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시카고 개인전 오프닝을 끝내고 돌아와 곧 요세미티로 떠났다. 언제나 그곳엘 가면 늘 거대한 자연에 모든 현실을 잊고 빠른 속도로 그곳에 흡수되어버려 자신이 자연이 되고 구름이 되고 나무가 된 듯 그 거대한 바위 위에 누워 초월적인 상태로 내 의식은 빨려들어간다. 휴식 후 집으로 돌아와 정반대의 생활이 시작됐다. 화실을 고치며 작품을 정리하며 그동안 40년을 해온 작품을 돌아볼 수 있었다. 처음 한국을 떠나 내 나라가 그립고 조국을 향해 끝없는 향수를 느끼며 한국적인 것 동양적인 것을 그려야 한다는 강박 속에 매달려 있었고 작품 역시 그것을 반영하고 있다. 그후 유럽과 모스크바, 그리스를 다녀와서 내 그림은 동양적인 것의 고집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나 자유로워지기 시작한다.
애 둘이 어렸을 때는 모든 것이 급하게 돌아가 내 그림은 움직임과 광기와 젊음의 열정으로 가득 찼다. 그때는 늘 내 의식을 정오의 빛 한가운데 고정시키고 최대한 확대시키기 위해 늘 잠이 모자랐고 자유가 미치도록 목말랐던 시절이었다. 그때 그림은 열정으로 가득찼으나 고요한 침묵의 美가 부족했던 시절. 그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의 텅빈 옷을 보며 사람은 가고 텅빈 옷에서 나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물질도 역사이며 정신이 스며있다는 생각에 얼굴없는 옷, 이민자의 옷 그리고 시간의 흔적들을 생각하며 많은 옷그림을 그렸다. 지금 그 옷그림들은 자기길을 찾아 여러 곳으로 떠났다. 그림도 인생과 같아 자기의 길이 있다. 그후 애 둘을 다 대학에 보내고 10년간은 세계 뮤지엄을 다니며 미국에 살며 목말랐던 고딕성당, 중세 수도원, 북유럽을 다니며 정말 무엇이 영혼을 감동시키며 나를 움직일 수 있는가? 정말 어떤 작품이 걸작이며 왜 좋은 것인가를 알기 위해 수도 없이 많은 작품들 앞에서 감탄하고 의문하고 때로는 숙연해지며 서 있었다.
러시아 상폐테스브르그에 있는 뮤지엄에는 히틀러가 숨겨두었던 많은 작품들을 소련이 가져가 뮤지엄에 있는데 그 참혹한 전쟁의 비참 속에서도 그림이 무사한 것을 감사하며 안내원에게 특별히 간청해 아무도 없는 시간에 ‘렘브란트’ 그림이 있는 방에서 ‘돌아온 탕아’ 작품 앞에서 섰을 때 내마음은 신성함으로 가득 찼고 이 그림이 무사하게해주신 신과 인간들에게 경건한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아무리 잔혹하고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에 대한 경멸보다는 믿음이 그리고 더 큰 신뢰가 솟아오른다. 13-15C에 아이콘 작품들, 그리고 스페인 바로셀로나에 있는 내가 경탄하는 최고의 걸작 고딕회화와 중세그림들을 보며 그 시대 종교는 타락하고 있었지만 어쩌면 그 시대 사람들은 영혼이 어느시대보다 신적인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후 인도에 갔을 때의 놀라움. 내가 알고 있었던 세계와는 너무도 다른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비참함, 삶과 죽음, 무심함과 경탄 또 너무도 영적인 세계를 보며 삶의 경이, 생명의 끈질김,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 인간이 너무도 아름다워 얼굴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나이가 들 때마다 내 그림은 변하며 그 시절마다 내 의식과 철학이 나의 삶이 녹아있다. 헌데 과연 나는 내 그림에 만족하고 있는가? 모든 의문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내가 분명히 아는 것은 있다. 그것은 예술의 근원적인 본질이 무엇인지는 안다. 그것은 숭고 아름다움 그리고 사람들에게 순수한 기쁨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예술은 종교적 구원은 아니지만 구원으로 가는 또다른 순수한 길이다. 나는 이 컴퓨터 시대에 살며 아직도 신화를 믿고 천사의 얼굴을 본다. 거리에서 뮤지엄에서 때로는 마켓에서---. 그리고 고대의 지혜를 사랑하고 중세의 마음을 끈질기게 사랑한다. 나는 이 시대와는 아무 상관없는 그림을 그리는지도 모른다. 허나 여지껏 그랬듯이 소수의 사람들만이 나를 이해하며 내 그림에 감동하면 만족한다. 그리고 때로 작품이 안될 때는 심연 같은 공간과 깊이없는 시간 속에서 사막 같은 고요와 고독 속에서 즐거움속에서---수없이 많은 의문과 확신 사이를 오가며 작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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