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때보다 더 오랜 시간 더 많이 일했는데도 크리스마스 선물 마련조차 힘든 당신, 우울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 혼자만이 아니다…”
온라인 매체 보이스닷컴이 지난 주말 이렇게 보도한, 미국의 ‘경제적 불평등’은 이미 가을부터 미 정치권의 뜨거운 이슈로 다시 떠올랐다.
더욱 심해지는 불평등에 대한 거부반응은 그동안 여러 측면에서 가시화되었다. 2년 전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확대된 ‘월가 점령’으로부터 최근의 패스트푸드 근로자 파업에 이르기까지 계속된 시위에서 격렬하게 드러났고, 빈부격차 심한 ‘두 도시 이야기’ 캠페인을 몰아 부친 급진 좌파 후보가 압승을 거둔 11월 뉴욕시장선거에서 유권자의 심판으로 증명되었다.
12월초엔 오바마 대통령이 경제적 불평등을 “우리시대 최대의 도전”이라고 정의하며 남은 임기를 불평등 해소에 집중할 것이라고 다짐했고, 그보다 한 주 전엔 프란치스코 교황이 고삐 풀린 자본주의 경제를 ‘새로운 독재’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며 10계명이 ‘살인하지 말라’고 가르쳤듯이 “이제는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를 하지 말라고 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 전체소득의 절반 이상을 상위 10%가 차지했다는 UC버클리 팀의 연구보고서가 발표되었고 1950년대 근로자의 20배였던 대기업 CEO의 평균소득이 지금은 204배가 되었다는 조사가 새삼 인용된다. 12월 들어선 “빈부격차 확대로 아메리칸 드림이 무너지고 있다”는 블룸버그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응답자의 64%가 “정부가 시장의 필요에 신경을 덜 쓰고 소득 불평등에 관심을 늘려야 한다”고 답했다.
가을에 개봉된 다큐멘터리 ‘모두에 대한 불평등(Inequality for All)’은 진보의 시각에서 본 불평등의 원인과 현황, 대책을 담고 있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라이시 UC버클리 교수가 해설자로 출연했으며 트래버스시티 영화제와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 상 등을 수상한 작품이다.
필름에 담긴 미국 빈부 격차의 현실은 우울하고 암담하다 : 1978년 평균 남성근로자의 연소득은 4만8,302 달러였다. 2010년엔 3만3,751 달러로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상위 1%의 연소득은 39만3,692 달러에서 110만1,089 달러로 3배나 늘었다. 1983년 1만5,000 달러였던 미국민의 하위 47%의 한 가정 당 자산은 2010년 제로상태로 곤두박질쳤다. 부채가 자산을 능가했기 때문이다.
라이시 교수는 “1980년 레이건 대통령 당선 이후 상위 1%는 경제적으로 더욱 부유하고 정치적으로 더욱 강력해진 반면, 중산층과 근로계층은 계속 경제적·정치적 입지를 상실해왔다”고 개탄한다. 현재 미국의 경제적 평등 순위는 세계 138위, 러시아와 레바논보다 좀 나을까, 137개국보다 더 불평등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1970년대엔 전체 소득 중 10% 미만을 가져갔던 상위 1%가 지금은 전체 소득의 20%, 전체 부의 35%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화와 기술혁명으로 인한 변화이기도 하지만 “세금, 교육, 무역, 노동, 금융규제 등 정책의 결과이기도 하다. 모든 정책이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경제적 파워를 감소시켰다. 경제적 불평등의 현실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라이시는 주장한다.
불평등 논쟁은 미디어를 통해서도 가열되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 “왜 불평등이 중요한 문제인가”를 설명했고 저널리스트 에즈라 클라인은 “최우선 경제 과제는 불평등보다 일자리”라고 반박했다.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저해한다, 아니다, 정부가 불평등 제동에 적극 개입해야한다, 안된다,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 적응하도록 자유시장에 맡겨야 한다…불평등의 원인과 심각성에 대한 주장은 이념과 입장에 따라 각기 다르지만 ‘경제적 불평등’이 실재하며 점점 증대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불평등 해소를 천명한 오바마 대통령의 노력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가능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에 따른 경제적 불안이 유권자들의 최대관심사인 것은 확실하다. 실직자만 불안한 게 아니다. 모든 근로자의 60%가 실직을 우려한다. 최근 워싱턴포스트 여론조사 결과다.
최저임금 인상에서 노동법 강화, 교육투자, 세제개혁 등 진보진영의 제안만으로 불평등 해소가 실현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소득의 격차가 자본주의 경제의 동력이라는 보수파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성장의 혜택이 계속 특정 소수에게만 돌아간다면 나머지의 아메리칸 드림, ‘안정된 중산층의 삶’은 무너져버릴 것이다. 중산층이 시들어 가면 경제성장도 함께 멈추어 버릴 것이다.
내년이면 린든 존슨대통령의 ‘가난과의 전쟁’이 50주년을 맞는다. 가난한 미국인들이 자립하여 커뮤니티를 재건할 수 있도록 정부기금을 지원한 프로그램이다. 갈등도 잦고 허점도 많은 프로였지만 못지않은 장점으로 좋은 효과를 냈고 많은 사람들을 최악의 경제상황에서 구해냈다.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초당적 협력이 이루어졌으며 정부가 가난한 다수를 위해 노력한 결과였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가난해지고 있는 지금은 경제성장의 혜택이 폭넓게 공유될 수 있는 정책 마련을 위해 정치가 초당적으로 나서야 할 시점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이 땅에 온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날, 크리스마스도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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