며 “은행에 들어가서부터 불편한 시선으로 감시하듯 쳐다봐 기분이 나빴다”고 주장했다. 이 독자는 자신의 짙은 전라도 사투리와 험악한 인상으로 오해를 살 수도 있었겠지만 고객의 푼돈도 소중하게 다뤄야 하는 은행은 고객들의 외모를 “향기나는 땀 냄새”로 격려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분해했다.
사실 “옷이 날개” “좋은 옷을 모든 문을 연다”등 깔끔한 외모와 복장과 관련된 속담은 너무나 많다. 외모나 복장이 상대방에게 주는 느낌을 무시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외향을 상대방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 수만은 없다.
허름한 차림에 낡은 픽업을 타고 다니지만 대저택에 고급 승용차를 타는 거부도 있고 비싼 옷에 고급 차를 몰고 다니지만 속은 텅 비어있는 사기꾼들도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재산이 3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도 허름한 옷차림으로 스위스의 유명 뷰티크 상점에 들어갔다가 종업원에게 무시를 당한 적도 있었다. 지난 8월 티나 터너의 결혼식 참석차 스위스 취리히를 방문했던 윈프리가 3만5,000달러의 명품 핸드백을 보여 달라고 했다가 “이곳은 당신에게 너무 비싼 곳”이라며 보기 좋게 거절을 당한 것이다. 점원이 윈프리를 몰라봤을 수 있겠지만 깔끔한 옷차림이었거나 백인 이었다면 이런 모멸은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달 연방민권 변호사이자 LA경찰국 커미셔너등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커밍햄 3세 LA카운티 흑인 판사가 UCLA경찰을 상대로 제기한 과도한 공권력 사용 소송도 겉보기에서 온 선입견의 부산물이다. 그가 UCLA인근 실내 체육관에서 운동을 마친 후 검은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벤츠를 몰고 건물을 빠져나오다가 안전벨트 미착용으로 적발됐는데 이 과정에서 경찰들이 수갑을 채우는 등 과도한 폭력을 행사했다는 주장이다. 그가 깔끔한 옷차림에 서슬 퍼런 판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경찰들이 그에게 수갑까지 채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멀쩡한 외모와 달변으로 동창들과 교회 지인들만 골라가며 거액을 빌리고는 상습적으로 떼어먹는 한인. 함께 사는 부인과는 법적 이혼을 해놓고 남의 돈으로 살아가며 고급차 몰고 다니다가 소송 당하면 파산해버리는 인사. 고급 저택을 세들어 살면서 자기 소유인 양 속이고는 투자 금을 빌렸다가 한달도 않되 파산해버리는 몰염치한 한인 등등. 겉과 속이 다른 한인들에게 당했다는 피해자들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기자에서 전화했던 독자는 “옷에 배인 기름과 고무 때는 노동의 대가로 흘리는 땀과의 혼합체”라면서 “외형만 가지고 사람을 판단한다면 잘못된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얼굴 생김새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 용모에 따른 차별’을 루키즘(lookism)이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외모 지상주의’라고 하는데 한국에서 차별이 오죽 심했으면 코미디언 고 이주일씨가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유행어까지 만들었을까. 기자도 지난한해 용모만으로 판단하고 선입견에 휘어 감겨 상대방을 잘못 대하는 실수를 저지른 일이 없었는지 되돌아보고 반성해야겠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